“열 번이든 스무 번이든 집착적으로 전화”…콜센터 상담사들, 직무 전환 절벽 뒤 실적 전쟁 [AI시대 노사 2.0]

박혜원 2026. 4. 4.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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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노사 합의 못 찾는 콜센터 업계
상담사 직무 전환에 줄퇴사
자리 재배치를 해고 통보로 인식
전환 배치 피하려 실적 쌓기 치열
콜센터 모습.[대구시 제공]
AI(인공지능)가 노사관계의 새 지평을 열고 있다. 기업들은 올해가 ‘AX(AI 전환) 골든 이어’라 불릴 정도로 중대한 변혁기를 맞고 있지만, 노조에게는 노란봉투법 시행으로 노동자의 목소리를 보다 더 확고히 낼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 아울러 본격적인 AI 시대를 앞두고서도 생산성의 획기적인 제고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는 동시에 일자리가 급격히 사라질 수 있다는 전망도 함께 나오면서 더욱 첨예해진 노사관계를 슬기롭게 조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대전환기를 맞고 있는 우리나라 노사 관계의 현주소를 집중 조명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모색해본다.

[헤럴드경제=박혜원·전새날 기자] #. 현대해상 자회사 콜센터 15년차 상담원인 이모(37)씨가 일하고 있는 아웃바운드(발신 상담) 부서 분위기는 3년째 ‘살얼음’이다. 인공지능(AI) 상담 도입 후 인력 대체가 계속되면서다. 회사 측은 인바운드(수신 상담) 부서로 기존 직원들 부서를 전환해 고용을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2024년 직무 전환된 7명 전원이, 작년에는 14명 중 절반이 회사를 나갔다.

이모씨가 속한 아웃바운드 부서는 고객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보험 가입 절차를 안내한다. 상담 내용이 고정적인만큼 AI 전환도 쉽다. 인바운드 부서는 고객으로부터 걸려오는 민원 등에 응대하는데, 기존 부서에서 수 년간 근무했던 직원들 대부분은 전환 배치 후 적응하지 못한다.

전환 배치 후 퇴사가 잇따르자 지난해 현대해상은 재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그럼에도 내부 반발은 여전하다. 같은 상담 업무라도, 수신과 발신 업무는 완전히 다르다는 게 직원들 입장이다. 이씨는 “10년 넘게 일한 부서에서 옮기라는 건 심리적 부담이 상당하다”며 “사실상 회사를 나가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호소했다.

AI 노사 합의점 못 찾는 콜센터 업계

금융권 콜센터 상담사는 인공지능 전환(AX)가 가장 먼저 이뤄진 직종이지만, 수 년이 지난 현재까지 일자리 전환 문제에 대해선 뚜렷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직무 전환 등 일자리를 보장하는 시도로도 노조 반발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 분위기다. 이 때문에 AI 상담 도입이 활발한 금융권이나 공공기관에선 올해 노동조합법 개정안(노란봉투법)으로 노사 갈등이 더욱 격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인력 대체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상담사들 반발은 내부 갈등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이씨 부서에 현재 남아있는 상담사 인원은 24명. 실적이 낮은 순서대로 직무 전환이 이뤄지는 탓에 최근 이씨 부서에선 최근 실적 경쟁에 불이 붙었다.

이씨는 “어떻게든 고객과 전화 연결을 성사시켜서 실적을 쌓으려는 분위기가 생겼다”며 “과거에는 한 번 전화를 해서 고객이 전화를 받지 않으면 다음 고객으로 넘어갔는데, 이제는 10번이든 20번이든 전화를 집착적으로 전화를 걸고 있다”고 전했다.

콜센터 직무 재배치도 노조 ‘반대’
민주노총 하청 노조 조합원들이 원청 교섭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

현대해상 노조에선 올해 원청과 교섭할 경우 직무 전환도 거부하겠다는 방침이다. 현대해상 노조 관계자는 “작년의 경우 자회사에 직무 전환 대신, 기존 업무를 유지하되 새로운 업무를 추가하는 방식을 요구했다”며 “올해 원청과 교섭한다면 비슷한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사측 입장에선 AI 도입으로 일감 자체가 줄어든 상황에서 직무 유지는 쉽지 않은 선택이다. 일감은 절반 이상 줄어들었는데, 인력 규모는 그대로 유지해야 하는 셈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회사로선 직무 전환과 재교육 이외의 방안을 고안하기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올해 콜센터 노사 갈등 전운

이같은 노사 갈등이 확산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하청 노조가 원청과 교섭할 권리를 인정한 노란봉투법 시행으로 콜센터 업계 전반이 대응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콜센터 노조에선 이미 AI 도입에 전면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상태다. 민주노총 산하 금융권 콜센터 16개 지부는 지난 10일 노랑봉투법 시행에 맞춰 원청에 교섭을 요구했지만 아직까지 이를 승인한 원청은 없다. 이와 관련 민주노총은 지난 24일 기자회견을 열고 “노조와 협의 없이 AI 도입이 진행되어 고용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고 밝혔다.

파업 등 집단행동으로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도 크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콜센터 노조인 ‘든든한 콜센터 지부’가 지난해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AI의 부정적 영향이 심각할 경우 노조는 집단행동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문항에 국민건강보험 고객센터 상담사 88.7%, 현대해상 상담사 88.2%, KB국민은행 상담사 70.9% 등이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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