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사병 뒤 르네상스 꽃폈듯 …위기에서 더 단단해진 인류
인구 줄며 중세 봉건질서 약화시켜
노동자들 지위 끌어올린 측면도
마야문명·아즈텍제국 멸망 뒤
견고한 사회문화 만들어졌듯
‘아포칼립스’ 인간의 끝 아냐
아포칼립스/ 리지 웨이드/ 김승욱 옮김/ 김영사/ 3만2000원




흑사병 이후 살아남은 사람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사회를 재건해 나갔다. 지배층은 이전의 억압적인 체제로 돌아가려 했지만, 노동계층은 이를 거부했다. 고고학 연구에 따르면, 흑사병 이후 노동계층의 건강 상태와 생활 수준은 오히려 개선된 것으로 나타난다. 인구 감소로 노동력이 부족해지면서 농노들은 더 높은 임금을 요구할 수 있었고, 이는 결국 르네상스와 근대로 이어지는 구조적 변화를 촉진했다. 아포칼립스가 사회의 체질을 바꾸는 ‘거대한 전환점’으로 작용한 셈이다.
가뭄이 불러온 문명의 붕괴 사례로는 마야 문명이 제시된다. 오늘날 멕시코 남부와 과테말라, 벨리즈 일대에서 번성했던 이 문명은 정교한 달력과 문자, 피라미드 건축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9세기 무렵, 이 화려한 도시들은 잇따라 버려지며 ‘대붕괴’를 맞는다.
그 핵심 원인으로는 장기간의 극심한 가뭄이 지목된다. 강이 적고 빗물에 의존하던 환경에서 수십 년간 강수량이 감소하면서 농업 기반이 붕괴됐고, 이는 식량난과 사회 불안, 전쟁, 정치 체제 붕괴로 이어졌다. 그러나 저자는 마야 문명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더 작고 유연한 공동체 중심으로 재편됐음을 강조한다. 즉, 문명은 무너졌지만, 사람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16세기 초 아즈텍 제국 역시 또 다른 ‘아포칼립스’를 경험했다. 수도 테노치티틀란은 수십만 명이 거주하던 거대 도시로, 정교한 수로와 농업 시스템을 갖춘 고도로 조직된 사회였다. 그러나 1519년, 에르난 코르테스가 이끄는 스페인 군대가 도착하면서 상황은 급변한다. 소수의 외부 세력이 불과 몇 년 만에 제국을 붕괴시켰다.
저자는 이 과정이 단순한 정복을 넘어 하나의 ‘문명적 종말’이었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동시에 테노치티틀란은 오늘날 멕시코시티로 재탄생했다. 이는 유럽 식민주의 역시 하나의 거대한 아포칼립스였지만, 그 속에서도 새로운 사회가 형성됐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 책은 인류가 끊임없이 아포칼립스를 겪으면서도 살아남아 온 존재임을 상기시킨다. 저자는 “아포칼립스는 시스템의 끝일지언정 인간의 끝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위기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의 아포칼립스를 이해할수록 우리는 불확실한 미래를 더 잘 준비할 수 있다.
결국 이 책은 단순한 과거 회고에 머물지 않는다. 반복되어 온 종말의 역사 속에서, 현재의 위기를 넘어설 수 있는 통찰을 제시한다.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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