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깼지만 네가 치워라”···트럼프 적반하장에 분노하는 유럽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과의 전쟁을 원치 않았던 유럽에 상황 수습을 떠넘기면서 유럽 내 분노가 높아지고 있다. 사전 협의 없이 시작된 전쟁으로 불거진 경제적 부담만 고스란히 전가한다는 비판이 커지는 가운데, 대서양 동맹의 신뢰 균열도 가속화되는 양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 28일(현지시간)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 공습을 감행한 뒤 이란 국민에게 “공격이 끝나면 여러분들이 정부를 장악하라”며 정권 전복을 선동했다. 개전 5주차인 지난 1일 대국민 연설에서는 유럽을 향해 비슷한 메시지를 발신했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사실상 봉쇄하면서 유럽이 에너지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해협으로 가서 직접 확보하고 보호하라”며 “미국은 도움을 주겠지만 주도권은 유럽이 가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은 더 이상 미국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리처드 하스 미국외교협회(CFR) 명예회장은 CNN에 이를 미국의 새로운 중동 정책 기조로 분석했다. 그는 이라크전 당시 “깨뜨렸으면 책임져야 한다”는 이른바 ‘도자기 가게 원칙’과 정반대로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에 “망가뜨린 건 우리지만 책임은 당신들이 져라”고 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에서 손을 떼더라도 유럽은 두 가지 심각한 결과를 떠안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우선 에너지 충격이다. 세계 원유 물동량의 5분의 1이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되면서 유럽은 직격탄을 맞고 있다. CNN에 따르면 유럽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으로 촉발된 에너지 위기에서 채 회복되지 못한 상태에서 또 다른 충격을 받고 있다. 브뤼셀 소재 싱크탱크 브뤼겔은유럽연합(EU) 각국이 대체 가스 확보 경쟁에 나설 경우 에너지 비용이 급격히 오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바르트 더베버 벨기에 총리가 지난달 러시아 에너지 수입 재개를 촉구하고 나선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당 내외 반발로 발언을 거뒀지만 해협 봉쇄가 장기화할 경우 이 같은 목소리는 더 커질 것이라고 CNN은 전망했다.
둘째는 동맹 신뢰의 약화다. 이보 달더 전 미국 나토 대사는 CNN에 “군사 동맹의 핵심은 신뢰”라며 “이제 어떤 유럽 국가도 미국이 자국 방어에 나서줄 것이라 믿기 어렵게 됐다”고 경고했다. 또한 그는 “대통령은 의회도, 미국 국민도, 동맹국도 상의하지 않고 전쟁을 시작했다”며 “이제 한 달이 지나 확전이나 철수냐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고 비판했다.
가장 직설적인 비판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게서 나왔다. 한국 국빈 방문 중이던 마크롱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국민 연설 직후 “발언이 너무 많고, 일관성이 없다”며 작심 비판에 나섰다. 가디언은 이 같은 발언이 트럼프 대통령의 자주 바뀌는 메시지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이 사실상 승리 단계에 이르렀다면서도 동맹국에 군사적 지원을 요구했고, 동시에 동맹국들이 스스로 호르무즈 해협을 “직접 확보하라”고 촉구한 점을 지적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진지하게 행동하려면 매일 전날과 다른 말을 해서는 안 된다”며 “지금 필요한 것은 안정과 평화이지, 쇼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나토 탈퇴 시사 발언에 대해서도 마크롱 대통령은 “나토와 같은 동맹은 말로 표현되지 않는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며 “매일 같은 약속을 의심하게 만들면 동맹의 본질이 훼손된다”고 맞받았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도 나토를 “세계에서 가장 효과적인 군사 동맹”이라고 평가하며 반박했다.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이 다음 주 워싱턴을 방문해 관계 복원을 시도할 예정이지만 성과가 어떨지는 불투명하다. 지난 2월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 병합 시도 발언 이후 흔들린 대서양 동맹 간 신뢰가 이번 사태로 또다시 타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CNN은 트럼프 2기 첫해 미국의 요구에 상당 부분 굽혔던 유럽이 올해 들어 더는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방향으로 분명히 선회했다고 보도했다. 방위 산업의 독자 육성과 재생에너지 전환 가속화를 통해 미국 의존도 자체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미국이 믿을 수 없는 동맹임을 인식한 유럽이 미국을 덜 필요한 동맹으로 만들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박은경 기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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