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더, 한반도 넘어선 한국인
[정덕현의 컬처톡톡]
‘한국계’로 불린 경계인들
가능성이라는 새 정체성

“한국과, 전 세계 한국인들에게 이 영광을 바칩니다.(This is for Korea, and Koreans everywhere).”
3월15일(현지 시각) 미국 LA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로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거머쥔 매기 강 감독은 의미심장한 수상 소감을 남겼다. ‘전 세계 한국인들’이라는 표현이 그것이다. 그 말은 한국인의 범주가 한반도에 국한돼 있을 것 같은 기존의 인식을 깨는 발언이다. 국적의 범주를 넘어서 전 세계에 존재하는, 한국 문화를 여전히 정체성의 일부로 갖고 있는 이들까지 한국인들이라 부른 것이니.
물론 그건 매기 강 감독 자신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한국계 캐나다인으로 서울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 부모를 따라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그곳에서 캐나다 국적을 갖게 됐지만 그는 부모와 한국어로 대화하며 자랐고 어릴 때는 자주 한국을 방문했다고 한다. 그리고 셰리던 칼리지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했고, 드림웍스에 스카우트돼 커리어를 쌓은 후, 2025년 크리스 아펠한스와 함께 케데헌의 감독을 맡았다. 국적은 캐나다인이지만 한국 문화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 매기 강 감독은 그래서 K팝과 한국의 무속을 엮어낸 케데헌 같은 작품을 내놓을 수 있었다.
한국인과 캐나다인 사이, 그 ‘경계인’으로서 자라난 매기 강 감독은 그 정체성의 혼돈을 케데헌 주인공 루미를 통해 투영해 냈다. 루미는 인간인 어머니와 악령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인물로, 그 정체성의 비밀을 친구들에게조차 숨기며 지낸다. 영화는 루미가 결국 그 정체성을 스스로 받아들이고 ‘이제 더 이상 숨지 않는다’고 선언하면서 당당한 자신을 드러내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루미를 통해 매기 강 감독은 경계인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이 더 이상 한계가 아니라 ‘가능성’이라는 걸 증명해 냈다. 수상소감에서 그는 자신과 같은 경계인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나처럼 생긴 주인공들의 영화를 이제야 만들게 돼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제 나왔으니 다음 세대는 더 기다리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매기 강 감독을 비롯해 이른바 ‘한국계’라고 불리는 경계인들의 활약은 최근 글로벌 콘텐츠 시장에서 주목할 만하다. 윤여정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미나리’의 감독 리 아이작 정과 그 작품에 출연한 배우 스티븐 연이 그렇고, 역시 그가 출연해 에미상 8관왕을 거머쥔 넷플릭스 시리즈 ‘성난 사람들’의 한국계 미국인 감독 이성진이 그렇다. 애플이 1000억원을 투자해 제작한 시리즈 ‘파친코’는 재미교포 1.5세대인 이민진 작가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코고나다·저스틴전 감독이 모두 한국계다. 아카데미·골든글로브 등에 노미네이트됐던 ‘패스트 라이브즈’와 최근 ‘머티리얼리스트’를 감독한 셀린 송은 한국계 캐나다인이다(그는 ‘넘버3’로 익숙한 송능한 감독의 딸이기도 하다).
물론 이러한 한국계 경계인들의 활약이 최근 두드러지게 된 건 K컬처 전반에 대한 전 세계적 관심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BTS와 ‘오징어게임’ 그리고 ‘기생충’으로 대변되는 한국 콘텐츠의 글로벌 히트는 K컬처 역시 힙한 문화로 인식되게 만들었다. 미국의 A24 스튜디오 같은 독립영화계에서 주목하는 제작사는 이런 흐름에 선제적으로 뛰어들었다. ‘미나리’부터 ‘성난 사람들’ ‘패스트 라이브즈’ ‘머티리얼리스트’ 등이 모두 여기서 제작됐다. K컬처의 급부상은 문화 다양성을 추구하는 경향으로도 이어졌는데, A24는 여기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제작사로 떠올랐다. 중국계 미국 이민자의 삶을 SF적 상상력으로 그려내 아카데미 7관왕을 거머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 같은 작품이나 베트남전쟁이 끝나고 미국으로 건너간 북베트남 스파이의 이야기로 박찬욱 감독이 연출한 HBO 시리즈 ‘동조자’ 같은 작품이 모두 여기에서 제작됐다. 어찌 보면 A24는 경계인의 정체성을 가진 미국의 아티스트들의 가능성에 투자해 동반성장을 이룬 제작사라고도 볼 수 있다.
한국 문화의 정체성을 가진 경계인의 활약은 일본에서 최근 ‘국보’로 천만 관객을 달성한 이상일 감독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 그는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한국 국적을 가진 재일 한국 조선인 3세다. 일본 국적은 딸 생각이 없고 한국 국적은 출국 시 편의를 위해 따두었다고 말하기도 한 그는 일본인과 한국인 그리고 조선인 사이의 문화적 경계 위에 서 있는 인물이다. 이러한 경계인의 감성은 ‘국보’에서 기쿠오라는 가부키 온나가타(여성의 역할을 하는 배우)의 목소리를 통해 전해진다. “내겐 나를 지켜줄 피가 없어. 할 수만 있다면 네 피를 컵에 담아 벌컥벌컥 마시고 싶어.”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러 부문에 걸쳐 노미네이트된 ‘햄넷’이나 ‘센티멘탈 밸류’ 같은 작품이 보여주듯이, 예술은 개인의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과정에서 탄생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경계인들이 겪어내야 하는 정체성의 혼돈이나 차별은 그들에게는 극복해 내고 싶은 깊은 상처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민자로서 겪었던 문화적 충돌 속에서도 끝끝내 버텨내려 했던 마음이나(미나리), 치열한 삶에서 피어나는 알 수 없는 분노(성난 사람들), 마치 전생과 후생을 경험하는 듯한 이질적인 문화에서 생겨난 두 개의 정체성의 문제나(패스트 라이브즈), 자신의 뿌리에 대한 고민(파친코·국보) 등을 예술이라는 형식을 통해 승화해 내려 했다. 그 과정에서 시대도 바뀌었다. 문화 다양성이 시대의 화두가 됐다. 이쪽에도 저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아 차별받던 경계인들은 이제 그 중간 지대에 서서 양측의 문화의 경계를 깨고 그 다양성의 가치를 드러내는 ‘가능성의 존재’로 떠올랐다. 매기 강 감독은 그래서 케데헌의 루미가 부르는 ‘골든’이라는 노래를 통해 당당한 정체성을 노래한다. ‘더는 숨지 않아. 찬란한 나. 이게 내 모습이야.’ 그리고 그건 이제 한국인의 범주가 한반도 바깥으로 확장됐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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