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 오일쇼크와 다르다…전쟁에도 맥 못추는 금·채권

배현정 2026. 4. 4.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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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안전자산 투자 공식
지정학적 위기 때마다 금과 채권으로 자금이 몰린다는 금융시장의 오랜 불문율이 흔들리고 있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무력 충돌 격화로 글로벌 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됐지만, 대표적 안전자산인 금과 채권 가격은 기대와 달리 동반 약세를 보이고 있다. 대신 글로벌 자금은 달러로 쏠리는 흐름이 뚜렷하다. 이른바 ‘강달러(달러 강세)’ 현상이 재연되면서, 위기 대응의 중심축이 전통적 안전자산에서 달러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주말과 휴장 없이 24시간 거래되는 비트코인까지 변동성 국면에서 자금 이동 수단으로 부상하면서 ‘피난처’의 범위와 선택 기준이 재편되는 모습이다.

[AI 생성이미지]
현재 금융시장에서 가장 지배적인 흐름은 달러 강세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 주는 달러 인덱스(DXY)는 전쟁 발발 직후인 3월 2일 98.38에서 가파르게 올라, 13일에는 100.36으로 마감하며 지난해 5월 19일(100.43) 이후 약 10개월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이후에도 달러 가치는 100선 안팎에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픽=남미가 기자
오일쇼크 땐 금값 10년새 20배 급등
이러한 달러 강세의 배경에는 인플레이션과 금리 전망이 자리한다. 전쟁으로 유가가 상승하면서 물가 압력이 다시 고개를 들었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금리 인하를 서두르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퍼졌다. 일부에서는 긴축 가능성까지 열어두고 있다. 실제 시카고상업거래소(CME) 페드워치에서는 연내 기준금리 인상 확률이 한때 50%를 넘어서기도 했다. 스코샤은행의 에릭 테오레 FX 전략가는 “지금은 시장이 위험을 피하려는 ‘리스크 오프’ 국면으로, 그 과정에서 달러가 가장 직접적인 혜택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가장 충격적인 붕괴는 금 시장에서 나타났다. 이란발 군사충돌 이후 금 가격은 2일(현지시간) 기준 약 12% 급락했다. 지정학 충격에도 금이 약세를 보인 것은 안전자산 수요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 방향이 달러와 단기 국채 등 현금성 자산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시장은 이를 ‘유동성 장세의 역설’로 해석한다.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자산은 즉각적인 현금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갖춘 쪽으로 이동하는 경향이 강화된다는 것이다.

이 같은 흐름은 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당시 금값은 1971년 온스당 35달러에서 1980년 약 850달러까지 치솟으며 10년 만에 20배 이상 급등했다. 인플레이션이 장기간 고착되고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가 약화한 결과였다. 실제로 연 10%대 물가상승률이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이어지며 기대 인플레이션이 통제되지 않았다.

반면 현재는 물가 압력이 존재함에도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가 일정 부분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상황이 다르다. 금리가 높은 수준에서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하면서, 이자를 지급하지 않는 금보다 금리를 기반으로 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달러 자산의 매력이 부각되고 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최근 “이란 전쟁이 경제와 물가에 미칠 영향을 주시하고 있다”며 물가 통제 의지를 재확인했다.

그래픽=남미가 기자
금 가격 하락에는 수급과 기술적 요인도 영향을 미쳤다. 금 상장지수펀드(ETF)에서 자금이 이탈한 데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증거금 요건 강화로 인해 마진콜(강제 청산)이 발생하면서 하락 압력이 확대됐다. 전규연 하나증권 연구원은 “가격 하락과 추가 마진콜이 서로를 강화하는 악순환이 형성됐다”고 진단했다.

채권 역시 안전자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전쟁 직후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장중 4.48%를 웃돌며 8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2년물 금리도 4%를 넘어섰다. 채권 금리와 가격은 반대로 움직인다는 점에서, 이는 채권 가격 전반의 하락을 의미한다. 특히 장기채는 향후 금리 경로에 더 민감한 만큼 하락 압력이 더 크게 나타났다.

국내 채권 시장도 휘청였다. 국고채 3년물 금리가 3.62%를 기록하는 등 2년 3개월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김현지 DS투자증권 연구원은 “정부의 26조2000억원 규모 전쟁 추경 등 현금성 지원에 따른 소비 유발 효과가 인플레이션 기대를 자극할 수 있어, 채권 금리의 추가 상승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백윤민 교보증권 수석연구위원도 “전쟁 장기화 우려와 신현송 차기 한은 총재 지명자의 통화정책 성향을 고려하면 국내 통화정책 기조가 예상보다 빠르게 긴축으로 선회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통화정책이 긴축으로 기울 경우 금리 상승 압력이 커지면서 채권 가격에는 하방 압력이 커진다.

주식, 채권, 금이 이처럼 동반 하락하는 배경에는 ‘스태그플레이션(성장 둔화 속 물가 상승)’ 우려가 자리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향후 12개월 내 미국의 경기 하강 확률을 약 30%로 제시했고, 핌코 역시 경기 둔화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물가와 성장 둔화가 동시에 나타나는 환경에서는 기존의 자산 배분 공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비트코인이 새로운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이달 초 비트코인은 장중 6만5500달러까지 밀렸다가 이후 빠르게 반등해 7만4000달러 선을 회복했지만, 3일 오후 2시 기준 6만6000달러 선으로 밀렸다. 주말과 휴장 없이 24시간 거래가 가능하고, 국경 간 이동이 자유롭다는 특성이 부각되면서 돌발적인 리스크에 대응할 수 있는 대안자산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변동성이 크다는 점에서 여전히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통적 투자 공식이 흔들리는 가운데 글로벌 투자기관은 자산 배분 전략을 재조정하고 있다. 블랙록과 인베스코 등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은 원자재를 인플레이션 대응 자산으로 제시하며 관련 자산 비중 확대 필요성을 강조했다. 호주 달러 등 원자재 가격과 연동되는 통화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금, 중장기적으로는 투자 기회 시각도
다만 섣부른 투자 전략 변경보다 유연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애버딘의 투자 매니저 페사 위바와는 “최근 시장 변동성이 상당히 큰 만큼 성급하게 전략을 바꾸면 오히려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며 “지금은 공격적으로 자산 비중을 재조정하기보다는 신중하게 대응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전쟁이 장기화해 실물 경기 둔화가 가시화될 경우, 시장의 초점이 인플레이션에서 ‘성장’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점도 변수다. 성장 둔화에 대한 공포가 커지면 중앙은행이 매파적 입장을 유지하기 어려워지며, 결국 급등했던 채권 금리가 다시 하락(채권 가격 상승)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분석이다.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는 미 국채 10년물 금리의 적정 수준을 3.90%로 평가하며, 현재 시장이 과매도 상태에 있다고 평가했다. UBS는 금리 인하가 시작될 경우 달러가 약세로 전환될 가능성을 제시했다.

금의 경우 단기적으로 조정을 겪고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친환경 에너지 전환에 따른 산업 수요 확대와 함께, 러시아·중국 등 주요 국가들이 달러 의존도를 낮추고 자국 통화 결제를 확대하면서 금의 전략적 수요가 구조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금 생산 증가율 둔화 등 공급 측 제약까지 맞물리며 장기 상승 여건이 형성되고 있다는 평가다. 조규원 스태커스 대표는 “지금은 단기 변동성에 흔들릴 시점이 아니라, 장기 관점에서 분할 매수를 고려할 구간”이라며 “세금 혜택이 있는 KRX 금 시장이나 실물 골드바를 활용하면 국제 시세 대비 유리한 가격에 접근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배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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