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음하는 지구촌…우리에게도 '헤일메리'가 필요하다

2026. 4. 4. 00:0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강양구의 ‘SF 사고실험실’
앤디 위어의 SF 소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주인공 그레이스의 활약을 통해 지구에 사는 우리 모두가 하나의 운명 공동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사진은 최근 개봉한 라이언 고슬링 주연의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한 장면. [사진 소니 픽쳐스]
지구가 달아오르는 추세가 심상치 않다. 특히, 2010년대 이후부터 지구 표면 평균 온도가 올라가는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최근 일단의 과학자는 일시적 추세가 아니라 지구 가열 속도에 가속도가 붙었다는, 비관적 해석에 힘을 실었다.

그런 와중인 2월 28일 오전 9시45분쯤(현지 시각)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강력한 폭발음이 들리더니 연기가 치솟았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기습 폭격을 감행한 것이다. 이 폭격으로 이란 최고 지도자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하면서 상황은 더욱더 악화했다. 3월 내내 계속된 전쟁으로 이란과 헤즈볼라 거점인 레바논에서만 30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21세기 내내 과학계가 경고해 온 기후 위기에 공동 대응하기는커녕 되레 전쟁으로 치고받는 우리의 모습을 보노라면 과연 인류의 미래가 있을지 묻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인류애를 돋우는, 그래서 지구에 사는 우리 모두 하나의 운명 공동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SF가 있다. 바로 앤디 위어의 『프로젝트 헤일메리』다.

고도의 지성 가진 금속 외계인 등장
인류애 돋우는 이 소설에서 역설적으로 인간은 딱 한 명만 등장한다. 우리의 주인공 ‘그레이스’는 우주선에서 기억상실증에 걸린 상태로 깨어난다. 자기 옆에는 동료였음이 분명한 중국인 남성과 러시아인 여성이 죽어 있다. 곧이어, 저쪽에 보이는 밝게 빛나는 별(항성)이 태양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혼자서 외계 항성계에 도착한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둘씩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기억은 더욱더 절망적이다. 어느 순간부터 태양의 출력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 상태대로라면 태양 에너지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지구 생태계는 여섯 번째 대멸종을 맞게 된다. 출력이 고작 10% 떨어지는 30년 안에 지구 인류 80억 명 가운데 절반이 굶주림과 대재앙으로 목숨을 잃는다.

그렇게 태양 출력을 떨어뜨리는 원흉은 별에서 별로 이동하면서 에너지를 흡입하는 우주 미생물 ‘아스트로파지’다. 그레이스는 바로 이 아스트로파지 연구를 이끄는 과학자였다. 우주생물학자(실제로 존재하는 연구 분야)였던 그는 이단적 가설을 주장하다 학계에서 쫓겨나듯 물러났다. 중학교 과학 교사로 살아가던 그는 역설적으로 그 ‘이단적 안목’ 덕분에 급하게 차출된다.

그럼, 지구가 결딴나기 직전인데 그레이스가 외계 항성에 와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학계가 태양계 인근의 항성계를 샅샅이 관찰했더니, 대다수 별이 태양처럼 출력이 떨어지고 있었다. 모두 아스트로파지에 감염된 것. 그런데 유독 한 별만 원래 출력대로 빛났다. 지구에서 빛의 속도로 이동하면 12년 걸리는(12광년) 고래자리 ‘타우 세티(Tau Ceti)’ 별(실제로 존재하는 별).

이제 그레이스의 임무가 무엇인지 눈치챘을 테다. 그는 타우 별이 아스트로파지의 에너지 흡입에 당하지 않은 이유를 알고자 지구에서 동료 둘과 함께 파견된 과학자였다. 우주여행으로 동료 둘이 사망했으니, 이제 인류와 지구 전체의 운명이 그의 활약에 달려 있다. 그레이스는 과연 이 불가능해 보이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까?

이 소설의 저자 앤디 위어는 영화로도 유명한 『마션』으로 데뷔했다. 『마션』은 무인도에 홀로 남겨진 한 남성의 생존 투쟁을 그린 대니얼 디포의 고전 『로빈슨 크루소』(1719)의 설정을 가져와 화성에 홀로 남겨진 과학자의 생존기를 유머러스하게 그리면서 인기를 모았다. 화성에서 감자밭을 일구는 과학자 이야기라니!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마션』과 비슷한가 싶으면서도 다르다. 인류 전체 가운데 딱 한 명 주인공만이 우주 오지에 떨어진 상황은 똑같지만, 나머지는 정반대다. 『마션』은 지구의 나사(NASA)가 화성에 고립된 동료를 무사히 귀환시키고자 안간힘을 쓰는 일이 이야기의 한 축이다. 반면,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그레이스는 혼자 힘으로 인류 전체를 구해야 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저자는 기막힌 상상력을 발휘한다. 아스트로파지가 망가뜨린 별은 태양만이 아니다. ‘우주 저편에서 인류와 똑같은 위기에 직면한 나름의 문명을 꾸린 지적인 외계 생명체가 있다면? 만약, 그들도 타우 별의 특별한 상황을 인지하고 탐사대를 꾸려서 온다면?’ 그럼, 그레이스는 혼자가 아니다. 이 소설에서 귀엽고 명민한 외계인 ‘로키’가 등장하는 이유다.

처음에 그레이스의 원맨쇼였던 소설은 외계인 로키가 등장하고부터 둘이 좌충우돌하며 지구와 로키의 고향 ‘에리드’를 구하는 마음을 흔드는 버디 무비가 된다. 소설 속에서 에리드는 지구에서 16광년 떨어진 ‘40 에리다니 A’ 별에 딸린 첫 번째 행성이다. 물론, 그 행성에 로키처럼 고도의 지성을 가진 금속 외계인이 산다는 가정은 허구지만.

아스트로파지와 로키와 같은 외계 생명체의 등장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 소설은 보통 사람에게 생소한 과학 분야인 우주생물학의 중요한 주제를 재미있는 이야기로 변주한다. 우주생물학은 지구 바깥 광활한 우주에 또 다른 생명체가 있으리라는 전제하에 그것이 어떻게 탄생해서 진화했고 또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다양한 방법으로 모색하는 연구 분야다.

어떤 독자는 연구 대상(외계 생명체)이 실제로 존재하는지도 불분명한 상황에서 우주생물학의 존재 자체가 우스꽝스러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진짜로 외계 생명체와 접촉한다면, 그리고 그들이 소설 속 로키처럼 음파로 세상을 보고 화음으로 대화한다면 어떻게 대응할까? 우주 생물학은 그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서 음파로 보고 소통하는 고래 연구에 관심을 가진다.

우주생물학이 파고드는 질문 가운데 하나가 생명의 기원이다. 생명의 씨앗은 지구에서 자생적으로 탄생한 것일까, 아니면 우주에서 운석을 타고 들어와 지구에 뿌려진 것일까? 답이 없을 것 같은 이 질문을 놓고서도 이 소설은 한 가지 가설을 편든다. 그레이스와 외계인 로키의 우정이 뜬금없어 보이지 않는 근거이기도 하다.

헤일메리, 미식축구서 유래한 관용구
작가 앤디 위어와 그가 집필한 소설 『프로젝트 헤일메리』. [중앙포토·AP=연합뉴스]
결정적으로, 이 소설과 우주생물학이 우리에게 던지는 철학적 질문도 있다. 지구 바깥 우주에도 수많은 생명체가 있다면, 하필 지구라는 같은 공간에서 이 시점에 함께하는 동시대 인류의 존재는 무슨 의미일까? 질문은 꼬리를 문다. 이란을 때리고 나서 쿠바 차례라고 호언장담하는 미국 대통령에게 우리가 이렇게 끌려다니는 일이 용납될 수 있을까?

만약, 인류의 운명이 결딴날 수 있는 심각한 위기가 당장 닥친다면 우리는 소설처럼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서 그것을 극복하는 행동에 나설 수 있을까? 사실, 이 질문의 답은 지지부진한 기후 위기 대응이 이미 내놓았다. 이 소설이 따뜻한 인류애를 고양하면서도,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판타지처럼 보이는 이유다.

미식축구를 즐기지 않는 우리에게는 생소한 제목의 ‘헤일메리(Hail Mary)’는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용어다. 미식축구 경기 종료 직전,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에서 역전을 노리고 던지는 무리수 패스. 어쩌면, 우리 인류에게 지금 필요한 일도 불가능에 가까운 헤일메리의 성공이다. 다행히 우리는 혼자도 아니고, 외계 항성에 내동댕이쳐 있지도 않다.

◆뒷얘기=알다시피,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라이언 고슬링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져 지난 3월 18일 한국에서도 개봉했다. 소설에 이어서 영화까지 본 처지라서 살짝 아는 척을 하자면, 영화는 소설의 과학적 디테일은 최소화하는 대신에 이야기의 중요한 뼈대는 그대로 가져오는 영리한 전략을 택했다. SF 읽기가 부담스럽다면, 영화만으로도 인류애를 넘어 우주애까지 충분히 고양된다.

앤디 위어는 『마션』의 대성공 이후 두 번째 소설로 『아르테미스』(2017)도 펴냈다. 제목대로 달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서점에서 『마션』, 『프로젝트 헤일메리』와 묶여서 3부작으로 판매하기도 하는 이 소설은 셋 가운데 제일 처진다. 굳이, 세 작품의 순위를 매기자면 『프로젝트 헤일메리』 〉 『마션』 ≫ 『아르테미스』이다.

강양구 지식 큐레이터. 과학 전문 기자이자 지식 큐레이터. 연세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23년 넘게 기자로 일하면서 과학기술·보건의료·환경 분야를 취재했다. SF를 거울 삼아 정치·사회·경제·문화를 가로지르는 다양한 문제를 들여다보았다. 『망가진 세계에서 우리는』 『과학의 품격』 등을 지었다.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