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예술은 어떻게 죽음을 애도하는가

전남일보 2026. 4. 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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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0. 김대성의 ‘다랑쉬’와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이후
이윤선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전남도 문화재전문위원
제주4.3 연주순례, 박솔지 해금 연주, 4.3기념관, 비설, 곤을동유적지, 북촌리 당산나무, 다랑쉬

2026년 1월 하순 작곡가 김대성의 다랑쉬 연주 순례에 동행하였다. 4·3의 현장을 찾아 김대성의 곡들을 연주하는 형식이었다. 박솔지가 해금연주를 하고 김대성, 이윤선, 방주현, 김찬정이 함께 하였다.

우리만의 연주 여행이었지만 사실은 약 3만 위(位)의 희생 영령들이 함께한, 아니지 70만명의 제주인들은 물론 허공으로 솟아오르고 땅속으로 스민 제 영령들이 함께해주신 연주였다.

서 있기도 힘든 다랑쉬 정상에서 불어대던 바람과 폐허의 곤을동에 내리쬐던 햇살과 오직 명패 하나하나로 현현하신 봉안실에서, 오가는 길 위에서, 출렁대던 파도 위에서, 겨울 땅 헤치고 올라온 수선화 꽃잎들에서 나는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바람으로 오신 이들과 함께 바람의 노래를 들었고 햇빛으로 오신 이들과 함께 햇빛의 노래를 들었으며 숨죽인 파도로 오신 이들과 함께 윤슬의 노래를 들었다.

연주 현장은 제주 4·3평화공원 위패봉안실, 다랑쉬 오름 정상, 북촌마을 당산나무, 곤을동 잃어버린 마을, 비설 동상 등 여러 곳이다. 비설(飛雪)은 1949년 1월 눈보라 속에서 두 살배기 딸을 안고 숨진 변병생 모녀의 비극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제주 4·3평화공원 안에 있다.

여러 날의 일정 내내 현장에서 해금곡을 들으면서 생각하였다. 우리에게 해금이라는 악기가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산자의 노래', '비설', '다랑쉬', '잃어버린 마을' 등 김대성의 4·3 관련 대표곡들을 통해 나투신 영령들이 그윽이 다가와 '작별하지 않는다'고 고백하는 것을 듣게 되어 감사했다.
제주4.3 연주순례, 박솔지 해금 연주, 4.3기념관, 비설, 곤을동유적지, 북촌리 당산나무, 다랑쉬

다랑쉬 애가(哀歌), 작별하지 않았기에 산자의 노래
김대성의 4·3 연작은 단순한 추모 음악이 아니다. '현장을 다시 발화하게 만드는 장소 특정적 기억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해금의 독창적 특성이기도 하지만, 말해지지 못한 목소리, 몸으로 되돌아오는 떨림 같은 것들이 시나브로 현현한다. 이 연작의 중심 악기로 해금이 반복해서 호출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해금은 선율을 깨끗이 정제하는 악기라기보다 음과 음 사이의 마찰과 흔들림을 드러내는 악기다. 말이 되기 이전의 떨림을 제 몸으로 먼저 울어대는 악기다. 김대성의 해금은 '진혼'보다 '증언'에 가깝다. 두세 차례 이전 칼럼들을 통해 내가 김대성에게서 포착했던 육자배기적 내면의 울림이다. '다랑쉬'가 그 출발점에 놓인다.

'다랑쉬'는 2002년 해금과 25현 가야금을 위한 작품으로 발표되었고 이후 여러 편성과 변주로 확장되었다. 노은아의 석사 논문(서울대, 2004)과 이를 인용한 2차 자료들에 따르면 계면조 음계를 바탕으로 하되 '라'를 중심으로 한 복수의 선법을 사용하고 남도 계면조와 서도토리, 프리지안 선법까지 끌어들여 음 진행의 단조로움을 피했다.

진도의 삼장개비장단을 바탕으로 헤미올라와 당김음이 전개되며 해금과 25현 가야금이 서로 다른 리듬 진행으로 부딪히는 긴장구조를 만들었다. 남도 계면조의 심연을 호출하면서도 서도 토리와 서구 중세 선법을 침투시켜 제주 4·3이 갖는 '지역적 비극'과 '문명사적 균열'을 동시에 울리게 한다. 다랑쉬굴은 4·3의 가장 참혹한 장소 중 하나이다.

평화재단과 제주시 정보에 따르면 1948년 12월 하도리·종달리 주민 11명이 토벌대에 발각되어 연기에 질식해 희생된 장소다. 이 사건은 굴이라는 폐쇄된 공간, 연기와 질식이라는 가시적 폭력, 그리고 사후 수십 년 만의 발굴과 증언이라는 층위를 가진다.

'다랑쉬'가 해금과 25현 가야금의 얽힘으로 시작해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는 것은 바로 이런 사건 구조와 깊이 상응한다. 굴 안의 공기에도 불구하고 끊기지 않는 호흡, 죽음의 공간임에도 살아 움직이는 선율이 전율을 일으킨다. '산자의 노래'는 '다랑쉬'보다 더 절제되고 더 벌거벗은 곡으로 읽힌다.

'다랑쉬'가 복수 악기 사이의 긴장과 상호침투를 통해 기억의 다층성을 조직한다면 '산자의 노래'는 해금 단독으로 그 기억을 외롭게 끌고 간다. 편성이 줄어든다는 것은 단순한 축소가 아니라 역사 서사의 배경음을 걷어내고 몸 하나, 선 하나, 호흡 하나만 남긴다는 뜻이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와 맞닿는 지점들이 있다.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을 다루되 직접적 역사서술보다 경하·인선·어머니 정심의 기억, 꿈, 눈, 상처, 동물, 사물의 이미지들을 통해 비극에 다가간다.

노벨상위원회는 이를 제주 학살의 그늘 속에서 트라우마를 함께 짊어진 이들의 애도 과정, 그리고 집단적 망각에 맞서 예술 프로젝트로 전환하려는 시도로 읽었다. 한강도 말했다. 정심에게 4·3의 직접 비극을 부여하고 인선과 경하를 통해 거리를 두며 천천히 4·3에 접근했다고. '작별하지 않는다'는 죽은 자를 앞세운 재현 문학이 아니라 산 자가 감당해야 하는 내면의 지진을 기록한 소설이다. '산자의 노래'를 포함해 김대성의 연작곡이 이 소설과 공명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둘 다 '누가 죽었는가'보다 '누가 끝내 죽음을 떠안고 살아가는가'를 묻는다. 작별하지 않았기에 산자의 노래다.
제주4.3 연주순례, 박솔지 해금 연주, 4.3기념관, 비설, 곤을동유적지, 북촌리 당산나무, 다랑쉬

남도인문학팁

다시 또 김대성과 한강을 소환하며

비설을 포함해 김대성의 작품들을 나는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의 이미지로 붙잡아 둔 바 있다. 4·3이 학살과 은폐의 역사였다면 빗발치는 눈보라는 그 위를 잠시 덮는 동시에 발자국을 드러내는 물질이다. 눈은 은폐와 노출을 함께 수행한다. '작별하지 않는다'의 핵심 이미지는 중첩적이다.

모든 것을 덮어 침묵시키는 듯하지만 바로 그 흰 것 때문에 검은 상처와 붉은 기억이 선명해진다. '비설'은 해금·가야금·타악이라는 편성으로 이 이중성을 소리로 만든다. 해금이 선을 긋고 가야금이 결을 만들고 타악이 떨어지는 입자감을 부여하기에 청자는 비로소 빗발치는 눈보라를 맞을 수 있다.

이 곡의 사회적 함의는, 4·3의 비극을 더 이상 사건도표로 설명하지 않고 기후, 촉감, 낙하, 침잠의 감각 체계로 재번역한다는 데 있다. 이것은 미학적 우회가 아니라 오히려 더 급진적인 기억 방식이다. 대금과 가야금을 위한 협주곡 '잃어버린 마을' 또한 곤을동의 기억을 재번역한다. '잃어버린 마을'은 2021년 제12회 ARKO 한국창작음악제에서 대금과 가야금을 위한 협주곡으로 초연되었다.

나는 몇 차례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을 김대성의 연작들과 구조적으로 연결해 보는 시도를 했다. 다시 정리해 둔다.

첫째, 둘 다 직접 서술보다 우회 서술을 택한다. 김대성은 정치적 사건을 음악으로 바꾸면서도 구호나 선언으로 가지 않고 선율과 음색과 편성의 변화로 기억을 호출한다. 한강 역시 4·3의 참혹상을 정면으로 재현하기보다 눈, 나무, 새, 손가락, 꿈, 병실, 집, 숲길 같은 우회적 이미지들의 네트워크로 접근한다.

둘째, 둘 다 생존자의 시간을 다룬다. 사건은 과거에 끝났으나, 고통의 시제는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 작품 속 시간은 선형으로 흐르지 않고, 현재가 과거에 잠식되고 과거가 밀치고 들어온다.

셋째, 둘 다 예술 자체를 기억의 도구로 사유한다. 음악과 문학이 이 장소들을 다시 울리고 다시 읽게 한다. 김대성의 '다랑쉬'는 사건의 응축, '산자의 노래'는 생존의 지속, '비설'은 기억의 기후화, '잃어버린 마을'은 공동체 소거의 공간화를 각각 담당하는 작품으로 배치할 수 있다. 이 연작들이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와 만날 때 단순한 교차 감상이 아니라 하나의 미학적 명제를 형성할 수 있다.

김대성은 이를 음의 떨림으로, 한강은 글의 잔향으로 수행했다. 활로 현을 긋고 문장으로 상처의 가장자리를 문지른다. 거듭 생각한다. 두 예술이 4·3의 현장에서 만날 수 있기를. 흐르는 바람으로 흔들리는 파도로 지상과 지하에서 숨 쉬시는 영령들의 넋을 예술의 힘으로 애도할 수 있기를.
제주4.3 연주순례, 박솔지 해금 연주, 4.3기념관, 비설, 곤을동유적지, 북촌리 당산나무, 다랑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