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가 못 쓰는 유치원 교사…“타이레놀 먹고 일해라”

유치원 교사로 일하고 있는 주아(가명) 씨. 24살 때 첫 직장으로 들어간 유치원에서의 충격적인 기억이 지금도 생생히 남아있습니다. 코로나19가 한창 유행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코로나19 확진을 받고 나서 유치원에 말씀을 드리니까 원장 선생님이, '회의시간에 분명히 말하지 않았었냐, 코로나에 걸리면 타이레놀을 먹고 일을 하라고 했는데 왜 대체 병원에 가서 확진을 받은 거냐'라고 불같이 화를 내시더라고요."
주아 씨를 제외한 다른 교사들은 모두 코로나19 의심 증상이 나타나도 병원을 찾지 않고 아이들을 가르쳐야 했습니다. 경기도 부천 사립 유치원 교사가 지난 2월 B형 독감에 걸리고도 쉬지 못하고 일하다 숨졌다는 소식이 남 일 같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숨진 교사는 유치원 발표회 준비를 하기 위해 매일 강도 높은 업무를 이어간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퇴근한 뒤에는 아이들과의 놀이 계획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늦은 밤까지 재택 근무를 했다고 합니다. 결국 독감 증세가 시작됐지만 해당 교사는 병원 치료도 제때 받지 못했고, 유치원 원장은 'B형독감에 걸렸다'는 보고를 받고도 "네ㅠㅠ"라고만 답했습니다. 체온이 40도 가까이 치솟은 뒤에야 조퇴할 수 있었고, 다음 날 새벽 응급실로 이송된 지 2주 만에 결국 숨졌습니다.
숨진 교사의 유족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을 열고 "병가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유치원 교사들의 현실은 너무나 가혹하다"고 토로했습니다. 고인의 49재를 맞아 오늘(3일) 저녁 7시 서울 보신각 앞에서 추모 집회가 열립니다.
숨진 교사와 주아 씨는 왜 법정 감염병에 걸렸는데도 쉬지 못하고 일하고, 원장으로부터 확진 판정을 받았다며 혼나야 했던 걸까요?
"결근을 하게 되면 대체 교사를 구해야 되잖아요. 사립유치원은 대체 교사를 직접 구해야 돼요. 구인구직 홈페이지나 다른 선생님한테 '대학교 동기 중에 일을 쉬고 있는 선생님이 있느냐'…."
송대헌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자문위원이 지난 2023년 조사한 결과를 보면, '휴가를 제대로 사용할 수 없다'고 답한 사립유치원 교사가 56.5%였고 '아예 병가라는 것이 없다'고 답한 교사도 53.3%였습니다.
■"병가라는 제도 처음 들어요" 사각지대 놓인 사립유치원 교사
각 시도교육청은 '사립유치원 교원 인사 실무 매뉴얼'을 만들어 병가를 1년에 60일까지 쓸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매뉴얼이 현장에서는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주아 씨도 '매뉴얼에 대해 알고 있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놀라며 "병가라는 제도 자체를 처음 들어봤다"고 했습니다. "유치원 교사는 오로지 유치원 방학에만 쉴 수 있어요. 그 유치원 방학이 보통 일주일 정도예요. 일주일 빼고는 못 쉬는 거예요."
사립유치원이 사립학교법상 관리·감독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점도 문제의 원인으로 지적됩니다. 사립 초·중·고등학교는 모두 법인으로 등록되어야 하지만, 사립유치원만은 개인이 설립하고 운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개인이 운영하고 있는 사립유치원이 86%에 이릅니다.
이 때문에 교육 당국의 제재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김원배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정책교육국장은 "법인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니 선생님들의 처우가 열악해지는 것"이라며, "사립학교도 국가 공무원에 준해서 임용, 복무규정 등이 지켜지게 되어 있는데, 유일하게 지키지 않는 곳이 사립 유치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지난 2019년 사립유치원 원장들이 유치원비로 명품 가방을 사고 개인 카드값을 내는 등 회계 비리 실태가 드러나면서 '유치원 3법'이 개정됐지만, 법인화는 추진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육부는 지난 2023년 "사회적 합의가 앞서야 한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교사들이 유치원 원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감염병에 걸려도 계속 출근하라'는 원장의 암묵적 지시에 항의하면, 다른 유치원으로 직장을 옮기는 것조차 불가능할 수 있다는 겁니다.
"사립유치원 원장님들끼리 다 서로 아는 사이다 보니, 전에 다녔던 유치원에 전화를 걸어서 확인을 해요. '이 교사 거기서 일했을 때 어땠었냐'…. 유치원에 퇴사하겠다고 말씀드렸을 때 원장님이 '내가 과연 좋은 말을 해줄 수 있을까?'(라고 하시더라고요)."

■"법정 감염병 걸린 교사 병가 사용 의무화해야"
교사 단체들은 최소한 법정 감염병에 걸렸을 때만이라도 출근하지 못하도록 의무화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요구합니다. 학교보건법 55조를 보면 학교의 장은 학생이나 교직원이 감염병에 걸렸을 경우 등교 중지를 '명할 수 있다'고 되어있습니다.
김 국장은 "'감염병에 걸리면 등교 중지를 명해야 한다'는 강행 규정으로 바뀌어야 문제가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며, 대체인력을 확충하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감염병에 걸렸을 때 선생님들을 의무적으로 쉬게 해주려면 대체 인력이 필요하겠구나'라고 생각해야지, 대체 인력만 요구하게 되면 경제적 논리에 빠져서 현장이 실효성 있게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유치원 교사 생활 1년 만에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얻게 됐다는 주아 씨는 이번 부천 유치원 교사 사망 사건을 계기로 유치원 교사의 휴식권에 대한 제도적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사회적으로 비치는 시선에서 보면 유치원 교사는 아이들과 행복하게 일하는, 희생 정신이 필요한 직업이라는 게 당연시돼 있잖아요. 하지만 교육의 질이 높아지려면 교사가 먼저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교사가 안전해야 아이들도 안전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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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연 기자 (sa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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