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팡이 짚고, 등에 업혀서라도"...78년 세월 초월한 그리움

제주방송 신동원 2026. 4. 3. 15:51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아들 등에 업혀 4·3평화공원에 참배 온 양길홍씨. (사진, 신동원 기자)


제78주년 제주4·3희생자 추념일인 오늘(3일) 제주시 봉개동에 있는 제주4·3평화공원에는 이른 아침부터 유족들의 발길이 이어졌습니다.

고령의 유족들이 지팡이를 짚거나 휠체어에 의지해 행불인 묘역을 찾았습니다. 자녀의 등에 업혀 참배를 하러 온 유족도 있었습니다.

■ '아들아 나 좀 업어다오'...아버지 마주한 83세 큰아들의 회한

자녀의 등에 업혀 아버지의 묘비를 찾은 양길홍씨(83). 그의 아버지 고(故) 양석호씨(1925년생, 서귀포 남원면 신례리)는 1949년 정뜨르비행장(현 제주국제공항)에서 집단 학살됐습니다.

당시 겨우 6살이었던 장남 길홍씨는 참혹한 고문을 받은 어머니와 동생들을 위해 어떤 고생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다리가 불편해 목발 없이 걷기 힘든 몸이 됐습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수십 년 뒤 아버지 양석호씨의 유해가 제주공항에서 발견됐습니다. 당시 생일을 맞아 식당에서 식사를 하다 전화를 받았는데 "최고의 선물을 받았다"며 좋아했다고 합니다. 길홍씨를 업고 온 아들 양호석씨는 "조부님이 너무 어릴 때 돌아가셔서 아버지가 고생을 참 많이 하셨다"며 조용히 말했습니다. 

아버지 행불인 표석에 참배하러 왔다가 눈물을 훔치는 고정자씨 (사진, 신동원 기자)

■ 어머니 뱃속에서 헤어진 아버지...77세 유복자의 통곡

아버지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유복자 막내딸 고정자(77)씨는 시신조차 없는 아버지의 헛묘(가묘) 앞에서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고씨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대전형무소로 끌려간 아버지 고형호씨(1926년생, 제주읍 회천리)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홀로 4남매를 키우던 할머니마저 고씨가 12살 때 일찍 세상을 떠나자 삶은 가시밭길이었습니다.

아버지의 흔적이라도 더듬고 싶어 몇 번이나 대전 지역의 4·3 희생자 학살터인 골령골을 찾았지만, 아버지라 불러본 적 없는 막내딸은 그저 울음만 삼켰다고 합니다.

고정자씨는 "골령골 갔을 때 아버지 얼굴을 모르니까 돌아가신 생각이 잘 안 났다. 할머니가 아들(아버지) 어디 갔냐고 돌려달라고 아기들 4남매 고생한다고 막 울었던 것만 생각났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큰 오빠, 작은 오빠는 모두 떠나고 언니도 몸이 아파서 나만 왔다"고 했습니다.

78년 전 잃은 남편을 만나러 4·3평화공원을 찾은 양중윤 할머니 (사진, 신동원 기자)

■ 101세 아내의 참배...길 잃은 남편을 기다리며

올해 101세인 양중윤 어르신은 78년 전 헤어진 남편 김탁유씨(호적상 1926년생, 제주읍 화북리)를 만나기 위해 휠체어에 몸을 실었습니다. 4·3 방송을 보고 죽기 전에 꼭 남편의 행불인 표석을 보고 싶어 나섰다고 합니다.

말을 하는 것조차 힘겨웠지만, 절절한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양 어르신은 "(남편이)10월 초 열흘에 밭에 소 임자 찾아주고 제사 먹으러 다녀온다고, 그렇게 하고 가서 안 왔다"며 "길을 잃어버린 것 같다"라고 했습니다. 또 "내가 더 알았으면 많이 말해줄 건데 이것밖에 모른다"고 했습니다.

양 어르신의 남편 김탁유씨는 학살의 광풍이 가장 심하게 몰아치던 1948년 10월 제사집에서 군경에 의해 체포된 뒤 행방불명됐습니다. 당시 양 어르신의 나이는 23세로 평생 재가를 하지 않았습니다. 젊을 적에는 심한 고문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는 현재 생존한 최고령 4·3희생자의 배우자로 알려졌습니다.

현덕홍씨 표지석에 참배하러 온 여동생 현정자(가운데)씨와 그의 남편, 현씨의 조카 현종훈(맨 오른쪽)씨 (사진, 신동원 기자)

■ "무죄 판결 조금만 일찍 나왔어도"

대구형무소로 끌려가 21살 나이에 생을 마감한 고(故) 현덕홍씨(1929년생, 조천면 함덕리)의 묘역에는 여동생 현정자(83) 씨와 조카 현종훈 씨가 자리했습니다. 제주농업학교를 다니던 수재였던 오빠는 자손도 남기지 못한 채 떠났습니다.

조카 현종훈씨는 "아버지(현덕홍씨 남동생)가 살아 생전에 큰아버님의 (재심 재판)무죄 판결을 그렇게 보고 싶어 하셨는데 돌아가시고 1~2년 뒤에야 판결이 나왔다"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이어 "이제 바람은 큰 아버지 유골 찾아서 모시는 것"이라며 "많지 않아도 조금이라도 있으면 모셨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습니다.

현덕홍씨는 4·3 당시 대구형무소로 끌려간 뒤 집단학살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대구형구소에선 제주도민 200여명이 수감돼 있었습니다. 이들 중 다수가 경산 코발트광산에서 희생된 걸로 알려졌는데, 올해 1월에 처음으로 유전자 감식을 통해 4·3 행불인의 시신이 확인되기도 했습니다. 현씨 여동생 현정자씨는 작년에 채혈을 했고, 현씨의 조카인 현종훈씨는 올해 초 채혈을 했습니다. 

한편, 희생자 유골을 찾기 위해선 최대한 많은 유족의 채혈이 필요합니다. 유전자가 세대를 건너 발현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아들대가 채혈을 했다고 해도 손자대에서 이뤄진 채혈로 희생자를 찾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날 4·3평화공원에서도 유족들을 대상으로 한 채혈 안내가 이뤄졌습니다. 

4·3 때 대전형무소로 끌려가 목숨을 잃은 큰 오빠 현상훈씨 묘역에 참배 온 현양자씨와 그의 딸 (사진, 신동원 기자)


4·3평화공원 행불인 묘역에 참배하러 온 유족 (사진, 신동원 기자)

JIBS 제주방송 신동원 (dongwon@jibs.co.kr) 기자

Copyright © JIB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