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대’ 트럼프 규탄 시위 뒤엔 3중고 ‘쇼킹 지표’
지지율 최저치…전쟁·고물가·이민 단속에 분노 폭발
(시사저널=김하늬 미국 통신원)
"그냥…모든 게 문제(It's just…everything)." "너무 상황이 나빠서 내향적인 사람들까지 거리로 나왔다(It's so bad the introverts are out here)."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향한 분노가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다. 이란 전쟁의 늪, 치솟는 유가와 물가, 강경한 이민 단속 후폭풍이 한꺼번에 폭발하면서 미국 전역이 들끓고 있다. 소비심리는 꺾이고 금융시장마저 흔들리는 가운데 트럼프의 국정 지지율은 집권 2기 최저치로 추락했다. 중간선거를 불과 7개월 앞둔 시점, 전쟁·인플레이션·이민이 뒤엉킨 '트럼프 리스크'가 정치권 전체를 뒤흔들며 심판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反트럼프 정서, 공화당 텃밭까지 확산
3월28일(현지시간) 미국 50개 주 전역에서는 '노 킹스(No Kings·왕은 없다)'를 내건 대규모 반(反)트럼프 시위가 열렸다. 가디언은 주최 측 추산을 인용해 미국 내 3300여 건, 해외 12개국 이상에서 동시다발 집회가 열렸고 참가자는 800만 명을 넘었다고 전했다. 워싱턴포스트(WP)도 50개 주에서 3300건이 넘는 집회가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로이터는 전국적으로 3200건이 넘는 집회가 열렸다고 전하면서 뉴욕, 필라델피아, 댈러스, 워싱턴 등 대도시뿐 아니라 소규모 지역사회까지 시위가 확산했다고 짚었다. 참가자 규모는 대부분 주최 측 추산인 만큼 독립적으로 완전히 검증된 수치는 아니지만 외신들은 이번 시위를 미국 역사상 가장 큰 단일 시위 중 하나로 평가하고 있다.
이번 시위의 표면적 구호는 '반권위주의'였지만 거리로 나온 유권자들을 묶은 실제 '접착제'는 따로 있었다. 바로 이란 전쟁이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가 이란에 대한 첫 공격을 지시한 뒤 휘발유 가격 급등과 정치적 후폭풍이 이어졌다"며 "이번 시위에는 전쟁이 가장 강력한 참가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가디언도 "ICE(이민세관단속국) 단속, 투표권, 성소수자 권리 등 다양한 이슈가 공존했지만, 현장에서 가장 일관되게 반복된 메시지는 반전이었다"고 전했다. WP도 "이번 시위가 낙태권 후퇴, 이민 단속 강화, 또 하나의 인기 없는 전쟁에 대한 반발이 결합된 형태"라고 진단했다. 다시 말해 '노 킹스'는 단순한 반트럼프 구호가 아니라 '전쟁까지 벌이면서 권한을 밀어붙이는 대통령'에 대한 포괄적 저항으로 진화한 셈이다. 로이터는 "친(親)트럼프 맞불 시위대와 충돌이 벌어진 곳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미 전역에서 반트럼프 정서가 대도시를 넘어 보수 지역으로 확산했다"고 전했다.
거리의 분노는 여론조사에도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매사추세츠대 앰허스트가 유거브에 의뢰해 3월20~25일 미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트럼프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33%로 집계됐다. 지난해 4월 44%, 지난해 7월 38%보다 더 낮아진 것으로, 집권 2기 들어 최저치다. 이 조사에서 인플레이션 대응 지지율은 24%, 일자리 정책은 30%, 관세 정책은 28%에 그쳤다. 한때 트럼프의 최대 강점으로 여겨졌던 이민 정책에 대한 지지율도 35%로 내려왔다. 조사 책임자인 타티셰 은테타 교수는 "치솟는 물가, 주식시장 급락, 중동의 인기 없는 전쟁, 공항 대기줄을 초래한 셧다운, 대통령 반대 전국 시위가 동시에 벌어진 상황에서 지지율 하락은 놀랍지 않다"고 설명했다.
전쟁에 대한 시선은 더 냉랭하다. 같은 조사에서 전쟁을 지지한다는 응답은 29%에 그친 반면,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63%에 달했다. 지상군 파병에 찬성한 응답은 8%뿐이었고, 반대는 67%였다. 그런데도 41%는 결국 미국이 이란에 지상군을 보낼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는 트럼프의 "지상군은 없다"는 메시지에 대한 신뢰가 그만큼 낮다는 뜻으로 읽힌다. 매사추세츠대 공동조사 책임자인 레이먼드 라라자는 "미국인들은 지상전을 원하지 않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될 것이라고 본다"며 기대와 현실 인식 사이의 괴리를 지적했다.
경제 지표도 좋지 않다. 미시간대 소비자심리지수의 지난 3월 확정치는 53.3으로 2월의 56.6에서 하락했다. 1년 기대 인플레이션은 3.8%로 전월보다 0.4%포인트 뛰었다. 로이터는 "전쟁 여파로 국제유가가 50% 넘게 급등하고 미국 내 휘발유 가격이 갤런당 3.98달러 수준까지 오르면서 정치 성향과 연령, 소득 계층을 가리지 않고 소비심리가 악화됐다"고 전했다. 미시간대 조사도 현재 경제 여건 지수와 기대지수가 모두 후퇴했다고 밝혔다. 전쟁이 길어질 경우 소비 둔화와 성장세 약화로 연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트럼프 이미지, '강한 리더'에서 '통제 불능'으로
정치적으로 더 부담스러운 대목은 트럼프 핵심 지지층인 마가 진영 내부의 미묘한 균열이다. 매사추세츠대 조사에 따르면 2024년 전체 트럼프 지지자 중에서도 17%가 자신의 선택에 유보적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공화당원 다수는 여전히 이란 전쟁을 지지하지만 지상군 파병 문제에서는 거부감이 상당하다. 여기에 전쟁이 유가와 물가를 밀어올리고, 관세가 주택·자동차·전자제품 가격까지 자극하고 있다는 불만이 누적되면서 "전쟁을 끝내겠다던 대통령이 또 다른 전쟁을 시작했다"는 비판이 우파 진영 내부에서조차 나온다. 거리에서 폭발한 '노 킹스' 구호를 단지 진보진영의 감정 배설로 보기 어려운 이유다.
민주당은 이를 중간선거의 동력으로 바꾸려 하고 있다. NYT는 "메인, 미시간, 매사추세츠 등 주요 상원 경선 지역 후보들이 이번 시위에 대거 합류했고, 피트 부티지지와 코리 부커 등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인물들까지 거리로 나왔다"고 전했다. 가디언도 "참가자 상당수가 단순 집회 참석을 넘어 지역 조직화와 선거 동원으로 이어지길 기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물론 시위가 곧바로 표로 환산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전쟁과 물가, 이민 단속, 민주주의 훼손 우려라는 네 가지 악재가 한꺼번에 결합한 지금의 흐름은 분명 트럼프에게 위험 신호다.
백악관은 이번 시위를 "트럼프 망상 치료 세션"이라며 깎아내렸지만, 상황은 그렇게 가볍지 않다. 전쟁은 지지율을 깎고, 유가는 소비심리를 짓누르며 강경 이민 정책은 핵심 지지층 바깥의 중도층을 밀어내고 있다. 트럼프가 여전히 공화당의 절대적 구심점인 것은 맞지만 '강한 지도자' 이미지가 '통제 불능 대통령' 이미지로 바뀌는 순간, 선거의 공기는 급속히 달라질 수 있다. '노 킹스' 시위는 그 변곡점이 이미 시작됐음을 보여주는 경고음에 가깝다.
실제 외신들도 이번 흐름을 단순 시위가 아닌 정치적 전환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로이터는 "이번 시위는 유권자 결집의 초기 신호이자 중간선거를 앞둔 정치적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평가했고, 가디언 역시 "노 킹스 운동은 단발성 집회를 넘어 지역 조직화와 선거 동원으로 이어질 수 있는 촉매"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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