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림사에서 9년간 면벽수행”…‘선종 창시자’ 달마대사와 소림사 [정용식의 사찰 기행]
선종의 뿌리를 찾아서 (1)

1989년에 개봉했던 한국 영화 중에 ‘달마대사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란 선문답 같은 영화제목이 있다. 절에 사는 동자승의 눈에 비친 인간의 생과 사의 문제를 다룬 영화라고 한다. 달마대사는 한국인에게 그리 생소하지 않다. 절 앞 기념품점이 아니더라도 못생긴 얼굴의 ‘달마도’를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달마대사가 어디서 어느 동쪽으로 갔다는 것일까.
고대 중국의 고승 조주(趙州) 선사에게 한 제자가 위와 똑같은 질문을 던지자 “뜰 앞의 잣나무다”라는 희한한 답을 했다. “부처를 찾거나 설명하려 하지 말고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현실(마음)을 직시하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범인으로선 이해하기 쉽지 않다.
논리로는 풀 수 없는 엉뚱하거나 모순처럼 보이는 문답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불교(선종)에서 말하는 선문답(禪問答)이었다. 한국불교의 뿌리는 이러한 중국의 선종으로부터 대부분 연유하고 있다.

인천공항에서 3시간 정도 비행하면 1억명의 인구를 가진 중국 하남성의 성도(城都) 정주공항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한 시간 정도 버스로 이동하니 중국의 5악 중 하나인 중악(中嶽) 숭산에 있는 소림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악은 하늘의 뜻을 받기 위해 황제가 동서남북 중앙 등 5곳의 큰 산을 지정해 제사를 모시는 곳이며 중악은 중앙에 있는 곳이다.

이곳은 소림무술로 유명한 곳이지만 달마대사가 9년간 면벽(面壁)수행을 하며 중국 선종을 태동시키고 이를 제자 혜가에게 선불교의 법맥을 전달한 곳으로 의미가 있다.
중국불교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달마대사(Bodhidharma, 470~543년)가 태동시킨 선불교이다. 2조 혜가에게 전해진 선불교는 3조 승찬·4조 도신·5조 홍인으로 이어졌고 6조 혜능대사에 와서 형성된 남종선이 한국과 일본으로 흘러들어와 대부분의 한국 불교 종파의 뿌리가 됐다.
그래서 부리부리한 눈과 못생긴 몸매의 달마대사 그림(달마도)이 우리나라 사찰 인근에서 쉽게 볼 수 있어 낯설지 않다. 중국 선종의 원류를 찾아가는 길은 한국 불교의 정체성을 확인해 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중국 선종을 탄생시킨 달마는 ‘법 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뜻하며 보리달마로 불리고 있다.
5~6세기 초경 남인도 향지국왕의 셋째 왕자로 태어난 달마는 인도불교 제27조 ‘반야다라’에게서 선종의 법을 이은 인도불교 제28조이기도 하며 스승의 뜻에 따라 중국으로 왔다.

달마의 스승은 중국불교의 심각한 상황과 그 속에서 겪을 위기, 억압 등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나의 법은 중국에서 흥하리니, 너는 대승의 법을 동쪽으로 전하라”고 부탁한 것이다.

선종(禪宗)의 기원은 붓다가 영산회(靈山會)에서 말없이 꽃을 꺾어 보였을 때 제자들 중 오직 ‘마하가섭’만이 그 뜻을 이심전심으로 이해하고 미소 지었다는 염화미소(拈華微笑)나 염화시중(拈華示衆)의 고사에서 찾는다.
그래서 마하가섭은 선법(禪法)을 이어받은 제1조로서 숭배한다. 달마대사가 남인도에서 중국 대륙 남방으로 가서 전파한 선(禪)은 달마 계통의 선법(禪法)이라 해 달마선(達摩禪) 또는 흔히 선종이라고 해 달마는 선종의 제1대 조사로 불린다.
달마대사는 마하가섭에서 전승한 선종의 제28조이고 중국 대륙 선종의 제1조(초조)인 것이다.

520년 달마대사는 인도에서 중국 광동성으로 들어와 절을 중건하는 일에 정력과 국고의 재물을 쓰는 양무제의 위선을 비판하는 대화를 나눈 뒤 위나라 소림사로 들어가 수행했다.
당시 중국은 불교가 전래한 지 한참이 돼 많은 경전이 번역되고 도(道)를 얻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경전을 중심으로 교학 불교가 발달해 학파 간 대립이 노골화돼 있었고 선(禪)은 초현실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어긋나 있는 그들에게 정신을 차리도록 달마대사의 죽비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달마의 가르침은 ‘진리나 깨달음은 외부의 교리 경전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 안에 있다’는 것으로 불교에 ‘의식의 방향전환’을 요구했던 것이다.
그로 인해 달마는 양무제의 노여움과 교종 계열 승려들의 질투를 받아 몇 번이고 승려나 귀족으로부터 독살의 위협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남중국해를 거쳐 중국 광동성에 도착한 달마는 양나라로 가서 중국 불교사에서 가장 불교적인 황제라는 양무제(502~549년 재위)를 만났다. 양무제는 스스로 계를 받고 스님이 되고자 할 정도로 계율을 엄격히 지켰고 이를 국가 질서로까지 확장하며 스스로 불법의 수호자로 자임한 황제였다.
필자가 예전에 우연히 접했던 불서(佛書) 벽암록(碧巖錄)을 펼치니 제1칙 달마불식(達磨不識)이 나온다. 달마가 양무제와 만나 선문답을 나눈 내용이었다.
양무제는 교학과 의례로 불교를 체계화시키고 확장했기에 인도에서 온 달마에게 자신의 공덕을 인정받기 위해 성 밖으로 나가 몸소 달마선사를 맞이해 문답을 진행한 것이다.
양무제가 물었다.
“ 성스러운 깨우침의 중요한 본질은 어떤 것인가?”
달마가 말했다.
“텅 비어서 성스러운 깨우침이라 할 만한 것이 없다.”
무제가 물었다.
“그렇다면 짐을 대하는 그대는 누구인가?”
달마가 말했다.
“알지 못한다.(不識)”

양무제는 달마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고 달마는 인연이 없음을 알고 양자강을 건너 위나라 소림사로 갔다. 후에 양무제의 스승 지공선사가 이르길 “달마는 관음보살로서 글이나 말을 빌리지 않고 이심전심으로 부처님의 깨우침을 전하는 자이다”라고 했다.
양무제의 제도화된 불교와 달마의 깨달음 중심의 불교가 정면충돌한 사건이다. 당시의 중국불교가 오랜 시간 선행과 공덕의 축적을 통해 점진적 해탈로 나아가는 길이었다면, 달마는 본성의 깨달음을 통해 곧바로 번뇌를 벗어난 청정한 지혜를 갖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공덕은 시간 위에 쌓이지만 깨달음은 시간을 벗어난 것이었다. ‘얼마나 오래 걸었는가가 아니라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라는 인식의 전환이다.
광동성에는 달마가 스쳐 갔던 여러 절이 있다.

무협지를 보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도 ‘무술의 메카’하면 떠올려지는 곳이 중국의 소림사다. 숭산의 소림사 가는 길목에는 소림 무술학교 및 사설 무술학교들이 즐비하고 이곳에서 승려, 재가자 등 수만 명이 무술을 연마하고 있다.
496년 북위의 효문제(471~499년 집권)가 고승 불타선사를 위해 창건했다는 소림사는 621년 13명의 스님이 당태종 이세민을 구하는 사건 이후 국가로부터 무장스님(무승)을 양성하도록 인정받는 사찰이 됐다.
소림무술 전통이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그러나 14세기 홍건적의 난, 17세기 명청 교체기. 20세기 초 군벌 싸움 등 정치적 격변기마다 혹독한 시련을 겪었고, 문화대혁명(1966~1976년)을 거치면서 국가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는 단절의 역사도 있었다.
소림무술은 장시간 좌선이 요구되는 수행 공간에서 신체와 정신을 단련하는 도구가 되기도 했다. 1980년대 개혁개방의 흐름 속에 등장한 영화 ‘소림사’로 인해 중국 전역에서 무술을 배우려는 아이들이 몰려들면서 국가에서 관광 수입을 위한 무술의 메카로 띄워 소림사는 또 다른 부흥기를 맞이한 것이다.

유명 관광지답게 소림사에는 스님들은 별로 보이지 않은데 많은 관광객으로 인산인해다.

소림사 입구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10여분 들어가면 입구엔 수백기의 고승들의 사리탑이 탑림을 이루고 있어 소림사의 오랜 역사를 느낄 수 있다.

벽돌을 만든 240여개의 묘탑이 1만4000㎡에 각기 다른 다양한 모양으로 숲을 이루고 있어 이곳에서 무술 영화 촬영도 종종 한다고 한다.

입구 탑림 왼편에는 혜가선사의 이조암 올라가는 리프트 카가 있다. 오른편은 달마대사가 면백 수행했던 달마동 올라가는 길이 있으며 앞쪽으로 곧장 가면 소림사다.

소림사에는 눈 오는 날 혜가가 달마를 찾아와 제자가 되겠다고 묵묵히 서있던 것을 상징하는 입설정(立雪亭)이 있다.
그곳에 초조달마부터 5조 홍인까지 조사상이 모셔져 있다.

무승(武僧)의 절답게 사찰안 고목들은 무술 연마를 위해 사용한 듯 손가락 크기의 구멍들이 쉽게 발견된다.
‘서방선인’ 법당은 법당 안에서 발을 내리치며 무술을 연마한 듯 벽돌 바닥이 뒤틀려있다

달마대사의 무덤에서의 부활을 상징하는 신발 하나를 손에 든 맨발의 홀쭉한 달마대사 조각상이 유난히 눈에 들어와 일행들에게 관련 설화를 설명해 줬다.

‘문수전’ 안의 이해하기 힘든 의문 가득한 ‘달마돌’에도 눈길이 간다.

소림사는 여러 전각이 질서 없이 배치돼 보이는데 대부분 송나라 때(1125년) 건물이라 한다. 정기적으로 소림무술 시연도 있다는데 일정상 볼 수 없어 조금은 아쉬움도 남았다.

소림사 뒷산 정상에는 거대한 달마대사 금동상이 멀리서도 쉽게 눈에 띌 정도인데 그 아랫녘에 ‘달마동’이 있다.
소림사에서 30여분 포장길 오르막을 지나니 가파른 계단 길이 30여분간 이어진다.

웬만한 체력이 아니고선 올라오기가 쉽지 않아 일행 중 30여명이 도전했으나 달마동까진 18명만이 시간차를 두고 올라왔다.

달마대사가 9년간 면벽 수행했다는 동굴 ‘달마동’은 천연바위 동굴에 1평 정도 공간에 달마상이 안치돼 있다.

좁은 굴 내부에 터를 잡고 기도하는 스님도 있고, 나이 든 지킴이 보살님이 지팡이로 방문객들을 위해 벽을 가리키는데, 아마도 혜가가 달마에게 한쪽 팔을 잘라 바친 것을 상징하는 팔 같은 모양이 벽에 부조돼 있다.

달마는 광동을 떠나 소림사에 이르러 벽을 마주 대하고 9년 동안 면벽좌선에 몰두하며 때를 기다렸다. 종일 침묵을 지켜 사람들은 그를 ‘벽관바라문’ 이라 불렀다고 한다.
달마는 이렇게 말했다.
“중생은 본래부터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부처와 동일한 본성을 가지고 있는데 외부 세계로부터 우리 마음을 자극해 오는 장애들 때문에 거짓을 쫓아 진실에서 떠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 의식의 관심을 외부 세계로부터 되돌려 우리 자신의 내면으로 향하도록 해야 한다.”
내면에 숨어있는 참된 본성을 깨닫는 것이 진정한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엄동설한 눈 쌓인 소림굴 앞에 사십초로의 한 스님이 나타나 제자 되기를 간청했다. 달마는 냉정하게 거부했고 스님은 사흘 밤낮을 눈 속에 선 채 꿈쩍하지 않았다.
드디어 달마가 말문을 열었다.
“무엇을 구하느냐?”
“뭇 중생을 구하는 법을 구합니다.”
“만약 하늘에서 붉은 눈이 내리면 법을 주겠노라.”
그 순간 그 스님은 칼을 빼 단칼에 자기 왼팔을 잘라 버렸다. 붉은 피가 눈밭에 사방으로 휘날리면 붉은 눈이 된 것이다.
입설단비(立雪斷臂, 팔을 잘라 붉은 눈을 휘날리다). 이렇게 그 스님은 달마의 제자가 됐고 혜가라는 법맥을 받았다.
달마가 중국에 도래한 아홉 해가 지난 뒤, 마침내 혜가(487~593년)를 만나면서 선불교가 전수된다. 달마는 제자인 혜가에게 ‘마음이 부처요, 이 마음이 곧 법이니, 법과 부처는 둘이 아니다’라는 교시를 내렸다.
‘깨달음은 밖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지금 이 마음을 바라보는 데에 있다’는 조사선(祖師禪)의 원칙을 분명히 했다.

달마대사는 이방의 서역 스님이며, 중국 교단에서 배척당한 고승이었지만 선법을 전한 중국 선종의 초조로서 중국 불교의 가장 강력한 상징이 됐다.
그래서였을까.
죽음마저 초월해 죽은 이후에도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달마의 귀환 설화가 있다.
서역으로 사신으로 갔다 돌아오는 송운이라는 사람이 달마를 다시 만났을 때 달마는 흰 신발 한 짝을 들고 서역의 천축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 소식을 들은 조정에서 깜짝 놀라 무덤을 열어봤는데 시신은 간데없고 신발 한 짝만 남아 있었다고 한다.
달마대사가 불교의 중심 질문을 ‘무엇을 얼마나 오랫동안 쌓았는가?’ 쌓았는가’(공덕)에서 ‘무엇을 보았는가(자각했는가)’로 인식을 전환하는 출발이 된 것이다.
글·사진 = 정용식 ㈜헤럴드 상무
정리 = 민상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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