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화 피고 지고

요즘 핸드폰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까맣게 잊고 있던 과거의 기억을 소환시키곤 한다. 핸드폰 화면에 불쑥 등장한 ‘2년 전 오늘’ 사진엔 지금 막 피어난 수선화와 꼭 같은 모습의 수선화가 활짝 피어 있다. 심지어 ‘5년전 오늘’, ‘12년전 오늘’의 사진에도 판박이처럼 같은 수선화가 웃고 있다.
정말 신기하다. “어떻게 지금 내 눈 앞의 수선화, 2년 전의 수선화, 5년전의 수선화가 한결같이 같은 모습일까? 매년 부활이라도 하는 건가? 아니면 늙지 않는 걸까? 해마다 어딜 갔다 오는거지?” 잠시 엉뚱한 생각을 한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일년에 고작 몇 주 정도 땅 위로 보이는 이파리와 꽃이 수선화의 삶 전체라고 생각하는 나의 무자 때문이다. 알고 보니 수선화는 다년생 식물이었다. 매년 그 자리에서 다시 피는 것이 당연하다. 수선화는 보이지 않는 땅 속에서 길고 긴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얼마 전, 나이 드는 것의 의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점점 나이 들어가는 육신을 어떻게 대해야 할 지, 육체적인 나이는 속절없이 들어가는데 마음은 여전한 듯한 이 부조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나이가 들어도 사는 것은 여전히 힘들고 어려운 건 또 왜인지…. 이런 여러가지 생각들이 질문에 녹아 있었다. 나이 들어감에 대해서 생각하면 여러 감정들이 복잡한 실타래처럼 뒤엉키곤 한다.
인생은 크게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청년기, 중장년기, 노년기. 각양각색의 인생을 파는 백화점이 있다고 하자. 여러 상품이 진열되어 있다. 교사, 사회활동가, 사업가, 청소부, 현모양처…. 그 중에서 마음에 드는 상품을 골라서 입는다. 그리고 그 인생 대로 산다. 그러다가 “이게 아닌거 같아!” 아니면 “슬슬 지겨워 지는데?” 같은 생각이 들면 다른 상품으로 바꾸어서 또 다른 인생을 사는 것이다.
알고 보면 ‘나’는 옷에 불과하다. 청년기는 나의 삶이라고 할 만한 것이 마땅히 없다. 사상과 이념, 집단과 조직, 친구와 연인에 의지한다. 자신의 열정과 에너지를 모두 바칠 뭔가를 찾지만 시행착오가 일상이라 인생의 효율성이 높지 않다. 어떤 옷이 맞는지 몰라서 헤매는 시기이다. 중장년기에는 나름대로 그럭저럭 맞추어서 입는다. 옷이 맞을 수도 있고 옷에 몸과 마음을 맞출 수도 있지만 더이상 ‘나’라는 옷을 찾기 위해 방황하지 않는다. 나름대로의 인생철학이 생기고 살아가는 이유가 생긴다. 내 인생의 스토리텔링이 생긴다. 산다는 것은 ‘나’라는 옷을 고르고, 고치고, 입어서 그 옷에 몸과 마음을 길들이는 시간이며 그 옷이 곧 ‘나’라고 굳게 믿어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가 죽음이 성큼 다가오는 노년기가 닥치면 한낱 옷에 불과한 ‘나’가 사라질까 두려워 노심초사한다.
사람이 죽으면 “돌아가셨다”고 한다. “돌아간다”는 말은 왔던 그 자리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마치 수선화가 매년 똑같은 모습으로 피는 것은 원래 있던 땅 속에서 지상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고 몇 주를 피었다가 시들면 애초에 왔던 땅 속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처럼, 우리의 선조들은 왔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죽음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은 죽고 수선화는 시든다. 사람은 태어나고 수선화는 피어난다. 비록 수선화가 다년생일지라도 인간의 관점으로 본 수선화는 해마다 부활하고 해마다 생을 반복한다.
물론 왔던 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고 과연 그런 곳이 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수선화가 그러하듯 우리들의 이번 생 역시 삶의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 이런 생각은 나로 하여금 차분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이번 생을 포용할 수 있게 해준다. 만약 수중의 돈이 나의 전재산이라면 어떻게든 그 돈을 지키기 위해 전전긍긍할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쓰는 것이 좋을지 먼저 생각할 것이다.
우리는 죽는 것이 아니라 다만 돌아갈 뿐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입던 옷이 낡고 헤지고 더러워지는 것일 뿐이다. 소풍 같은 봄날이 하염없이 흘러간다. 잠깐 왔다 갔던 천상병 시인처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 고 말할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다.
/중현 centrue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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