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가 있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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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사관학교 앞에는 특별한 마을이 하나 있다. 노원기차마을이다. 건물 한 채로 이루어진 이곳은 마을보다 전시관이라는 설명이 어울리지만, 막상 안으로 들어가면 왜 '마을'이라 이름 붙였는지 납득하게 된다. 노원기차마을은 디오라마 전시관이다. 여기서 또 궁금증이 생길 수 있다. 디오라마는 뭘까? 디오라마는 미니어처를 사용해 특정 장면이나 풍경을 재현한 것이다. 19세기까지는 이동식 극장 장치를 뜻했지만, 오늘날에는 지구본을 확대한 것처럼 특정 풍경을 고스란히 재현한 미니어처 세계관을 의미한다. 뜬금없이 왜 노원기차마을 이야기인가 싶을 수 있다. 노원기차마을에 눈길이 간 건 최근 이곳에 새로운 마을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2022년 스위스관을 시작으로 문을 연 노원기차마을은 지난 1월 31일 이탈리아관을 새롭게 개관했다. 먼저 다녀간 사람들에 따르면 감탄사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디테일이 대단하다고. 궁금해졌다. 왜 하필 디오라마 전시관을 노원구에 만들었을까? 전 세계 수많은 나라들 중에서도 왜 스위스와 이탈리아였을까? 입이 떡 벌어진다는 미니어처는 누가 어떻게 만들었을까? 그 답을 듣기 위해 직접 찾아갔다. '가슴엔 조국을, 두 눈은 세계로.' 이 문장이 보이자 육군사관학교 앞에 도착했다는 게 실감 났다. 노원기차마을은 육군사관학교 정문 앞에 있다. 주차장과 이어진 계단을 오르자 인상 좋은 남자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부터 먼 길 오셨습니다. 들어가시죠." 이날 취재를 도와주기로 한 노종오 주무관이다. 현재 노원구 여가도시과 화랑대철도공원팀에서 근무 중인 그는 2021년부터 기차마을 업무를 맡았고, 이번 스위스관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실무를 담당했다. 노종오 주무관을 따라 노원기차마을에 들어서자 눈앞에 만년설이 펼쳐졌다.




기차의 나라
노원기차마을 스위스관은 크게 세 구역으로 나뉜다. 마테호른, 융프라우, 몽블랑. 알프스산맥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세 봉우리가 천장을 향해 솟아 있다. 그 아래에는 취리히, 루체른, 베른, 라우터브루넨, 로잔, 제네바 등 스위스 도시들의 풍경과 시민의 모습이 구현되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끈 건 인터라켄역. 역사 앞 플랫폼에는 각양각색의 기차들이 출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난간 앞에 설치된 버튼을 누르자 기차들이 산길을 따라 힘차게 달렸다. 움직이는 건 기차뿐만이 아니다. 설산 한가운데에서는 산사태가 일어나 구조 헬기가 공중으로 떠오르는 모습이 연출되고, 어두컴컴한 동굴 안에서는 붉은 눈빛을 내뿜으며 뛰쳐나오는 설인 예티를 볼 수 있다. 입을 다물지 못한 채 한창 관람하던 중, 밤이 찾아왔다. 전시관은 10분 단위로 낮과 밤이 바뀐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면 각 건물 안은 노란색 조명이 들어오는데, 그 안에 섬세하게 연출된 복도, 계단, 가구, 사람들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노원기차마을은 국내 최대 규모의 디오라마 전시관이다. 애초에 우리나라에 디오라마 전시관이 많지 않다. 그렇다면 노원구는 어떤 계기로 디오라마 전시관을 만들었을까? 마테호른을 지나 세른 입자 물리학 연구소에 도착했을 무렵 노종오 주무관이 입을 열었다. "당시 구청장님께서 독일 함부르크로 출장을 가셨어요. 거기서 미니어처 원더랜드에 들렀대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디오라마 전시관이죠. 때마침 노원구에서 경춘선숲길 조성을 준비하고 있었거든요. 기차를 테마로 완성될 공원에 기차가 주인공이 되는 미니어처 마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거죠." 물론 처음부터 모든 과정이 수월했던 것은 아니다. 공원 부지 안에 새로이 건물을 세워야 했고, 인근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태릉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노원기차마을이 위치한 곳은 개발제한구역이자 문화재 보호구역이다. 심의를 받는 데 걸린 시간만 약 1년. 수많은 나라 중에서도 스위스를 선택한 건 스위스 철도망이 세계 최고 수준이기 때문이다. 스위스는 영토 대다수가 알프스산맥이다. 그 때문에 다른 교통수단 대비 안정성이 뛰어난 철도망을 일찍이 준비했고, 오늘날 스위스 철도는 뛰어난 정시성과 편리한 환승 시스템으로 유명하다.





1:87 비율로 만든 세상
스위스관이 끝나는 곳에 문이 하나 있었다. 이 문을 열고 지나면 스위스관의 두 배에 달하는 공간이 나온다. 올해 초 새롭게 문을 연 이탈리아관이다. 이탈리아 역시 기차와 연관이 깊은 나라다. 실무진은 이탈리아가 '유럽 최초로 고속철도를 개통한 열차 선진국'이라는 점에서 기차마을 테마와 잘 맞아떨어진다고 판단했다. 다만 스위스관에서는 볼 수 없던 광경이 필요했다. 이탈리아를 선택한 두 번째 이유는 '바다'였다. 스위스는 국토 대다수가 산악지대지만, 이탈리아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 국가다. 물론 이탈리아에도 돌로미티산맥 같은 유명한 산들이 있지만, 스위스에서는 볼 수 없는 해안 풍경을 연출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관은 로마, 베네치아, 나폴리, 피렌체, 피사 등 도시별로 공간이 나뉘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공간은 폼페이. 스위스관에 마테호른이 있다면, 이탈리아관에는 폼페이 화산이 있다. 심지어 폼페이 화산은 4D로 완성됐다. 높은 산을 미니어처로 만들 때는 나무와 철사로 뼈대를 잡고, 그 위에 우레탄과 시멘트를 덮어 완성한다. 하지만 폼페이 화산은 조명을 추가로 설치해 실제로 용암이 흐르는 장면을 연출했고, 관람객 동선에는 진동 패드를 설치해 지진이 났을 때의 감각을 물리적으로 재현했다. 놀라운 점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로마 콜로세움, 피렌체 대성당, 피사의 사탑, 리오마조레 해안 마을, 나폴리항에 정박한 크루즈, 베네치아의 리알토 다리까지. 우리가 익숙하게 알던 이탈리아의 랜드마크가 완벽하게 재현되어 있었다. 콜로세움에 들어선 수백수천 명의 사람들은 누구 하나 똑같은 동작 없이 저마다 검투사에 열광하고 있었다. 노종오 주무관은 이탈리아관 안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곳으로 바티칸 시스티나 경당을 꼽았다. 실제 시스티나 경당에는 미켈란젤로가 완성한 '천지창조' '최후의 심판'이 있다. 실무진은 이 디테일을 놓치고 싶지 않았지만, 관람객을 그 안에 들어가게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이걸 준비했습니다." 노종오 주무관이 버튼을 누르자 웅장한 오케스트라 곡이 울리더니 경당 지붕이 활짝 날개를 펼치며 벽화와 천장화를 드러냈다. 디테일도 디테일이지만, 디오라마를 완성할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은 따로 있다. 바로 역설계다. 해안가 마을은 물론이고 폼페이 화산이나 마테호른 같은 자연 풍경은 설계도가 없다. 때문에 오직 현장에서 촬영해온 사진을 보고 그 풍경을 재현해야 한다. 노원기차마을 속 세계관은 실제 세계의 1:87 비율로 완성됐다. 1:87 비율에도 이유가 있다. 기차 미니어처는 대부분 'HO 스케일'이라 부르는 1:87 비율로 완성되기 때문에 그 주변 건물들 역시 같은 비율을 적용한 것이다. 모든 관람을 마치고 노종오 주무관에게 물었다. 기차의 매력은 뭘까요? 그는 처음 인사를 건넬 때와 같은 미소를 띤 채로 답변을 건넸다. "전 고향이 부산입니다. 처음 공무원 시험을 보러 서울에 가던 날, 새벽 일찍 기차를 탔어요. 여러모로 불안하고 초조했죠. 저 나름대로 새로운 세계에 발을 딛는 거였으니까요. 지금은 아이들과 함께 부산으로 갈 때 기차를 탑니다. 돌이켜보면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 행복한 순간에는 기차가 있었죠. 이제는 오래된 소꿉친구처럼 느껴집니다." 돌이켜보면 기차에서만 느끼는 기분이 있었다. 덜컹거리는 열차 안에서 빠르게 흘러가는 풍경을 바라볼 때의 기분, 열차가 멈출 때마다 새롭게 타고 내리는 사람들을 구경할 때의 기분, 조금씩 목적지에 가까워질 때마다 그곳에서 보낼 하루를 상상할 때의 기분. 노원기차마을 안을 달리던 자그마한 기차들을 볼 때도 그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 촬영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 1993년에 쓰였다던 일본 철도 광고가 생각났다. 어슴푸레한 저녁 철길을 달리던 기차 사진 아래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사랑이라든지, 용기라든지, 보이지 않는 것도 함께 타고 있다.'


경춘선숲길과 화랑대역
1939년 7월 25일 뜨거웠던 여름날, 경춘선의 첫 경적이 울렸다. 경춘선은 우리 민족 자본으로 만든 최초의 철도 시설이었다. 서울 노원구의 성북역(현 광운대역)부터 강원도 춘천의 춘천역까지 24개 역을 지나는 87.3km의 노선. 경춘선은 서울 도심을 벗어날 때 타는 기차였고, 그 철도는 수많은 이들의 낭만이 깃든 길이었다. 경춘선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였던 1937년, 강원도청을 기존 춘천에서 철원으로 옮기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서울에서 춘천으로 향하는 열차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소식을 들은 춘천 유지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철도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도청을 옮기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경춘철도 기성회'가 생겼고, 춘천 유지 12명은 사비를 털어 경춘선을 만들었다. 일제강점기 철도는 한반도의 자원을 강탈하기 위한 목적으로 건설되었지만, 경춘선은 춘천 사람들이 주인이 되어 만든 철도였다. 그로부터 71년 뒤, 2010년 12월 20일 경춘선은 마지막 열차 운행을 끝으로 폐선됐다. 기존의 낡은 단선 철도가 늘어나는 교통량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경춘선은 한동안 버려졌지만, 2013년부터 선로를 그대로 유지한 채 공원화를 거쳤다. 노원기차마을은 경춘선 숲길 마지막 구간인 화랑대역 앞에 있다.
옛 화랑대역도 특별하다. 옛 화랑대역은 비대칭의 삼각형을 이루는 박공지붕이 특징이다. 지금까지 서울에 남아 있는 유일한 간이역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재 제300호로 지정되었다. 여전히 열차도 남아 있다. <은하철도 999>가 생각나는 검은색 열차는 총 164만2500km를 달린 미카 증기기관차로, 어린이대공원에 있던 것을 옮겨온 것이다. 그 밖에도 화랑대철도공원을 만든다는 소식에 히로시마 전철 주식회사가 기증한 전차, 체코 프라하에서 운행을 마치고 퇴역한 노면전차도 화랑대역 앞을 지키고 있다.



화랑대 철도공원 노원기차마을
주소 서울시 노원구 화랑로 622
운영시간 10:00~19:00, 월요일 휴무
입장료 어른 4000원, 청소년 및 어린이 2000원, 노원구민 50% 할인
CREDIT INFO
Editor 주현욱
Photographer 신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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