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부영의 브랜드 & 트렌드 <65>] 색(色)이 곧 브랜드다… 도시의 얼굴이 된 색채 ①


여행에서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다 보면 이상한 일이 생긴다. 어떤 사진은 온통 분홍빛이고, 또 어떤 사진은 파란 골목이 가득하다. 다른 사진에는 보라색 다리가 화면을 가득 채운다. 필터를 씌운 건지 실제 풍경인지 잠시 헷갈린다. 그런데 놀랍게도 실제다. 그리고 그 색은 우연이 아니었다. 누군가 수십 년, 수백 년 전에 내린 결정의 결과였다.
영국의 여행 전문 기업 홀리두(Holidu)는 세계 주요 도시의 가장 지배적인 팬톤 색상을 분석했다. 결과는 흥미롭다. 런던은 빨간색(Pantone 186C)이었다. 빨간 2층 버스, 빨간 전화박스, 버킹엄궁전 근위대의 빨간 군복. 시드니는 오페라하우스를 감싸는 파란색(Pantone 2935C), 스페인 바르셀로나는 가우디 건축의 짙은 붉은색(Pantone 7608C)이다. 분석한 도시마다 단 하나의 지배적인 색이 있었다. 기업이 색으로 브랜드를 만드는 것처럼, 도시도 고유한 색으로 정체성을 만든다. 브랜드는 특정 대상에 떠올리는 강렬한 ‘생각, 연상, 단어, 문장 그리고 색깔 등의 총합’이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도시를 기억할 때 이름보다 먼저 어떤 이미지와 색을 떠올린다.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는 이렇게 말했다. “색은 즉각적으로 주의를 끈다. 형태는 그다음이다.”
색은 브랜드가 가진 가장 빠른 시각적 자산이다. 로고보다 먼저 인식되고, 슬로건보다 오래 기억된다. 도시가 색을 선택하는 순간, 그 색은 단순한 외관이 아니라 정체성이 된다. 왕의 명령으로 칠해진 색이든, 소셜미디어(SNS)가 퍼뜨린 색이든, 탄생 배경은 달라도 색이 도시의 얼굴이 된 순간 이야기는 같은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자유의 색–케이프타운 보카프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시그널힐 자락에 보카프(BoKaap)라는 동네가 있다. 선홍색, 코발트블루, 라임그린, 카나리아 옐로가 뒤섞인 집이 자갈길 양쪽으로 늘어서 있다. 지금은 전 세계 여행자가 인증 사진을 남기러 오는 명소지만, 이 색의 기원은 아름답기보다는 아프다. 1760년대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등지에서 끌려온 무슬림 노예가 이곳에 살았다. 케이프 말레이(Cape Malay)라 불리던 이들은 기술자, 목수, 재단사로 일하며 지역 경제를 떠받쳤지만, 집을 임차하는 동안에는 반드시 흰색으로만 칠해야 했다. 규정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1834년 노예제가 폐지되고 주민이 집을 직접 살 수 있게 되자, 하나씩 원색이 번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자유롭다’ 는 선언이었다. 강제된 흰색에서 자발적 원색으로 전환. 이것은 단순한 색의 변화가 아니라 정체성의 회복이었다. 도시 브랜딩의 관점에서 보면 색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역사와 기억을 담는 상징 자산이 된다.
비슷한 이야기는 아일랜드 더블린에서도 발견된다. 조지안 양식의 현관문이 저마다 다른 원색으로 칠해진 것도 영국 지배 시절 모든 현관문을 검정으로 통일하도록 강제한 법령에 대한 반발에서 시작됐다. 억압에 맞선 색의 반란이라는 점에서 보카프와 닮았다. 지금은 더블린의 알록달록한 현관문이 도시를 상징하는 관광 이미지가 됐다.
현재 케이프타운 관광청은 색이 바래지 않도록 페인트 비용을 지원하고, 2019년에는 보카프 일대 600여 채 건물을 국가 문화유산으로 지정해 외관을 법으로 보호하고 있다. 억압의 기억이 도시의 가장 빛나는 브랜드 자산이 된 역설이 이 골목에 담겨 있다.
기획 없이 만든 브랜드–셰프샤우엔
모든 성공한 브랜드가 철저한 기획에서 탄생하는 것은 아니다. 3M 연구원 스펜서 실버는 1968년 항공·우주용 강력 접착제를 개발하려다 전혀 다른 결과물을 얻었다. 너무 약해서 어디든 붙였다 떼어낼 수 있는 접착제였다. 그는 이 발명을 ‘문제를 기다리는 해결책’이라고 불렀다. 이 물질은 6년 동안 쓸모를 찾지 못하다가 1974년 동료 아트 프라이가 찬송가 책갈피로 활용하면서 포스트잇이탄생했다. 오늘날 포스트잇의 상징인 노란색도 우연이었다. 시제품 개발 당시 옆 연구실에 굴러다니던 노란 스크랩 종이를 사용했을 뿐이었다. 실패한 실험이 글로벌 브랜드가 된 사례다.
모로코 북부 리프 산맥 속 작은 도시 셰프샤우엔(Chefchaouen)도 비슷하다. 도시 전체가 50가지 이상의 파란색 톤으로 덮여 있다. 이 색의 기원에는 여러 설이 있지만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1930년대 스페인을 떠나 이주한 유대인 공동체가 하늘과 신성을 상징하는 색으로 집을 칠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처음에는 특정 구역에 국한됐다. 변화는 스마트폰과 SNS가 만들었다.

전 세계 여행자의 사진이 인터넷에 퍼지자 주민이 스스로 파란색을 도시 전체로 확장하기 시작했다. 누구의 지시도 없었고, 거대한 예산도 투입되지 않았다. 처음부터 전략이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반복되는 이미지가 사람의 기억 속에서 하나의 인식을 만들었고, 그 인식이 결국 도시 브랜드가 됐다.
브랜드는 전략에서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기억 속에서 먼저 탄생하기도 한다. SNS 확산 이전인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셰프샤우엔은 모로코와 스페인 관광객이 주로 찾는 소도시였다. 하지만 2018년 연간 방문객은 12만 명을 넘어섰고 지금은 모로코 관광의 핵심 도시로 자리 잡았다.
왕의 명령이 도시의 얼굴이 되다–자이푸르
인도 라자스탄주의 주도 자이푸르(Jaipur)는 ‘핑크 시티(Pink City)’로 불린다.
이 이름의 시작은 1876년이다. 영국 왕세자 앨버트 에드워드의 방문을 앞두고 당시 마하라자 람 싱 2세가 도시 전체를 환영의 표시로 분홍색으로 칠하도록 명했다. 분홍색은 인도에서 환대와 환영을 상징하는 색이었다. 석조 건물이 가득한 구시가지가 하루아침에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방문이 끝난 뒤에도 색은 지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자이푸르시는 구시가지 건물 외관을 분홍색으로 유지하도록 법으로 의무화했다. 어긴 건물주에게는 벌칙이 따른다. 왕의 일회성 환영 행사가 150년 뒤 도시의 정체성이 됐다. 오늘날 자이푸르는 델리와 아그라와 함께 인도 ‘황금 트라이앵글’의 핵심 도시다. 핑크 시티라는 이름 자체가 수백만 명의 관광객을 부르는 가장 강력한 마케팅 문구가 됐다.
색이 만드는 경제–퍼플섬과 황룡강
색으로 유명해진 마을은 세계 곳곳에 있다. 스페인의 후스가르는 애니메이션 영화 ‘스머프 3D’ 홍보를 위해 마을 전체를 파란색으로 칠했다. 프로젝트가 끝난 뒤에도 관광객이 몰리자, 원래대로 복구하지 않고 그대로 ‘스머프 마을’로 남았다. 멕시코 파추카의 라스 팔미타스는 2만L의 페인트로 마을 전체를 벽화처럼 채색했다. 신이 내려와 한밤중에 도시를 색칠하고 간 듯한 풍경이 되었다. 범죄와 마약의 온상이던 이 마을에 색이 들어서자, 범죄율이 줄고 주민에게 새로운 희망이 생겼다. 한국에도 비슷한 사례가 등장했다.
전남 신안군 반월도와 박지도는 아무도 모르는 섬이었다. 2014년 연간 방문객은 1만5000명에 불과했다. 군청은 이 섬에 자생하는 보라색 도라지꽃과 라벤더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2015년부터 지붕, 다리, 도로, 안내판, 식기까지 보라색으로 통일했다. 결과는 극적이었다. 2021년 방문객은 28만7000명으로 6년 만에 약 19배 증가했다. 같은 해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가 선정하는 세계 최우수 관광 마을에도 이름을 올렸다. 전남 장성군 역시 한국에서 보기 드문 컬러 브랜딩 사례다. 장성의 강 황룡강에 누런 용이 산다는 전설에서 출발한 노란색은 도시 전체의 상징색이 됐다. 노란 꽃 축제와 노란 경관 조성 사업을 통해 지역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했다. 사람은 이름보다 먼저 색을 기억한다. 그래서 색이 장소의 정체성이 된 순간, 사람이 몰리고 경제가 따라왔다. 도시 브랜드의 역사에서 이 패턴은 놀라울 만큼 반복된다.
Copyright © 이코노미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