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년만에 불러본 “아빠”...백발된 계순 할망은 끝내 오열했다
70여년 전 찬 바람 속에 아버지를 잃었던 두 살배기 아이가 일흔일곱의 백발 노인이 되어 마침내 '진짜 딸'의 이름을 되찾았다.

고 할머니의 기억 속에 아버지는 현실 속의 인물이 아닌, 세월과 함께 낡고 낡아 빛바랜 사진 한 장으로 남아 있다. 1948년 겨울, 아버지 고(故) 고석보님은 "아이가 죽을까 봐" 스스로 토벌대 앞에 나섰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1948년 6월 태어난 고 할머니는 출생신고를 하기도 전인 같은해 12월 아버지를 잃었다. 아버지는 남의 땅 밑에 남몰래 묻혔고, 딸은 평생을 작은아버지의 딸로 숨죽여 살아야 했다.

고 할머니가 '진짜 아버지'를 찾을 수 있게 된 것은 70여년 만이었다. 제주4.3특별법 개정 이후 대법원 규칙과 시행령 정비를 거쳐 가족관계 정정이 가능해졌다.
고 할머니는 2023년 친생자관계존재확인을 신청했고, 결국 지난해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의 결정에 의해 가족관계 등록을 정정할 수 있게 됐다.
DNA 유전자 같은 직접 증거 등을 기초로 한 소송이 아닌, 국가 차원의 결정으로 친자 관계가 인정된 첫 사례다.
허리 수술 이후 장애를 앓고 있어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아버지의 산소에도 찾아가기 어려운 처지지만, 묘비 앞에 선 할머니는 어린아이처럼 "아빠"를 외치며 목 놓아 울었다.
우리 아버지. 갓난쟁이 두고 가려니 얼마나 가슴이 미어지셨을까.
품에 한번 제대로 안아보지 못한 어린 핏덩이인데.
'고계순'. 딸 이름은 알고 계세요? 아버지 딸 계순이.
꿈에라도 한번 보러 오시지.
난리가 끝나면 이름도 짓고, 호적에도 올리리라 다짐했지만,
끝내 올리지 못한 딸 이름 석 자.
하지만 오늘 보고계시죠?
당당히 아버지 딸로 앉아 있는 딸 계순이를.
추념식장 맨 앞줄에 앉아 아버지의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고 할머니는 끝내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이제야 원망스러운 것도 다 없어졌어요. 아빠, 75년 만에 자식이란 거 호적에 다 올리고...정말 감사해요."
김민석 국무총리는 이날 추념사에서 "가족관계등록부에 비로소 아버님의 이름을 올리게 된 고계순 어르신 등께 깊은 위로의 마음을 드린다"며 "국민주권정부는 4.3의 진실을 낱낱이 규명하고 4.3희생자와 유족 여러분의 명예 회복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