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년만에 불러본 “아빠”...백발된 계순 할망은 끝내 오열했다

박성우 기자 2026. 4. 3.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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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78주년] 가족관계정정 고계순 할머니 절절한 사연

70여년 전 찬 바람 속에 아버지를 잃었던 두 살배기 아이가 일흔일곱의 백발 노인이 되어 마침내 '진짜 딸'의 이름을 되찾았다.

3일 제주4.3평화공원에서 거행된 제78주년 제주4.3희생자 추념식에서는 뒤틀린 가족관계를 바로잡고 75년 만에 친아버지의 호적에 이름을 올린 고계순(77) 할머니의 가슴 절절한 사연이 소개되며 장내를 숙연케 했다.
3일 오전 제주4.3평화공원에서 봉행된 제주4.3희생자추념식에서 70여년만에 가족관계가 정정된 고계순 할머니가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사진=제주도청출입기자단 ⓒ제주의소리

고 할머니의 기억 속에 아버지는 현실 속의 인물이 아닌, 세월과 함께 낡고 낡아 빛바랜 사진 한 장으로 남아 있다. 1948년 겨울, 아버지 고(故) 고석보님은 "아이가 죽을까 봐" 스스로 토벌대 앞에 나섰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1948년 6월 태어난 고 할머니는 출생신고를 하기도 전인 같은해 12월 아버지를 잃었다. 아버지는 남의 땅 밑에 남몰래 묻혔고, 딸은 평생을 작은아버지의 딸로 숨죽여 살아야 했다.

두살배기 고 할머니는 엄동설한의 추위에도 아빠를 찾아 헤매다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청력을 잃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가세가 기울자 남은 가족들의 삶 또한 순탄치 못했다.
3일 오전 제주4.3평화공원에서 봉행된 제주4.3희생자추념식에서 70여년만에 가족관계가 정정된 고계순 할머니의 사연 영상 갈무리. ⓒ제주의소리

고 할머니가 '진짜 아버지'를 찾을 수 있게 된 것은 70여년 만이었다. 제주4.3특별법 개정 이후 대법원 규칙과 시행령 정비를 거쳐 가족관계 정정이 가능해졌다.

고 할머니는 2023년 친생자관계존재확인을 신청했고, 결국 지난해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의 결정에 의해 가족관계 등록을 정정할 수 있게 됐다.

DNA 유전자 같은 직접 증거 등을 기초로 한 소송이 아닌, 국가 차원의 결정으로 친자 관계가 인정된 첫 사례다.

허리 수술 이후 장애를 앓고 있어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아버지의 산소에도 찾아가기 어려운 처지지만, 묘비 앞에 선 할머니는 어린아이처럼 "아빠"를 외치며 목 놓아 울었다.

우리 아버지. 갓난쟁이 두고 가려니 얼마나 가슴이 미어지셨을까.

품에 한번 제대로 안아보지 못한 어린 핏덩이인데.

'고계순'. 딸 이름은 알고 계세요? 아버지 딸 계순이.

꿈에라도 한번 보러 오시지. 

난리가 끝나면 이름도 짓고, 호적에도 올리리라 다짐했지만,

끝내 올리지 못한 딸 이름 석 자.

하지만 오늘 보고계시죠? 

당당히 아버지 딸로 앉아 있는 딸 계순이를.

추념식장 맨 앞줄에 앉아 아버지의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고 할머니는 끝내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이제야 원망스러운 것도 다 없어졌어요. 아빠, 75년 만에 자식이란 거 호적에 다 올리고...정말 감사해요."

김민석 국무총리는 이날 추념사에서 "가족관계등록부에 비로소 아버님의 이름을 올리게 된 고계순 어르신 등께 깊은 위로의 마음을 드린다"며 "국민주권정부는 4.3의 진실을 낱낱이 규명하고 4.3희생자와 유족 여러분의 명예 회복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