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금융권 덮친 에이전틱 AI···한국은 규제·인프라 속 협업형 선택
국내는 책임·데이터 제약 속 도입 제한
샌드박스 중심 협업형 모델로 적용 추진

금융 산업이 자동화 단계를 넘어 자율화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 인간의 입력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고 실행까지 이어지는 '에이전틱 AI(Agentic AI)'가 그 중심에 자리 잡았다. 정보 수집과 분석에 그치는 기존 AI와 달리 에이전틱 AI는 판단 결과를 즉각적인 거래와 결제 행위로 연결한다는 점에서 기존 금융 처리 구조에 변화를 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실전 적용, 한국은 단계적 도입
미국 금융권은 실제 적용 국면에 들어섰다. 대형 투자은행들은 AI를 보조 수단이 아닌 독립적인 실행 주체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트레이딩 영역에서는 변화가 가장 빠르게 나타난다. 기존 알고리즘 매매가 사전에 설정된 조건에 따라 움직였다면, 에이전틱 AI는 실시간 데이터를 스스로 학습하고 전략을 수정한다.
업무 전반에서도 변화가 이어진다. 고객 응대와 자금세탁방지, 리스크 관리 등 전통적으로 인력이 담당하던 영역까지 자동화 범위가 확장됐다. 자율 에이전트는 규제 보고서를 작성하고 이상 거래를 감지하면 즉시 조치를 실행한 뒤 사후 기록까지 남긴다. 일부 금융기관에서는 내부 운영 시스템 자체를 AI 중심으로 재편하는 사례도 나타난다. 이 과정에서 오류 가능성이 줄어드는 대신 시스템 의존도가 높아지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한국 금융권은 기술 도입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적용 방식에서는 보다 신중한 접근을 보인다. 국내 금융지주들은 AI 기반 서비스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기존 'AI 뱅커' 수준을 넘어 업무를 수행하는 에이전트 도입이 추진되고 있으며 이를 위한 인프라 정비도 병행된다. 대표적으로 레거시 시스템을 현대화하기 위한 코드 전환 작업과 클라우드 기반 환경 구축이 진행 중이다. 개인 자산관리 영역에서는 AI가 고객 데이터를 분석해 금융 상품 가입이나 투자 판단을 제안하는 단계까지 도달했다.
규제·데이터·인프라 제약
다만 실행 권한을 AI에 직접 부여하는 단계에는 아직 이르지 못했다. 가장 큰 제약은 규제 환경과 책임 구조다. AI가 독립적으로 거래를 수행했을 때 발생하는 손실에 대해 책임 주체를 명확히 규정하기 어렵다는 점이 걸림돌로 작용한다. 금융소비자 보호 체계가 강하게 작동하는 국내 환경에서는 이러한 불확실성이 사업 리스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관련 법적 기준은 논의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데이터 환경 역시 차이를 만든다. 미국은 다양한 외부 데이터와의 연계가 비교적 자유로운 반면, 국내 금융 데이터는 기관별로 분리된 형태가 많다. 에이전틱 AI가 고도화되기 위해서는 실시간 데이터 흐름이 필수적인데, 데이터 접근성이 제한되면 활용 범위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기술 기반 측면에서도 제약이 존재한다. 국내 금융권의 핵심 시스템은 오랜 기간 축적된 구조 위에 구축돼 있어 유연한 확장이 쉽지 않다. 이를 현대화하기 위한 작업이 진행되고 있으나 비용과 시간 부담이 크다. 인프라 전환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에이전틱 AI를 도입할 경우 기능 활용이 제한될 가능성이 있다.
완전 자율 어려운 환경, 협업형·단계적 검증 중심
이 같은 환경을 고려하면 한국에서 미국과 동일한 형태의 완전 자율형 금융 모델이 단기간에 자리 잡기는 쉽지 않다. 대신 인간과 AI가 역할을 분담하는 방식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제시된다. AI가 데이터 분석과 실행 준비를 담당하고 최종 승인 단계는 인간이 맡는 형태다. 이를 통해 책임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판단이다.
또한 전면 도입 이전 단계에서 기술 검증을 병행하는 접근이 유력하다. 규제 샌드박스를 활용해 특정 거래나 결제 영역에 한해 에이전틱 AI의 자율성을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소액 해외송금이나 기업 간 정산처럼 거래 구조가 비교적 단순하고 리스크 범위가 명확한 영역을 중심으로 파일럿 적용이 이뤄질 가능성이 거론된다.
이 과정에서는 거래 승인 절차를 단계별로 분리해 AI의 개입 범위를 구간별로 설정하고 실시간 모니터링과 사후 감사 체계를 결합하는 방식이 병행될 것으로 보인다. 감독당국 입장에서는 기술 적용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 유형과 책임 구조를 사전에 점검할 수 있고 금융사 역시 운영 리스크를 통제 가능한 수준으로 관리하면서 적용 범위를 점진적으로 넓힐 수 있다는 점에서 현실적인 도입 경로로 평가된다.
☞에이전틱 AI(Agentic AI)=주어진 지시를 해석하거나 답변하는 데 그치지 않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필요한 작업을 순차적으로 수행하는 인공지능을 뜻한다. 일반 생성형 AI가 질문에 대한 응답을 만드는 데 강점이 있다면 에이전틱 AI는 정보 탐색, 판단, 실행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자율적으로 처리하는 데 초점이 있다.
☞자금세탁방지=범죄를 통해 얻은 자금의 출처를 숨기거나 합법적인 자금처럼 보이게 만드는 행위를 막기 위한 제도와 절차를 뜻한다. 금융회사는 고객 신원 확인, 의심 거래 탐지, 이상 거래 보고 등을 통해 불법 자금이 금융 시스템 안으로 들어오거나 이동하는 것을 차단해야 한다.
☞레거시 시스템(Legacy System)=오랜 기간 사용해 온 기존 전산 시스템이나 소프트웨어 체계를 말한다. 기업이나 금융기관의 핵심 업무를 오랫동안 담당해 안정성은 높을 수 있지만, 구조가 복잡하고 오래된 기술에 기반한 경우가 많아 새로운 디지털 기술이나 외부 시스템과의 연계, 확장, 개편이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여성경제신문 박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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