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일게이트 판결해설..15년 전 비공식공문이 승패 갈랐다[이슈체크]

김수헌 2026. 4. 3.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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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공문 '회제이 00094' 가 라이노스 승소 가져온 신의 한 수
재판부, CB전환권 부채회계 인정하면서도 금감원 공문에 따라 판결

스마일게이트홀딩스 권혁빈 창업자는 배우자가 제기한 이혼 및 재산분할 소송을 진행중입니다. 이혼이 성립될 경우 분할대상 재산의 최대평가액은 8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추정도 있습니다. 이 이혼소송 때문에 권 창업자가 지난 2023년 스마일게이트홀딩스(이하 홀딩스)의 자회사 스마일게이트RPG(현재는 홀딩스에 합병, 이하 RPG) 상장을 고의로 회피했다는 의심을 받았습니다.

그랬을 가능성은 낮습니다. 하지만 IPO 회피 이슈로 홀딩스는 RPG에 투자했던 한 자산운용사와 1000억원대 소송전까지 벌여야 했습니다.

이 법정 다툼에 대한 1심 선고가 지난 2일 나왔습니다. 법원은 자산운용사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자본시장 뿐 아니라 회계업계에서도 매우 관심있게 지켜본 이 소송의 전말을 살펴보고, 아직 판결문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재판 현장취재 내용을 중심으로 판결의 핵심과 예상되는 논란을 짚어봅니다.

우선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 몇가지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A 사모펀드가 비상장기업 B(기업가치평가액 100억원)의 지분 10%를 10억원에 인수했다고 해 보겠습니다. 이런 경우 사모펀드는 일반적으로 B사의 상장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합니다. 그래서 B사 대주주와 주주간계약을 체결하죠. 2028년말까지 '이러이러한 조건이 충족되면' IPO를 추진한다는 식의 내용입니다. 예를 들자면 '기업가치평가액 OOO원 달성' 또는 '투자원금에 대해 IRR(내부수익률) OO% 보장' 등이 충족조건이 될 수 있습니다.

2028년에 B사 기업가치가 1000억원이 된다면 A사모펀드가 보유한 지분가치는 100억원으로 10배 상승하고, IPO 성공시 대박이 나는 겁니다. 하나만 더 살펴보겠습니다.



달봉이가 영순이한테서 1년 뒤 갚기로 하고 1000만원을 빌렸습니다. 1년 뒤 영순이가 원할 경우 달봉이는 현금 대신 보유하고 있는 SK하이닉스 주식 10주(현재 주당 100만원)로 상환하기로 했습니다.

6개월쯤 뒤 SK하이닉스 주가는 쭉쭉 올라 150만원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영순이는 달봉이에게 주식으로 갚을 것으로 요구할 가능성이 높겠죠. 회계적으로 따지면 달봉이는 500만원의 평가손실을 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갚아야 할 채무의 가치는 1000만원인데, 갚는데 사용하는 주식가치는 1500만원(150만원X10주)이기 때문이죠. 달봉이는 상환시점이 되면 어차피 갖고 있는 주식을 주면 될 뿐입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주가가 오르면 오를수록 평가손실을 커져갈 것입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2017년 라이노스자산운용(이하 라이노스)은 사모펀드를 만들어 당시 비상장 적자기업이었던 RPG의 전환사채(CB)에 260억원을 투자합니다. 전환가격은 4만6000원, 만기는 2023년 11월이었죠.

라이노스는 RPG의 주주 홀딩스와 주주간계약을 체결하는데요, 'RPG 당기순이익이 120억원 이상이 되면 IPO를 추진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후 로스크아크 게임이 대박나면서 RPG 실적은 급상승합니다. 2021년 매출액 4898억원, 영업이익 3055억원, 당기순이익 2290억원을 달성하죠. 2022년 6월에 라이노스는 IPO추진을 요청합니다. 한국거래소의 상장예비심사를 통과한 뒤 2023년 중에 상장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그러자면 꼭 거쳐야 하는 절차가 있었습니다. 금융감독원이 지정한 감사인(회계법인)으로부터 2022년도 결산재무제표에 대한 감사를 받아야 하는 거죠. 지정감사 결과 RPG의 매출액은 7369억원, 영업이익은 3541억원이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성과였죠. 그런데 당기순이익은 적자를 냈습니다. 당기순손실 1426억원을 기록한 겁니다. 어떻게 된 걸까요.

비상장기업은 거의 대부분 재무제표 작성기준으로 K-GAAP(일반기업회계기준)을 씁니다. IFRS(국제회계기준)가 도입되면서 상장사는 의무적으로 K-IFRS를 사용해야 하는데요, IPO 심사청구기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RPG가 재무제표 기준을 K-GAAP에서 K-IFRS로 전환하면서 라이노스에게 발행했던 CB에 대한 회계처리가 확 달라졌습니다.

RPG에게는 CB에서 발생한 두가지 의무가 있습니다. 회계에서는 기업이 지게 된 의무 중 신뢰성있게 측정가능한 것은 '부채'로 처리하죠.

첫번째는 원리금을 상환할 의무죠. 이것은 두말할 것 없이 부채입니다. 두번째는 라이노스가 원할 경우 CB 원금을 주식으로 전환발행해 줄 의무입니다. 이 주식전환의무(전환권)라는 것이 좀 애매합니다. 어차피 주식으로 발행될 것이라면 전환권은 '자본'의 성격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IFRS는 전환가격과 금액이 모두 고정된 것이 아니라면 '부채'로 인식하라고 합니다.

예컨대 A사가 주가 1만원일 때 B투자자에게 CB 10만원을 발행했고 전환가격을 1만원으로 정했습니다(CB 잠재주식 10주). 양측은 주가하락시 전환가격을 하향조정하기로 계약했습니다. 주가가 5000원이 되면 전환가격도 5000원으로 조정돼 CB 전환주식은 20주가 발행되겠죠. 이런 식의 '리픽싱' 조건이 있다면 전환권은 '금융파생부채'가 되는 겁니다.

이런 경우에는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회계문제가 발생합니다. 기업가치(주당가치)가 오를수록 파생금융부채가 증가합니다. 부채가 증가하는만큼 파생금융부채 평가손실이 생기죠. 앞에서 본 영순이의 SK하이닉스 주식사례처럼요. 평가손실이 커질수록 손익계산서는 망가집니다.

결국 RPG 역시 놀라운 실적을 내면서 기업가치가 급등하였고, 이에 따라 리픽싱 조건이 붙어있는 CB 전환권(파생금융부채)에서 대규모 평가손실이 난 겁니다. 아래 그림에서 2022년 RPG의 당기순손실은 K-IFRS 전환에 따른 결과입니다.


2017년 CB 발행시점의 RPG 기업가치는 2000억원대로 평가됐습니다. 그런데 2022년 결산시에는 8조원이 넘었습니다. 이 때문에 CB 전환권 부채가 급격하게 커졌죠. 3641억원의 영업이익에도 불구하고 영업외 비용항목에 파생금융부채 평가손실 5357억원이 반영되다보니 1400억원이 넘는 당기순손실을 반영하게 된 겁니다.

홀딩스는 RPG의 당기순손실을 이유로 IPO 추진을 거부했습니다. 라이노스와 분쟁이 발생했습니다. 이러는 사이 CB 만기가 2023년말 도래했고, RPG는 투자원금에 연 3.5% 복리를 적용하여 상환하겠다고 했습니다. 라이노스는 소송으로 대응했습니다.

라이노스가 2022년 중에 CB를 주식으로 전환했다면 2022년 결산시 전환권 평가를 할 일이 없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있는데요, 라이노스는 그럴 수도 없었습니다. 주주간계약에 "IPO 예심통과전에는 주식전환을 할 수 없다"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라이노스는 이번 소송에서 "파생금융부채 평가는 회계상 손실로 회사의 사업능력이나 기업가치에 미치는 영향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하나, 과거 금융감독원 공문에 따르면 전환권은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분류할 수도 있다고 했죠.

라이노스측이 내세운 발신번호 '회제이 00094' 금감원 공문이란 이런 겁니다. 지난 2011년 어떤 기업이 신주인수권부사채(BW)에 내재된 신주인수권의 회계처리와 관련해 금감원에 질의를 넣었습니다. 금감원은 이에 대해 비공식 회신을 보내면서 자본과 부채 모두 처리가능하다고 답변했습니다.

CB에 내재된 전환권 역시 본질적으로는 신주인수권과 성격이 같습니다. 이 공문의 내용이 알려지면서 CB 발행기업 중 일부가 리픽싱 조건에도 불구하고 전환권을 자본으로 분류하는 일이 생겼죠. 어떤 기업은 금융위 기업회계팀으로부터 CB 전환권을 자본으로 분류해도 된다는 회신을 받아 상장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00094' 공문은 재판부를 움직인 신의 한 수가 됐습니다.

한편으로 라이노스측은 '당기순이익 120억원'은 PER 20배를 적용하여 기업가치 기준 2400억원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펼친 것으로 보입니다. 당기순손실을 냈더라도 기업가치 평가액이 2400억원 이상이라면 IPO를 추진했어야 했다는 거죠. 20222년 결산시 회계법인이 평가한 기업가치 추정액은 8조가 좀 넘는 수준이었습니다.

스마일게이트측은 주주간 계약상의 문구는 명확하게 '당기순이익 120억원'이었으며, PER이나 기업가치 기준이라는 문구는 계약서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맞섰습니다. 아울러 당시에는 IPO 시장 냉각기였고, IPO 주관사가 평가한 RPG의 기업가치 또한 크게 감소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일반주주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IPO를 추진할 수 없었다고 강조했습니다.

계약상 문언은 분명히 '당기순이익' 기준이었지만 재판부가 라이노스 손을 들어준 판단 근거는 간단합니다. 바로 '00094'공문입니다. 스마일게이트측은 최선을 다해 IPO를 추진할 신의성실의무가 있었고, '00094' 공문을 보면 전환권을 자본으로 처리할 여지가 있었으므로, 전환권 부채평가손실에 따른 당기순손실을 이유로 IPO를 거부한 것은 라이노스에 손해를 입힌 행위라는 것입니다.

재판부는 2022년 결산 당시 회계법인이 산정한 RPG의 기업가치는 8조800억원이었고, 라이노스 보유 CB가 주식으로 전환될 경우 지분율(6.4%)를 적용하면 5180억원이 산출된다고 밝혔습니다. 여기에 70%를 적용한 3620억원 정도를 라이노스 손해로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라이노스측이 명시적으로 청구한 손해배상액이 1000억원이므로, 2023년 12월부터 원금 1000억원에 연 12% 이자를 적용한 금액으로 스마일게이트가 배상해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이번 판결은 자본시장이나 회계업계에서는 논란이 될 소지도 있어보입니다. 학계나 회계업계에서는 IFRS하에서는 리픽싱 CB 전환권을 부채로 보는 게 맞다는 견해가 대세입니다. 실제로 대부분 기업이 그렇게 회계처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하여 자본으로 처리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단정할 수도 없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CB의 전환권 회계처리는 아직까지 회색지대 또는 사각지대로 남아있으니까요.

15년 전 금융당국의 비공식 회신이 판결의 결정적 근거로 사용될 수 있는가? 항소심에서는 다시 한번 이를 둘러싼 논쟁이 가열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