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집 다녀오겠다던 그 말 믿고 살았주”…101세 새댁의 끝나지 않은 4월
“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다” 눈시울 붉히며 인사

평생을 한으로 끌어안고 살아온 스물셋의 새댁은 이제 백 살을 훌쩍 넘겼다. 삶의 끝자락에 선 지금도, 혹여 남편의 시신이라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을 놓지 못한다. 떠올리기만 해도 사지가 찢어질 듯한 고통이 밀려오지만, 잊으려 해도 끝내 지워지지 않는 기억. 78년 전 제주 4.3은 그렇게 그의 삶에 깊게 박혀 있다.

혼자 거동이 어려워 휠체어에 몸을 의지했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누구보다 또렷했다. 깊게 팬 주름 사이로 흐르는 세월과 달리, 남편을 향한 기억은 조금도 흐려지지 않은 듯했다.
할머니가 찾아온 곳은 남편 '김탁유'의 이름이 새겨진 자리였다. 그의 조카는 과일 몇 가지와 소주, 빵을 조심스레 꺼내 놓았다. 할머니는 말없이 표석을 잠시 바라보다 부축을 받으며 표석 앞에 앉았다.
두 번 절을 올린 뒤 묵례를 마친 할머니는 가쁜 숨을 내쉬었다. 눈시울은 이미 붉어져 있었다.
1926년생인 남편은 1948년 10월10일, 제사집에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긴 채 집을 나선 뒤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 것은 물론, 어디서 어떻게 생을 마감했는지조차 전해지지 않았다. 이름만 남은 표석 앞에서, 남편의 마지막을 짐작해야 하는 일은 이제 오롯이 그의 몫으로 남아 있다.

"그때 내가 스물셋이었주게… 새댁이었지. 배는 이렇게 불러가지고, 만삭이었고. 두 살짜리 딸은 맨날 품에 안고 살았주.
그날이… 10월 초열흘쯤 됐을 거라. 남편이 '제사집 좀 다녀오쿠다' 허멍 나갔주. 금방 올 줄 알았지. 근디… 하루가 가도 안 오고, 이틀이 가도 안 오고… 소식이 영 끊겨 버린 거라.
나중에사 들은 거주. 경찰에 끌려갔다고. 지서에 며칠 있었다 하는디… 사흘인지 나흘인지… 그것도 정확히는 몰라. 그 뒤로는 생사도, 어디서 어떻게 됐는지도 아무도 모르주게. 그게 끝인 거라.
아이는 낳은 지 얼마 안 돼서… 나한테도 일이 닥쳐서. '남편 어디 갔냐' 하멍 나도 끌고 가분거라. 갓난아이는 등에 업고 있었는디… 그 상태로.
손목에 전깃줄을 칭칭 감아불고… 전기를 탁 올리는데, '차르르르' 허면서 몸이 막 뒤틀려부러. 아이고… 그때는 소리가 절로 나와. '악!' 허고. 사람 몸이 사람이 아니여. 총 개머리판으로 치고, 몽둥이로 때리멍 '어디 숨겼냐, 어디 갔냐' 허는디… 나는 알 턱이 없지 않우꽈.
애기는 등에 업혀서 울고불고 허는디, 달랠 수도 없어. 그저 같이 울 뿐이라…
밖에는 총칼 들고 사람들 겨누고, 피가 질질 흐르고… 불이 붙으니 마을이 그냥 타부러. 초가집이 하나도 안 남았주. 다 잿더미여.
남편 잡혀간 집안이라 허니까… 이웃들도 쉽게 못 와. 다 무서우니까. 나 혼자, 애 둘 안고… 굶어가멍 살아서. 남의 집 눈치 봐가멍 밥 얻어먹고, 뭐라도 해서 애기들 먹여 살려야지 어떡허우꽈.
그렇게… 그냥 참고, 참고 살았주게.

긴 이야기를 쏟아낸 뒤에도 양 할머니는 쉽게 말을 멈추지 못했다. 답답한 듯 몇 차례 가슴을 쓸어내리다 끝내 손으로 두드리기도 했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가라앉지 않는 무언가가 그 안에 여전히 남아 있는 듯했다.
그에게 남은 남편의 흔적은 단 하나의 사진뿐이다. 시아주버니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간 아들이 그곳에서 받아온 손바닥만 한 흑백사진 한 장. 세월에 바래고 닳은 그 사진은 크게 확대돼 집 안에 걸려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자리였다.
사진 속 김탁유 씨는 단정한 양복 차림에 중절모를 쓰고, 둥근 실테 안경을 끼고 있었다. 흘러간 78년의 세월은, 여전히 한 장의 사진과 한 사람의 가슴 속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78년 전 남편이 영영 떠난 이날, 김 할머니는 잠을 한숨도 이루지 못한 채 이곳을 찾았다고 했다.
"TV를 보는디, 어느 집안에서 사과랑 과일 몇 개 깎아 제사상에 올리는 거 나오더라. 그걸 보는디 눈물이 자꾸 나서 한숨도 못 잤주게. 이제 나도 갈 때가 된 거라. 만날 날이 머지 않았주. 더 바랄 게 뭐 이서게. 곧 보게 마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