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어느 컴퓨터 학원…‘바람의 나라’는 우리들의 신세계였다
첫날 접속자 한 명…국민 게임으로
30주년 업데이트…“많은 관심 부탁”
1999년 인천의 한 컴퓨터 학원. 수업 시작 30분 전부터 학원에 온 아이들이 비어 있는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하교 후 곧바로 학원으로 온 아이들은 그때만 해도 신생이나 다름없던 넥슨의 PC 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부터 접속했다. 가정 내 인터넷 보급률이 그리 높지 않았던 시절, ‘고급 PC방’이나 마찬가지였던 이곳에서 아이들은 수업 시작 전 짬을 내어 온라인 게임의 진수를 맛봤다.

다소 촌스러울 수 있는 도트 그래픽이었지만, 아이들에게 ‘바람의 나라’는 지금의 ‘배틀그라운드’ 같은 최신 게임에 결코 밀리지 않는 최고의 가상 세계였다. 캐릭터 승급을 위해 모니터 앞에 모여 앉았던 아이들의 열정은 어느덧 30년이라는 세월을 관통해 ‘바람의 나라’가 대한민국 게임 산업의 거대한 뿌리가 되는 밑거름이 됐다.
온라인 게임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했던 1990년대, 넥슨의 故 김정주 창업주는 남다른 안목으로 미래를 내다봤다.
플로피 디스크와 CD 패키지 게임이 주류였던 시대에 김 창업주는 ‘연결’의 힘에 주목했다. 1994년 12월 ‘차세대 온라인 서비스(NEXt generation ONline service)’라는 뜻을 담아 넥슨을 설립한 그는 1996년 4월 넥슨의 첫 개발작이자 국내 최초의 온라인 그래픽 MMORPG ‘바람의 나라’를 세상에 내놓았다.
서비스 첫날 접속자는 단 한 명이었지만 초고속 인터넷망의 보급과 PC방 문화 확산은 이 투박한 도트 게임을 국민적 현상으로 끌어올렸다.

‘바람의 나라’가 걸어온 길은 한국 온라인 게임의 역사였다.
무료 서비스로 전환한 2005년에는 최고 동시 접속자 13만명을 기록했고, 2011년에는 ‘세계 최장수 상용화 그래픽 MMORPG’로 기네스북에 등재되며 독보적인 위치를 확인했다. 2021년 누적 가입자 2600만명 돌파에 이어 2023년 8월 서비스 1만일을 달성했고, 오는 5일 마침내 대망의 30주년이라는 금자탑을 완성한다.
30년 세월은 게임 속 풍경뿐만 아니라 유저들의 문화도 풍성하게 만들었다.
동시 접속자 폭주로 초보 지역 사냥터의 주요 몬스터인 다람쥐가 모자라자 유저들이 외쳤던 “넥슨은 다람쥐를 뿌려라!”라는 문구는 이제 전설적인 유행어로 남았다. 캐릭터가 죽어 아이템을 잃었을 때 이를 되찾고자, 내 아이템을 가로채려는 다른 유저 앞에서 굴욕을 무릅쓰고 외쳐야 했던 “나는 빡빡이다!”라는 밈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유쾌한 에피소드다. 좁은 길을 캐릭터로 막는 ‘길막’ 비매너를 없애려 검황 클래스 유저들이 상대 캐릭터를 바로 앞으로 당기는 ‘초혼비무’ 기술로 길을 뚫어주는 유저간 협동 문화가 생기기도 했다.

넥슨은 ‘바람의 나라’가 가진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는 동시에 이를 다양한 문화적 영역으로 확장하는 실험을 멈추지 않았다.
제주 넥슨컴퓨터박물관에서는 1996년 출시 당시의 680×480 해상도와 256컬러를 그대로 구현한 ‘바람의나라 1996’ 복원 프로젝트를 선보이며 온라인 게임 아카이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베이커리 태극당과 협업한 이색 팝업스토어, 덕수궁에서 펼쳐진 전통 공예 전시 등은 ‘바람의 나라’라는 지식재산권(IP)이 단순한 오락을 넘어 우리 시대의 중요한 문화적 자산으로 진화했음을 증명했다.
넥슨은 신규 직업 ‘흑화랑’을 선보이고 캐릭터의 배경 이야기를 담은 9차 승급 신규 지역 ‘신라’를 함께 추가한다고 3일 밝혔다. 모든 직업에 9차 승급을 도입하고 최대 레벨을 949까지 확장하는 등 30주년 대규모 업데이트를 적용했다. 넥슨 관계자는 “올해로 서비스 30주년을 맞이한 ‘바람의 나라’가 한국적 색채를 담은 대규모 신규 콘텐츠를 공개한다”며 “한국 온라인 RPG의 살아있는 역사와도 같은 ‘바람의 나라’ 30주년을 기념해 다양한 게임 이벤트를 진행하니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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