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30억 통행세’ 거부…유조선, 오만 연안 ‘유령 항로’ 돌파 시도

블룸버그통신은 2일(현지시간) 오만 선적으로 표시된 초대형 유조선(VLCC) 2척과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1척이 오만 해안을 밀착해 호르무즈 해협에 접근했다고 보도했다. 이들 선박은 런던 시간 오전 9시30분경 무산담 반도 인근에서 위치 신호를 중단하며 항적이 사라졌고, 실제 통과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특히 유조선 2척은 각각 약 200만 배럴의 원유를 적재한 상태로, 현재 유가 기준 선박 한 척당 약 1억6000만 달러(약 2400억 원) 규모의 화물을 운송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고가의 에너지 자산이 ‘유령 항해’에 나섰다는 점에서 시장 긴장도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 ‘30억원 통행료’를 피해…위험 감수한 항로 선택
그동안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려면 이란과 협의해 북쪽 항로를 이용해야 했다. 이란은 이 과정에서 항차당 최대 200만 달러(약 30억원)의 통행료를 요구해왔다.
그러나 해당 항로는 수심이 얕고 굴곡이 많아 초대형 유조선에는 부담이 큰 경로로 알려져 있다. 결국 선사들은 비용과 안전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구조에 놓였다.
이번 오만 연안 항로는 이러한 조건을 회피하려는 시도로, 단순한 우회가 아니라 이란의 해상 통제에 대한 실질적인 대응으로 해석된다.
● 전쟁 후 첫 LNG선 이동…‘빈 배’가 던진 신호
이번 항해에는 LNG 운반선도 포함됐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해당 선박은 화물을 싣지 않은 ‘빈 상태’로 파악된다.
전쟁 이후 걸프만에 묶여 있던 LNG선이 해협 통과를 시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실제 공급 재개가 아닌, 향후 가스 수송 가능성을 타진하는 초기 신호로 해석된다. 운송이 본격화될 경우 글로벌 천연가스 가격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번 항로 시도는 단순한 운송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재편 가능성을 시사한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통제와 우회 움직임이 동시에 나타나면서 주요 수입국의 에너지 안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런던 오전 9시30분 ‘신호 차단’…유령 항해 현실화
호르무즈 해협 일대에서는 강도 높은 전파 교란(jamming)과 위치 조작(spoofing)이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 이로 인해 선박들은 해협 진입 직전 자동위치식별장치(AIS) 신호를 끄고 항해하는 ‘유령 항해’를 선택하고 있다.
실제로 이번에 포착된 유조선 2척과 LNG선 1척 등 3척은 런던 시간 2일 오전 9시30분경, 오만 북단 무산담 반도 끝단을 돌아 해협에 진입하는 시점에 신호 송출을 중단했다.
특히 유조선 2척은 각각 약 200만 배럴의 원유를 실은 상태로, 선박 한 척당 약 1억6000만 달러 규모의 화물을 운송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한 척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선적해 미얀마 차우퓨를 거쳐 중국 서부로 이어지는 원유 공급망과 연결된 항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전파 교란 속에서 초대형 선박들이 위치 신호를 끄고 운항하는 상황은 해상 안전 측면에서 위험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럼에도 이러한 항해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은 이란의 통행 통제를 회피하려는 선사들의 대응이 그만큼 절박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 이란-오만 협력 속 ‘균열’…항로 주도권 경쟁 본격화
이란 국영 IRNA는 카젬 가리바바디 외무차관이 오만과 함께 해협 통행 관리 프로토콜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오만 측 공식 입장은 확인되지 않았다.
실제 현장에서는 오만 선박들이 이란 수역을 피해 이동하면서 협력과 경쟁이 동시에 나타나는 양상이 감지된다. 시장에서는 오만이 외교적으로는 협력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에너지 흐름을 유지하는 우회 경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선박 이동을 넘어 에너지 공급망 재편의 신호로 평가된다. 이란은 통행 통제와 비용 부과를 강화하고 있고, 선사들은 새로운 항로 개척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글로벌 에너지 수송 질서가 군사적 충돌을 넘어 항로 주도권 경쟁 단계로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현정 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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