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 속에서 헤엄치는 여자들의 이야기

전솔비 2026. 4. 3.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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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강함을 욕망하는 마음에 대하여

가끔 체력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한계에 부딪힐 때면 자신의 한계에 도전했던 여자들의 이야기를 찾아보곤 한다. 이를테면 빙하 아래로 내려가 프리 다이빙을 하는 요한나 노르드 블라드가 세계 기록을 깨기 위해 도전하는 이야기나, 에베레스트를 열 번이나 등정한 유일한 여성인 락파 셰르파의 이야기는 언제나 나를 들뜨게 한다.

어린 여자라서, 나이 든 여자라서, 시골 여자라서 절대 못 할 거라는 우려를 납작하게 해주며, 주위의 만류나 무시하는 시선 너머로 도약하는 여자들. 나는 그들의 강한 정신을 욕망하고 건강한 몸에 경탄하며 내 안의 무언가를 회복하곤 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언제나 나를 회복시켰던 그 이야기들은 그저 강한 여자의 성공 신화나 건강한 몸으로 ‘정상성’이나 미의 새로운 기준을 세우는 이야기 혹은 개인주의적 자기계발 서사 따위와는 달랐다.

그 이야기들은 ‘과연 강함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성찰하게 해주었던 경험에 가까웠다. 그 이야기들은 ‘약함을 긍정하는 마음’과 ‘강함을 욕망하는 마음’을 모순적으로 품고 살아가는 나의 모습을 들여다보게 한다. 약함을 긍정하면서도 강함에 끌리는 모순, 그러면서도 강함의 매혹을 경계하는 끝없는 모순에 대해서 말이다.

▲ 다큐멘터리 영화 〈파도를 헤치고 - 다이애나 나이애드 스토리〉(The Other Shore, 티모시 휠러 감독, 쿠바 멕시코 미국, 2013)에서 다이애나 나이애드 (출처: Netflix)

64세에 쿠바에서 미국까지 상어와 해파리가 가득한 바다를 횡단하는 기록을 세운 장거리 수영선수 다이애나 나이애드(Diana Nyad)의 이야기는 나처럼 모순 속에서 헤엄치는 수많은 여자를 끌어당긴다.

 

육체적 한계 너머로 가는 도전
“몸은 따라오기 마련이니까. 영혼과 마음에 달린 일이야”

“불균형의 극치에 이르러서 고통이 쾌락을 능가할 때까지 절대 멈추지 않고 미친 듯이 수영할 겁니다.”(다이애나 나이애드)

다큐멘터리 영화 〈파도를 헤치고〉(The Other Shore)는 20대에 각종 대회의 상을 휩쓸고 은퇴 후 스포츠 저널리스트로 살던 수영선수 다이애나 나이애드가 60대에 접어들며 자신이 과거에 한 차례 실패했던 쿠바-플로리다 횡단에 재도전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이야기는 2023년에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원제-Nyad, 엘리자베스 차이 바서렐리, 지미 친 연출)라는 제목의 극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쿠바에서 플로리다까지 해상 거리가 165km라는 것만으로는 이 도전이 얼마나 힘든지 가늠할 수 없다. 육지에서의 이동과 달리, 바다에서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파도와 해류에 온몸으로 맞서야 한다. 바다에서는 직선으로 갈 수 없으며 바람에 따라 우회하고 또 우회하며 목표로 설정한 해변을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다. 그건 실제 거리보다 더 많은 거리를 움직이게 된다는 의미이다.

60시간 이상 걸리는 이 도전 동안에는 잠을 잘 수 없으며, 최소한의 음식만 섭취하며 탈수증, 저체온증을 견뎌야 한다. 더군다나 쿠바-플로리다 해역은 상어와 독성 해파리가 출몰하는 매우 위험한 지역이다. 의사도 60대 인간의 몸으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고 단언했던, 한계 너머로 가는 도전이었다.

▲ 다큐멘터리 영화 〈파도를 헤치고 - 다이애나 나이애드 스토리〉(The Other Shore) 포스터 이미지 (출처: Netflix)

하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나이애드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바다 수영을 하는 동기가 뭐냐는 질문에 “제게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가장 힘든 일은 드넓은 수역에서 헤엄치는 겁니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불멸의 존재가 된 것 같아요.”라고 대답하는 사람이다.

거울 속 자신에게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너는 할 수 있어. 문제는 몸이 아니야. 몸은 따라오기 마련이니까. 영혼과 마음에 달린 일이야.” 

정신이 몸을 한계 너머로 이끌고 갈 거라고 믿으며 그는 매일 훈련을 거듭한다. 바다에서 10시간 수영, 13시간 수영, 15시간 수영 이런 식으로 훈련을 늘려가고 마지막 훈련인 24시간 수영까지 마치자, 횡단에 도전할 준비가 되었다.

도전하는 날 많은 사람들의 응원과 미디어의 관심 속에서 그는 자신 있는 모습으로 바다에 뛰어든다. 하지만 첫 시도에서 그는 건강상의 이유로 절반도 채 가지 못하고 실패한다.

영화는 나이애드의 고된 훈련과 거듭된 실패로 러닝타임을 채운다. 반드시 성공할 거라고 자신하며 감행한 두 번째 도전 역시 해파리에게 가로막힌다. 독성 해파리에 쏘여 마치 모닥불에 들어가 앉아 있는 것 같은 고통을 느끼면서도 수영을 멈추지 않지만, 결국 몸이 회복되지 않아 완주할 수 없었던 것이다.

▲ 첫 번째 도전에서 실패 후, 저체온증으로 몸을 떨고 있는 다이애나 나이애드의 모습. 다큐멘터리 영화 〈파도를 헤치고〉 장면 중. (출처: Netflix)

세 번째 도전에서 생명을 위협하는 열대 폭풍을 만나서 실패하는 것까지 보다 보면, 이 도전은 아무래도 무리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실패했더라도 충분히 의미 있는 도전이었다고 생각하며 엔딩크레딧을 마주하는 순간, 엔딩크레딧 옆 작은 내화면으로 다섯 번째 도전에 기어코 성공하여 플로리다 해변에 발을 딛는 나이애드의 뒷모습이 나타난다.

영화는 그렇게 ‘수없이 실패한 끝에 도전에 성공했다’라는 그럴듯한 결론이 아니라, ‘찰나의 성공보다 더 중요한 건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남기며 끝난다. 나이애드의 뒷모습은 자신이 가야 한다고 믿는 곳을 향해, 옳다고 믿는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고독한 수많은 여정에, 그리고 어떤 자긍심을 향해 응원을 보내는 듯하다.

 

자신을 향한 분노와 싸우는 여자

“사람들은 제가 매 순간에 충실하고 굉장히 강인하다고 생각할 거에요. 맞습니다. 전 강인하고 늘 행동하는 사람이죠. 하지만 제게도 연약한 면이 있어요.”

그런데 한계를 넘어설 수 있었던 건, 단지 그의 몸과 마음이 남들보다 건강해서일까? 물론 나이애드는 강인한 정신력과 60대치고 건강한 몸을 지니고 있었지만, 바다에서는 그가 어찌할 수 없는 수많은 장벽이 존재했다.

영화는 그래서 나이애드가 끝까지 갈 수 있게 도왔던 수많은 조력자 또한 보여준다. 상어를 퇴치하는 팀, 해파리 전문 팀, 날씨를 예측하는 팀, 의료 전담팀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최소 35명 이상의 사람이 하나의 팀이 되어 나이애드와 바다에서의 며칠을 함께 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나이애드가 심적으로 의지했던 건 그의 트레이너 보니 스톨(Bonnie Sue Stoll)이다.

보니는 나이애드가 ‘너 없이는 결코 이 도전을 할 수 없다’라고 고백했던 절친이기도 하다. 보니는 나이애드의 강함을 가장 믿는 사람이지만, 그의 약함 또한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었다.

보니는 첫 번째 실패로 도전을 끝내지 않는 나이애드를 보며, ‘사람은 어떤 계기가 있어야 이 정도의 집념이 생긴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많은 일을 겪은 나이애드가 이 도전에 성공하면 많은 걸 떨쳐낼 수 있을 거라는 말도 덧붙인다. 어떤 사람들은 과거의 경험 때문에 자신을 한계로 밀어붙이는 마음이 생기는데, 나이애드가 바로 그런 사람이라는 것이다. 쿠바-플로리다 횡단 도전은 나이애드에게 단지 기록 이상의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 다이애나 나이애드와 그의 절친이자 트레이너인 보니 스톨. 다큐멘터리 〈파도를 헤치고〉 장면 중. (출처: Netflix)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쿠바-플로리다 횡단을 준비하는 나이애드의 현재 모습을 보여주며, 부분적으로 그의 과거 이야기 또한 함께 삽입한다. 유년 시절과 유망한 청소년 선수 시절을 회고하며 흘러가던 나이애드의 이야기 속에는 자신이 가족처럼 생각하던 코치에게 성폭행을 당했던 경험과, 가스라이팅 속에서 코치와 수년간 관계를 이어간 경험이 등장한다. 그 이후의 삶은 영화에서 자세히 서술되지 않지만, 나이애드는 자신이 20대 동안 수영할 수 있었던 힘은 ‘분노’에서 나왔다고 언급한다. 젊고 강했으며 충분히 힘이 있었음에도 스스로를 돕지 않았던, 주변에 도움을 청하지 않았던 자신에 대한 분노는 한계를 시험하는 바다 수영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영화는 나이애드의 과거 경험과 분노의 힘, 수영을 향한 애정, 한계를 넘으려는 열망을 촘촘히 엮지는 않는다. 이 모든 것들은 나이애드의 일부로 느슨하게 그를 구성하며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바다에서 엄청난 거리를 수영하고, 미디어 앞에서 자신 있게 성공을 확신하는 나이애드의 강한 모습은 거친 파도와 낮은 수온과 몸의 통증 앞에서 드러나는 그의 모습, 그리고 과거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약한 모습과도 분리될 수 없다. 그러니 어쩌면 도전에 성공하고 싶다는 강한 욕망은 과거에 스스로를 구하지 못했다고 자책하는 약한 자신을 마주할 힘을 만들고 싶은 욕망은 아니었을까.

이때 나이애드가 추구하는 ‘강함’은 약자를 힘으로 누르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강함도 아니며, 남들보다 더 뛰어난 기록을 세우는 강함도 아니고, 튼튼하고 건강한 육체를 과시하는 강함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나이애드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강함에 대한 욕망’은 자신 안에 존재하는 ‘약함’을 인정하고 그것과 공존할 수 있는 ‘강한 자신’을 확인하고 싶은, ‘약함을 긍정하는 강함’에 더 가깝다.

 

자긍심에 관한 이야기

영화에는 거의 나오지 않지만, 그는 커밍아웃한 레즈비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의도적이다 싶을 정도로 그의 성정체성에 대해 암시적인 입장만 취한다. 퀴어 서사로 모든 삶이 수렴되는 것 또한 경계하는 것일까.

나이애드는 과거에 트랜스젠더 선수의 스포츠 참여에 대해 비판적 입장(트랜스젠더 여성 운동선수와 시스젠더 여성 운동선수 사이의 “신체적 격차”)을 내놓은 적도 있다. 하지만 이후 자신의 의견이 만든 파장에 대해 유감을 표하며 태도를 바꾸고, 스포츠계에서 트렌스젠더의 완전한 평등을 위한 투쟁에 자신도 함께하겠다고 밝히기도 하는 등, 자신의 약한 모습을 감추지 않는 담대한 모습도 보여준다.

▲ 플로리다 해변에 발을 딛는 순간의 다이애나 나이애드의 모습. 그 뒤로 작게 프라이드 깃발이 보인다. 〈파도를 헤치고〉 예고편 중. (출처: Netflix)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인 플로리다 해변에 도착한 나이애드의 모습은 여러 기사에서 사진으로 찾아볼 수 있다. 그를 환대하러 마중 나온 수많은 군중 속에서 나는 펄럭이는 프라이드 깃발을 본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한계를 넘는 나이애드의 이야기가 어떤 은유가 되어 어떤 의외의 구체성들과 만났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이애드의 일화를 자긍심에 관한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어딘가에 있다는 점이다.

어떤 좋은 이야기는 한 사람의 당사자성을 넘어, 그리고 그가 지닌 정체성의 종류를 넘어, 더 구체적인 그리고 우연적인 연대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나에게 다이애나 나이애드의 이야기는 ‘강함을 욕망하는 마음’으로 우리가 어떻게 ‘약함 또한 긍정할 수 있는가’에 관한 질문을 영화 바깥의 현실로 확장하고 있다.

 

[필자 소개] 전솔비. 시각문화 연구자. 독립기획자. 정체성과 수행성의 문제를 연구하며 전시와 책을 만들어왔다. 동시대 현장에서 생산되는 이미지의 정치성과 예술적 실천을 탐구하며 예술가, 연구자, 활동가 동료들과 여러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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