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홍수·전염병·전쟁… 문명의 종말은 또다른 시작이었다[북리뷰]

2026. 4. 3.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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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포칼립스
리지 웨이드 지음│김승욱 옮김│김영사
기근 닥친 인더스문명 하라파
폭력 난무하자 위계질서 형성
혹독한 가뭄 겪었던 마야문명
평등·유연한 생활스타일 구현
고고학 연구한 美저널리스트
“인류는 결국 모순 해결하더라”
게티이미지뱅크

오래된 영화 ‘투모로우’처럼 극단적 형태는 아니지만, 지속적인 온난화로 지구의 병은 깊어졌고, 온 세계가 실시간으로 그 병세를 실감하고 있다. 지구온난화가 곧 대멸종으로 이어질 거라는 예언 아닌 예언이 나온 지도 오래다. 한편으론 과학기술 발달과 그것에 탐욕과 시기심이 결합한 전쟁, 각종 전염병 등으로 인해 인류는 지금 백척간두에 서 있다. 흔히 엄청난 규모의 파괴와 죽음을 의미하는 아포칼립스(apocalypse) 문 앞에 선 셈이다. 모든 것의 끝, 파국이다. 하지만 미국의 과학 저널리스트 리지 웨이드는 ‘아포칼립스’에서 이미 해수 범람과 가뭄에 이은 기근, 역병 등 수차례 세기의 종말을 경험한 인류이기에 “생존, 회복력,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며 희망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고고학의 최신 연구 등을 종합하며 인류가 종말을 딛고 어떻게 생존했고, 다시 살아왔는지, 그 희망의 여정을 그려낸다.

저자는 아포칼립스를 “한 사회의 생활 방식과 정체감을 근본적으로 바꿔놓는, 급속하고 집단적인 상실”로 정의한다. 그런 이유로 해수 범람과 전염병, 가뭄 외에도 유럽의 식민주의와 노예제 역시 아포칼립스를 유발한 한 원인으로 적시한다. 다만 저자는 아포칼립스가 모든 것의 종말이 아닌 “새로운 시작”임을 분명히 한다. 네안데르탈인은 40만 년 넘게 “산, 숲, 해안 등 다양한 생태계와 지구 환경에서 성공적으로 거주”했지만 “예측할 수 없는 기후”로 인해 점차 그 수가 감소했다. 그렇다고 무심하게 끝을 기다리지는 않았다. 저자 주장에 따르면, 일부 네안데르탈인은 “새로 나타난 인류 집단에 합류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문화와 언어, 전통의 장벽을 넘어 “인류라는 모자이크 속에서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된 것이다. 대개는 호모 사피엔스와의 경쟁에서 도태되었지만, 아포칼립스 극복을 위한 그들의 노력만큼은 현생 인류의 자산이 되었다.

모든 자연재해는 필연적으로 불평등을 야기하고, 끝내 폭력을 부른다. 약 4000년 전, 인더스 계곡 문명이라고도 부르는 하라파 문명의 중심지 하라파는 세계 최대 도시였다. 수만 명의 인구로 북적였고, 유입 인구도 시시각각 늘었다. 시 정부는 격자형 구조의 거리를 조성하고 배수시설까지 완벽하게 갖춘 도시를 만들었다. 하지만 유입 인구 대부분은 도시 내로 진입하지 못하고 성 외곽에서 근근이 삶을 이어갔다. 설상가상, 여름 몬순이 약해졌다. 겨울비가 약해지자 강의 수량이 줄고 호수는 말랐다. 가뭄이라는 아포칼립스가 닥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폭력과 질병은 필연이었다. “법과 생명에 대한 존중”이 사라진 자리에 강력한 위계질서가 자리 잡았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800년부터 1100년 사이 마야 세계에서 “신성한 왕이라는 개념”은 배척되었고, “정치적·종교적 제도”는 해체되었다. 전 시대에 혹독한 가뭄을 경험한 마야 세계는 “더 작고, 더 평등하고, 더 유연하고 더 회복력이 좋은” 생활 방식을 구현했다. “구조가 복잡하고 초계층화된 과거의 체제”의 끝이 재앙이었음을 반면교사 삼은 것이다.

앞서 언급처럼 대규모 자연재해만이 아포칼립스를 유발한 게 아니다. 기점은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이다. 저자가 “새로운 아포칼립스”라고 규정한 유럽의 식민주의에는 정치, 폭력, 환경 파괴, 영적 혼돈, 질병 등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다. “새로운 형태의 위험한 전쟁 방식”인 총력전을 펼친 스페인은 아즈텍 제국을 멸망시켰다. 총력전과 함께 전염병이 초토화의 모든 원인처럼 지목되었지만, 기실 “폭력, 학대, 사회적 위계구조”가 질병의 생물학적 효과를 몇 배로 강화, 악화시켰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식민주의의 연장선상에서 노예제 역시 여러 사회의 미래를 파괴했다. 카리브해 여러 섬에서 사로잡힌 흑인 노예들은 영문도 모른 채 사탕수수 농장으로 넘겨져 가혹한 노동과 고문 등을 견뎌야만 했다. 1400년대 중반, 포르투갈 상인들에 의해 시작된 아프리카인들에 대한 착취는 비교적 최근까지도 자행된 아포칼립스라고 할 수 있다. 짧고 어설픈 이 글은 아포칼립스가 가져온 현상 자체만 언급했지만 저자는 그 너머, 즉 다시금 펼쳐진 인류의 새로운 삶을 유려하게 풀어낸다. 그런 점에서 ‘아포칼립스’는 “모순된 상황을 해결하고 새로운 세계”를 열었던 인류에 대한 헌사라고 할 수 있다. 다시 아포칼립스에 직면한 우리에게 이 책은 적잖은 시사점과 함께 위안을 줄 만하다. 452쪽, 3만2000원.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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