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웅녀, 한민족 최초의 어머니 [신화에서 선민까지 한민족 정체성의 문화사적 발견-기고]

2026. 4. 3.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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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군, 하늘과 땅이 만난 자리

우리가 단군신화 속 ‘곰’을 한낱 짐승으로 치부해 온 기존의 고정관념을 벗어날 때, 비로소 한민족의 영성사 속에서 감추어진 거대한 문화적 원형을 이해할 수 있다. 왜 하필 곰이었을까? 그 해답은 곰이 지닌 생태적 신비와 우리말 고대어 ‘ᄀᆞᆷ(감)’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고대인들에게 곰은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숲속의 사람’이자 산의 주인공이었다. 특히 겨울이면 대지의 품속에서 자취를 감췄다가 봄과 함께 다시 나타나는 곰의 ‘겨울잠’은, 죽음과 부활을 반복하는 신성한 생명력의 상징이었다.

이러한 영성적 경외감은 언어를 통해 오늘날까지 전승되는 것이다. 신(神)을 뜻하는 고어 ‘ᄀᆞᆷ(감)’은 곰(동물)과 감(신)이 분리되지 않았던 고대의 사유를 보여준다. 일본어에서 신을 뜻하는 ‘카미(Kami)’의 어원도 바로 이 ‘ᄀᆞᆷ(감)’에서 건너갔다는 것은 언어학계의 통설이다. 즉, 단군신화의 곰은 생물학적 동물이 아니라, ‘신령스러운 존재’를 모시고 하늘의 뜻을 지상에 구현하려 했던 특정 부족의 상징이자, 성스러운 신성을 품었던 실체였다.

단군왕검을 모시고 있는 동빙고부군당 사당. 출처: 국가유산청
이처럼 웅녀로 대변되는 한민족 최초의 어머니상은 신화적 상징을 넘어선다. 기원전 2,333년, 단군왕검이 연 문명의 서막이 21세기 우리 삶 속에도 보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서울 용산구 한강변의 <동빙고부군당>이다. 『증보문헌비고』에 기록된 것처럼 본래 도성 내 관부의 수호신을 모시던 사당인 부군당은, 이곳에서만큼은 단군을 향한 간절한 기도의 공간이 된다. 매년 음력 3월 15일, 마을의 평안을 비는 주민들의 정성은 신화 속 단군을 현대의 일상으로 불러낸다. 이 경건한 의례는 단군이 먼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한국인의 무의식 속에 여전히 흐르고 있는 생생한 기원임을 보여준다. 고조선은 사라진 나라가 아니라, 우리 곁에 현존하는 집단 기억의 뿌리인 것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는 곰 한 마리가 인간으로 거듭나기 위해 스스로 동굴에 들어가 쑥과 마늘만으로 백일을 인내했다는 기록을 전한다. 이 대목은 단순한 변신 설화의 차원을 넘어, 인간 존재로 나아가기 위해 치열한 고통과 통과의례를 상징적으로 형상화한 대목이다. 마침내 여인이 된 웅녀는 천신(天神)인 환웅과 결합하여 단군을 잉태한다. 여기서 주목할 지점은 단군이라는 존재가 천상의 계보에만 머물지 않고, ‘어머니의 몸’이라는 구체적인 통로를 거쳐 지상의 역사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웅녀는 단순히 건국 시조를 낳은 생물학적 모친을 넘어선다. 그녀는 한민족이 스스로의 기원을 되새길 때마다 끝없이 소환되어 온 ‘우주의 어머니’이자, 우리 문화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된 모성적 원형이라 할 수 있다.

단군신화의 울림은 한반도의 경계를 넘어 대륙으로 뻗어 나간다. 만주와 바이칼호 일대에 전승되는 ‘게세르 신화’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천상의 존재가 인간 여성과 결합해 새로운 질서를 창건한다는 이 전승의 궤적은 우리네 건국 이야기와 놀랍도록 닮아 있다. 샤머니즘 전통이 면면히 이어지는 이 북방 지역에서 게세르는 하늘의 명을 받들어 지상으로 내려와, 인간 여인과의 만남을 통해 대제국을 건설한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천상과 지상의 결합, 그리고 새로운 시대의 개막으로 이어지는 이 일련의 구조는 북방 문화권이 공유해 온 보편적 세계관의 산물이다. 하늘과 땅의 만남을 통해 인류의 새로운 질서가 태동한다는 믿음이 그 기저에 흐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단군신화는 북방 샤머니즘 문화권이 간직해 온 상징적 틀을 가장 온전하고 정교하게 보존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이 장대한 흐름 안에서 웅녀라는 존재는 독보적인 위치를 점한다. 단군이 국가라는 외형적 틀과 정치적 권위를 상징한다면, 웅녀는 그 생명의 씨앗을 품어 안아 구체적인 역사적 실체로 발현시킨 토대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웅녀는 특정 민족의 시조를 낳은 인물을 넘어, 새로운 시대를 잉태하고 길러내는 ‘모성적 원형’으로서 현대적 의미를 획득한다.

◆ 건국신화, 한(韓)사상과 국모신(國母神)의 탄생

신라의 최치원은 『난랑비서(鸞郞碑序)』에서 “국유현묘지도 왈 풍류(國有玄妙之道 曰 風流)'라고 기록하였다. 이는 유교·불교·도교와 같은 외래 사상이 들어오기 이전, 이미 이 땅에 독자적인 정신적 근간이 존재했음을 시사한다. 최치원이 통찰한 ‘풍류’는 단순한 미적 취향을 넘어 자연과 인간, 공동체의 화합을 지향하는 우리 민족의 총체적 삶의 양식이었다. 그 기저에는 천지인(天地人)을 하나의 유기적 질서로 파악하려는 통합적 세계관이 흐르고 있다. 이러한 사상적 구도는 단군신화에서도 선명히 드러난다.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과 인고의 시간을 통과한 웅녀의 만남은 하늘과 땅, 신과 인간이 단절된 객체가 아니라 하나의 생명 질서 안에서 공존함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우리 민족의 대외적 표상인 ‘홍익인간(弘益人間)’ 역시 같은 맥락에서 고찰해야 한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이념은 특정 세력의 통치 구호라기보다,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며 상생해야 한다는 실천적 윤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토양 위에서 웅녀의 존재론적 위상은 새롭게 정립된다. 그녀는 단순히 시조를 낳은 보조적 인물을 넘어, 천상의 생명력을 지상으로 끌어내 새로운 문명의 문을 연 주체적 결단자로 해석되어야 마땅하다. 고대 한반도 사회가 이 같은 전통을 귀하게 여겼음은 우리 역사의 곳곳에서 확인된다. 고구려의 유화, 백제의 소서노, 신라의 선도산 성모로 이어지는 ‘국모신(國母神)’ 숭배는 우리 문화 속에서 모성적 상징이 얼마나 끈기 있게 계승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실증이다. 결국 국모신 전통은 한민족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규정해 온 가장 고유하고도 역동적인 문화적 기억이라 할 수 있다.

최치원이 설파한 풍류의 도(道)와 대를 이어온 국모신의 전통은 결국 하나의 뿌리에서 만난다. 이는 하늘의 이치를 지상으로 끌어내어 생명을 꽃피우려는 한민족 특유의 생동하는 생명 철학이 아닐까?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이 고유한 정신적 자산을 다시금 호출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갈등과 단절이 심화되는 21세기, 만물을 품어 조화를 이루는 모성적 풍류야말로 우리 사회가 회복해야 할 공동체적 가치이자 미래 문명을 열어갈 새로운 시대의 문법이기 때문이다.

풍류 사상의 심연에는 ‘한(韓)사상’이 담겨있다. 한사상에는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이 하나라는 생각이 담겨있다. 나와 타자가 둘이 아니고, 조상의 맥박이 후손에게 이어지며, 삶과 죽음조차 갈라설 수 없는 ‘일여(一如)’의 세계관이다. 한국어 ‘우리’라는 말에 깃든 온기처럼, 모든 존재는 태초부터 하나의 운명으로 묶여 있다.

삼국유사 5권에 기록된 경주 선도산성모설화 내용.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한민족 모태 웅녀, 독생녀 섭리를 맞이하다

웅녀로부터 발원한 건국 신화의 줄기는 유구한 역사 속에서 다채로운 형상으로 발전되어 이어졌다. 고구려의 유화, 백제의 소서노, 신라의 선도산 성모 사소 그리고 대가야의 정견모주로 연결되는 국모신 계보는 우리 문화 지층 속에 ‘어머니’라는 상징이 얼마나 견고하게 뿌리내렸는지를 증명한다. 이 같은 전승은 단순히 특정 여성 인물을 기리는 차원을 넘어, 공동체가 생명의 근원과 역사의 출발점을 인식하는 독자적인 문화적 문법이다. 신라와 고려 시대에 이르러 국모신 전통은 국가 제의와 민간 신앙과 결합하여 더욱 공고한 형태를 갖춘다. 사소가 호국의 여신으로 추앙받고, 고려 왕실이 고구려의 유화를 ‘동신성모(東神聖母)’로 격상해 국가적 사당을 세운 사례는 의미심장하다. 이는 고대 한반도 사회가 공동체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는 핵심 원동력을 ‘모성’이라는 상징적 구심점에서 찾았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을 단순히 남성 영웅의 탄생을 돕는 보조적 역할의 여성상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오히려 오랜 시간에 걸쳐 이어진 국모신·모성·여신 전통은 한민족 문화가 여성 존재를 생명의 근원과 문명의 출발점으로 이해해 왔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라 할 수 있다. 문화적 축적은 단순히 어머니나 돌봄의 상징으로서의 여성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여성 존재가 공동체와 문명의 중심적 의미를 지닌다는 인식을 서서히 형성해 온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그러한 까닭에 국모신과 모성의 전통은 독생녀 개념과 단절된 별개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하나의 문화적 토양으로 이해될 수 있다. 다시 말해, 국모신·모성·여신이라는 상징들은 그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 인류 문명 속에서 여성 존재가 단순한 보조적 역할을 넘어 보다 근본적인 의미를 지닌 존재로 이해될 수 있도록 준비해 온 하나의 문화적 교육 과정이었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독생녀’라는 개념은 본래 한국 신화의 해석 체계에서 파생된 용어가 아니다. 이는 기독교 문화권이 오랜 시간 천착해 온 성서 해석의 문제의식, 즉 신학적 성찰의 과정에서 재발견된 개념이다. 서구 기독교 문명은 오랜 세월 신(神)을 가부장적 질서 안에서 ‘아버지’로만 형상화해 왔다. 하지만 성경 창세기 1장 26절은 인간 창조의 찰나에 ”우리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들자“라는 복수형의 목소리로 기록하고 있다. 또한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을 지칭하는 ‘엘로힘(Elohim)’ 역시 문법적으로 복수 명사라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어지는 구절에서 인간이 ‘남자와 여자’로 창조되었다는 선언은 신의 형상 내부에 남성성과 여성성의 본질이 공존한다는 해석의 지평을 열어주었다. 이 같은 성서적 근거를 바탕으로 역사 속에 현현하는 여성적 구원 주체에 대한 사유가 본격화되었으며, 그 연잔선상에서 ‘독생녀’라는 신학적 화두가 논의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이다. 결국 독생녀 담론은 신의 온전한 형상을 회복하려는 신학적 노력의 산물이다. 이는 남성 중심의 편향된 신 인식을 넘어, 인류 구원의 역사 속에서 내재한 모성적 성령의 실체를 확인하려는 현대 신학의 실천적 고백이라 할 수 있다.

고기훈 박사(한국학)
다만 이러한 문화적 전통이 곧바로 독생녀의 계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웅녀를 비롯한 신화 속 여성들은 건국 서사 속에서 상징적으로 등장한 존재들이다. 반면 독생녀는 신화적 여성 인물의 연장선에 놓인 존재가 아니라, 하늘부모님이 보내신 존재로서 인류 구원섭리를 직접 담당하는 주체라는 점에서 그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따라서 웅녀 신화를 독생녀의 직접적인 전신이나 동일한 존재로 이해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결국 한민족의 신화와 역사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국모신과 모성의 전통은 인류 사회가 여성이라는 존재를 통해 생명의 경외를 어떻게 내면화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단서를 제공한다. 이 같은 유구한 문화적 기억의 토양 위에서 고대 웅녀 신화가 그러했듯이 인류 문화 속 여성 존재의 의미를 성찰하게 하는 새로운 사유로서 ‘독생녀’ 개념이 제기될 때, 이는 여성성의 위상을 새롭게 성찰할 수 있는 하나의 문명사적 전환점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한반도 웅녀의 전승은 ‘독생녀’라는 사유를 인류 보편의 가치로 확장하고 심화시키는 사상적 보고(寶庫)라 할 수 있으며, 우리는 그 모성적 원형을 통해 인류 문명의 본질과 새로운 시대의 영성을 다시 성찰하게 된다.

고기훈 박사(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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