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으로 풀어낸 중국 ‘문화 역사의 보고’ 섬서성

광주일보 2026. 4. 3.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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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절세 미녀를 꼽으라면 대체로 양귀비를 든다.

중국에 한정하지 않아도 천하의 절색으로 양귀비를 예로 드는 이들이 많다.

중국 섬서성 홍평시에는 양귀비 묘가 있다.

한국한문학회 회장을 역임한 송재소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펴낸 '시와 술과 차가 있는 중국 인문기행'은 '중화 민족의 요람'이라 불리는 섬서성(陝西省) 일대 답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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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시와 술과 차가 있는 중국 인문기행, 송재소 지음
중국의 절세 미녀를 꼽으라면 대체로 양귀비를 든다. 중국에 한정하지 않아도 천하의 절색으로 양귀비를 예로 드는 이들이 많다.

흔히 ‘경국지색’을 거론할 때 서양의 클레오파트라, 동양의 양귀비가 빠지지 않는다. 그만큼 두 여인의 미모가 출중했다는 얘기일 터다. 하지만 두 여인 모두 사치스럽고 호화스러웠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로 인해 나라를 위험에 빠뜨렸다는 점도 닮았다.

중국 섬서성 홍평시에는 양귀비 묘가 있다. 그녀의 무덤 뒤에는 한백옥(漢白玉)으로 제작한 조상(彫像)이 세워져 있다. 새하얀 백옥의 조각상은 절세미녀의 상징처럼 보인다. 커다란 머리채가 인상적인데다 한쪽으로 고개를 기울인 독특한 분위기를 발한다. 머리에는 꽃이 꽂혀 있어 그녀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양귀비 조각상의 높이는 38m이다. ‘38’이라는 숫자는 그녀가 세상을 떠난 나이라고 한다. 후세 사람들이 그녀의 죽음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여전히 중국에는 양귀비의 죽음을 둘러싼 이러저러한 얘기들이 전해내려 온다. 후세 사람들은 두 관점으로 양귀비를 바라본다. 하나는 지고지순한 사랑의 주인공으로 보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 양귀비를 악마화해 안녹산의 난을 촉발시킨 장본인으로 규정한다. 대체로 당나라 현종이 양귀비에게 미혹돼 제대로 정사를 돌보지 않아 나라가 풍전등화에 처했다는 부정적인 시각이 훨씬 많다.

한국한문학회 회장을 역임한 송재소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펴낸 ‘시와 술과 차가 있는 중국 인문기행’은 ‘중화 민족의 요람’이라 불리는 섬서성(陝西省) 일대 답사기다. 퇴계학연구원장, 다산연구소 이사이기도 한 송 교수는 한문학을 유려하게 우리말로 번역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학자다.

책에서 소개하는 섬서성은 주나라, 진·한·당에 이르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왕조들이 명멸했던 지역이다. 저자에 따르면 정치는 북경, 경제는 상해, 무역은 광동성이지만 역사와 문화는 섬서성이라고 할 만큼 유서 깊은 지역이다.

문화역사의 보고답게 섬서성에는 무려 3500여 곳의 고적이 자리하며 국보급 보물만 270곳에 이른다. 특히 섬서성 수도인 서안(西安)은 중국 13개 왕조의 도읍지로서 아테네, 로마, 카이로와 함께 ‘세계 4대 고도’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다.

책은 저자가 지난해 답사를 하며 보고, 듣고, 느꼈던 내용들을 갈무리한 것이다. 제목에 ‘시와 술과 차’가 들어 있는 것에서 보듯 학문적 관점보다는 기행의 시선으로 풀어냈음을 짐작케 한다. 역사, 문화와 삶의 현장에 시와 술과 차를 곁들인 인문학적 향기가 배어나오는 저작물이다.

지난 201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대자은사의 대안탑은 삼장법사 현장과 관련돼 있는 유산이다. 현장이 서역에서 갖고 온 불경, 불상을 보관하기 위해 직접 건립한 건축물로 당초에는 5층으로 계획돼 있었다. 하지만 5차례나 변경돼 7층 64.5m로 지어졌는데 인도 형식이 중국화 된 것으로 중국 건축예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당나라 시대 고승이자 학승인 현장은 그의 나이 28세에 인도로 건너가 불교를 공부했다. 17년 기간 110개 나라를 경유하며 법을 깨닫기 위해 여행을 했다. 저자에 따르면 귀국할 당시 150매의 불사리, 8개 금은 불상, 657부 불경을 가지고서였다.

또한 불교 교리와 산스크리트어, 중국어에 능통했던 그는 불경 번역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이밖에 책에는 거대한 지하 궁전인 진시황제릉을 명나라 때 중건돼 현재에 이른 서안성, 당나라 장안성, 신석기 시대의 촌락과 서안반파박물관, 로맨스와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여산 화청궁, 한 무제의 무릉과 곽거병 무덤 등 섬서성의 주요 역사와 문화 공간이 펼쳐져 있다.

<창비>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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