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희생 강요하는 ‘초고압 송전로’…건설 반대 함성
용인 반도체 산단 재검토 요구도…초고압 송전망 계획 갈등 확산

광주·전남을 비롯한 전국의 시민사회단체가 한국전력공사(한전)를 상대로 송·변전선로 건설 사업을 전면 재검토할 것을 촉구하는 궐기대회를 열었다.
‘용인반도체 국가산단 재검토와 초고압 송전탑 건설 반대 전국행동’(이하 전국행동)은 2일 오전 나주시 빛가람동 한전 본사 앞에서 전국궐기대회를 열었다.
광주·전남 지역을 비롯해 전북, 충청 등 전국 각지에서 모인 주민 500여명과 화물차·트랙터 100여대가 본사 앞 100m 구간을 빼곡히 메웠고, 참가자들의 손마다 반대 깃발과 피켓이 들렸다.
도로를 따라 ‘우리는 기업과 도시의 전기 식민지를 거부한다’, ‘구시대적 철탑 건설 즉각 중단하라’는 문구를 담은 현수막도 줄을 이었다. 참가자들은 ‘한전’이라는 문구가 적힌 상여를 앞세워 본사 정문까지 행진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
단체는 “모든 입지선정위원회를 즉각 중단하고 ‘주민이 반대하면 공사를 강행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명문화하라”며 “수도권 전력 수요 분산과 노후 핵발전소 폐쇄를 통해 송전망 여유를 확보하고, 신규 송전탑 계획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와 한전은 지난 2023년부터 용인 국가산단 조성 등에 필요한 전력을 수급하겠다며 지난해 제1차 전력망확충위원회를 통해 대규모 전력망 건설 사업 계획을 내놨다. 신해남~신장성(96㎞), 신해남~신강진(27㎞) 등 전남과 전북, 충청을 거치는 34만 5000V(볼트) 초고압 송전선 등 3800㎞ 송전망을 만드는 것이 골자다.
단체들은 정부와 한전이 경제적·환경적 타당성 없이 송전망 확충을 추진 중이라고 주장한다.
단체는 “송전선로가 LNG 기반 용인 국가산단에 원전 10기 분량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것인데, 산단은 연간 1000만t 이상의 온실가스 배출이 예상돼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과 충돌한다”고 밝혔다. 100조원 이상 예산 투입과 사회적 갈등이 예상됨에도 정부와 한전이 명확한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또 통상 4년 이상 걸리는 산단에 대한 검토 절차를 1년 6개월로 단축하고 예비타당성조사까지 면제한 데다, 이미 반도체 기업들의 투자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사업이 속도전으로 추진되며 수요 예측과 타당성 검토가 충분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하고 있다.
정철 전국행동 광주전남대책위원회 공동대표는 “주민들이 목숨 걸고 반대하는데도 정부는 아무런 해결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며 “오히려 일부 구간은 송·변전선로 입지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는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한전의 계획을 전면 무효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변전선로 입지선정위원회의 민주적 정당성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주민들이 거주지가 후보군에 포함된 이후에야 사실을 알게 되고, 이의를 제기해도 절차가 그대로 진행되는 등 의견 수렴이 부족하다는 것이 이들 주장이다. 위원회에서 결론이 나지 않더라도 한전 자체 위원회가 최종 결정권을 갖는 구조 역시 주민들의 의견 반영을 어렵게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박미경 광주전남대책위 공동대표는 “정책은 위에서 만들고 시민들은 뒤늦게 알게 된다”며 “지역 공동체를 갈라놓고 갈등을 부추기는 송·변전선로 설치를 반드시 막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도권과 지방 간 에너지 불평등을 고착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잇따랐다.
황성렬 충청권 대책위원장은 “아무런 자원이 없는 맹지에 반도체 산단 건설을 허가해 놓고 지방의 자원은 수도권으로 보내려는 행태”라며 “정부는 ‘지산지소(지역 생산, 지역 소비)’를 말하는데, 한전은 잘못된 계획을 밀어붙이고 있다. 비수도권 주민과 수도권 주민이 함께 힘을 합쳐 바로잡아야 한다”고 질타했다.
/나주=윤준명 기자 yoon@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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