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운명 듣는 짭짤이 토마토
음악인 출신 초보 농부의 과감한 도전
짭짤이 토마토의 달콤함으로 돌아온 음악

음악농법을 들어봤는가? 음악농법은 농작물에게 음악을 들려줘 생장과 발달을 촉진하는 농업 기술이다. 태아 건강을 위해 음악을 들려주는 것처럼 농작물도 음악을 들으면 생산성이 좋아지고 병해충도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농작물의 잎과 줄기에 닿은 소리의 파동이 세포벽과 세포막 등 세포질을 활발하게 움직이도록 자극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와 관련해 2000Hz 내외의 음악이 더욱 효과적이라고 한다. 모차르트, 베토벤 등 클래식 음악이 효과적인 데 비해 로큰롤 등은 오히려 역효과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미나리, 오이 등은 특히 민감하게 반응해 효과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농촌진흥청도 2009년 음악농법에 대한 연구를 추진한 바 있다.

부산에도 이색적인 농법을 적용한 농장이 있다. 강서구 죽동동에 위치한 ‘가락로컬팜’이 주인공이다. 농장을 운영하는 김창욱 씨(60)는 음악농법으로 짭짤이 토마토를 키우고 있다. 김 씨는 지난해 9월 농사를 시작한 ‘초보 농부’다.

이날 기온은 따뜻한 봄 날씨인 18도를 기록했으나, 열기가 갇힌 비닐하우스 내부는 43도까지 치솟았다. 짭짤이 토마토가 가장 좋아하는 기온은 25도 내외인데, 최근 급격히 날씨가 풀리면서 차양막 설치까지 고려해야 할 상황이라는 게 김 씨의 설명이다.
음악농법을 활용하는 농가답게 비닐하우스에 들어서자마자 베토벤 ‘월광’이 재생되고 있었다. 천장에 10m 간격으로 설치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여유로운 선율이 평화로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평소 그는 지인이 선물해준 CD로 토마토에게 음악을 들려준다. 이 CD에는 모차르트, 베토벤, 쇼팽 등 클래식 300곡이 수록돼 있다. 음악농법에 대한 그만의 철칙도 있다. 김 씨는 매일 오전 10시부터 정오까지 2시간만 음악을 튼다고 강조했다. 아무리 좋은 음악이라도 계속 들으면 소음이 되듯, 식물에게도 조용한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농사 철학이다.
“식물이 음악에 반응한다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에 있었습니다. ‘벼는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그것입니다. 농부의 근면함을 뜻하는 표현이지만, 식물도 소리를 듣는다는 의미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토마토 생장을 곁에서 지켜보는 그는 음악농법의 효과를 직접 확인했다고 말한다. 토마토 열매가 맺히기 위해서는 꽃 수정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 외부에서 벌을 구매해 비닐하우스에 방사한다. 이때 벌의 활동에도 음악이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음악을 틀기 전에는 일부 벌만 활동합니다. 반면 음악을 틀면 더 많은 벌들이 움직이는 것 같은 인상을 받습니다.”
초보 농부인 김 씨가 낯선 음악농법에 관심을 갖고 과감한 도전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그동안 음악에 몸담아 왔는데, 음악과 연결된 농사를 짓고 싶었다. 음악농법도 그런 맥락에서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씨는 경성대학교에서 성악과 작곡을 공부했고, 동아대 대학원에서 음악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2013년부터는 예술전문법인 음악풍경 대표로 활동했다. 2017년부터는 연주자와 관객이 함께 짜장면을 먹으며 소통하는 ‘짜장 콘서트’를 개최하는 등 음악계에서 활발히 활동해왔다.
음악계에 몸담았던 그는 인생의 전환점에서 토마토 농사에 뛰어들었다. “60살이 되니 사회로부터 단절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생계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 창조적인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게 바로 농사였습니다.”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강서구에서 농사를 지은 농부였다. 음악인이기 이전에 이미 농부의 피가 흐르고 있었던 셈이다. 이러한 배경이 맞물리면서 음악농법으로 토마토 농사를 짓겠다는 결심은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물론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기초 자금이 부족한 상황에서 농기계도 없었고, 농사 지식도 부족했다. 특히 작물이 마르는 증상을 보이는 황화바이러스에 일부 토마토가 감염되면서 줄기를 소각하는 일도 있었다.

그의 노력 덕분에 농장에서 생산되는 토마토는 8~10브릭스(Brix)의 당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한다. 이는 달콤한 딸기나 수박에 견줄 수준이다. 베토벤과 모차르트의 음악이 달콤한 맛으로 이어진 셈이다. 지난 3월에 열린 대저토마토축제 품평회에서는 그의 토마토가 은상을 수상하면서 상품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그는 로컬팜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농장에서 난 토마토를 활용한 요리 개발도 이어가고 있다. 이날 취재진에게는 직접 개발한 토마토 비빔밥을 선보였다. 짭짤이 토마토와 봄동을 얹고 반숙 달걀, 올리브유, 김가루, 참깨, 고추장 소스를 더해 완성한 음식이다. 이외에도 설탕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토마토 잼을 활용한 토마토 토스트를 개발하기도 했다.
맛은 의외였다. 비빔밥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토마토가 감초 역할을 톡톡히 했다. 달콤한 토마토와 새콤한 고추장 소스가 어우러져 입맛을 돋웠다. 이날 농장을 찾아 토마토비빔밥을 먹은 다른 농부 역시 “가게에서 팔아도 되겠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짭짤이 토마토는 다음 달까지 수확이 이어질 예정이다. 그는 수확을 마무리한 뒤 오는 6월 농막 음악회를 열 계획이다. 농사 성공을 기념하는 자리로, 피아노를 두고 작은 공연을 진행할 예정이다. 음악회에는 평소 알던 음악인들과 동네 사람들을 초청할 계획이다. 농사와 음악 인생이 결합된 그의 농장이 공연장으로 바뀌는 것이다.
또한 오는 10월에는 다음 농사의 성공을 기원하는 콘서트도 계획하고 있다. 음악농법을 실천하는 농가다운 발상이다.
김 씨는 앞으로 농작물의 상품성을 높이고 브랜드를 구축하는 데 힘쓸 계획이다. 농장 규모는 작지만, 그만큼 고품질 토마토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이다. 매주 토요일마다 농장에서 개최하는 열린 장터로 소비자들과 직거래하며 판매 가격을 낮추고, 그들에게 토마토 비빔밥도 대접하고 싶다는 것이다. 다만 음식을 미리 준비해야 하기에 예약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취재진이 떠나기 직전 농장에는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이 울려 퍼졌다. 음악인으로 살아온 김 씨가 이제는 음악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는 모습과 묘하게 어울리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