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철의 오페라 오디세이> ‘구원’과 ‘해탈’ 공존…‘무대신성축전극’

전남일보 2026. 4. 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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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의 ‘파르지팔’
생애 마지막 작품…5시간 대작
무한 선율·화려한 관현악법 정점
기독교적 상징·신비주의 담겨
종교적 소재, 예술로 승화·치유
바그너의 오페라 '파르지팔' 공연 장면. 출처 뉴욕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지난 연재에 다루었던 '로엔그린-Lohengrin, 1850'을 읽은 독자들이라면 오페라 '파르지팔-Parsifal, 1882'은 낯설지 않을 것이다. 두 작품의 공통 소재인 '성배'가 묘사되고 있으며, '로엔그린' 3막에서 언급한 성배 수호 기사 중 한 사람으로 파르지팔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바그너의 '파르지팔-Parsifal, 1882'은 그의 생애 마지막 작품이자 음악적·철학적 정수를 담은 거대한 '무대신성축전극(Buhnenweihfestspiel)'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아서왕 전설에 등장하는 예수의 피를 받은 잔인 '성배'와 예수의 옆구리를 찌른 창인 '성창'을 소재로 한다. 바그너는 이 작품의 신성함을 유지하기 위해 오직 자신이 세운 바이로이트 축제 극장에서만 공연하도록 유언을 남기기도 했다.

또한 압도적인 규모로 공연 시간이 쉬는 시간을 포함해 5시간이 넘는 대작이며, 기독교적 구원과 불교적 해탈의 이미지가 공존한다. 흥미로운 점은 '니벨룽겐의 반지'를 통해 바그너의 열렬한 지지자가 된 철학자 니체가 이 작품이 지나치게 기독교적이고 금욕적이라 비판하며 바그너와 완전히 절교를 선언하게 되었지만, 음악적 완성도면에서 바그너 특유의 무한 선율과 화려한 관현악법이 정점에 달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파르지팔'은 1877년부터 1882년에 바그너가 직접 대본을 쓰고 작곡한 작품으로 초연은 1882년 7월 26일 바이로이트에서 이뤄졌고, 바그너는 초연 7개월 만에 사망해 이 작품이 말년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을 바그너는 오페라나 악극이라 하지 않고 '무대신성축전극'이라 했는데, 이 작품의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작품 자체가 타락과 구원을 바탕으로 한 기독교적 상징과 관념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바그너의 오페라 '파르지팔' 공연 중 클링조어의 계략으로 상처를 입은 암포르타스왕. 출처 뉴욕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2023년 프로덕션)

총 3막의 줄거리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이 오페라 초입의 배경을 살펴봐야 한다. 신성한 기사 티투렐은 천사로부터 성배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몸을 찔렀던 성창을 받는다. 그는 스페인 북부 몬트살바트성에 성배와 성창을 안치하고 성내에 신성한 제단을 만들고 경배하며, 보물을 수호하는 기사단을 조직한다. 그리고 티투렐은 자기 아들 암포르타스에게 자신의 자리를 넘겨주지만, 왕이 된 암포르타스는 마법사 클링조어의 계략에 속아 성창을 빼앗기고 큰 상처를 입었다.

제1막의 배경은 스페인 북부 성배 수호 가사들이 있는 몬트살바트 성 안이다. 근처 숲속에서 나이는 들었지만, 혈기 왕성한 구르네만츠가 잠에서 깨어난다. 이때 훗날 마법사 클링조어의 마법으로 타락한 용맹한 여기사 쿤드리가 멀리 아라비아로부터 왕의 상처에 필요한 약을 구해 와서 구르네만츠에게 준다.

약을 전달받은 왕은 고마워하면서 약을 가지고 목욕하러 가며 구르네만츠는 암포르타스 국왕이 구원의 계시를 받은 내용을 이야기한다. 크링조어의 계략에 빠져 성창을 빼앗기고 상처를 입은 이야기와 하늘에 속죄하고 더럽혀진 성지(聖地)를 구해달라고 왕이 구원의 기도를 할 때, 성배가 빛나며 "내가 선택하여 보낸 이로 동정으로 지혜를 얻은 순수고 어리석은 자를 기다려라"라는 신의 계시를 들었다는 것이다. 이때 호수 쪽에서 백조를 쏜 파르지팔이 기사들에 의해 끌려온다.

이 작품에서 유일한 여성 출연자인 쿤드리는 그가 싸움을 배우지 못한 바보라고 그를 비웃자 파르지팔이 그녀에게 달려들려 한다. 구르네만츠는 그들의 싸움을 말리고 파르지팔을 성안으로 데려간다. 그는 성전 안의 예식을 통해서 파르지팔이 그가 계시를 통해 찾는 '순수하고 어리석은 자'라면 그에게 무언가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자 그를 내쫓는다.

제2막의 시작은 클링조어의 마법의 성이다. 마법으로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쿤드리를 클링조어가 깨운다. 쿤드리에게 성배의 기사를 유혹하라고 재촉하면서 "자신의 마법은 순진하고 어리석은 자만이 풀 수 있다"라고 이야기한다.

클링조어의 정원에서 몬트살바트 성에서 쫓겨난 파르지팔은 자신을 유혹하려는 처녀들을 뒤로하고 떠나려 하는데 절세미인으로 둔갑한 쿤드리가 부드러운 목소리와 함께 등장해 파르지팔을 유혹한다. 그녀에게 빠져들려는 순간 갑자기 암포르타스가 상처의 고통을 느끼며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유혹 물리친 것에, 놀란 쿤드리는 클링조어를 부른다. 부름에 등장한 클링조어가 성창으로 파르지팔을 죽이려고 던지지만, 그는 성창을 잡아 창으로 십자가를 그린다. 이후 클링조어의 성이 무너지고 정원은 광야로 변하며 파르지팔이 떠난다.

제3막, 막이 올려지면 몬트살바트의 새벽 숲속이다. 1막보다 몇 년의 세월이 흘러, 성(聖) 금요일 노인이 된 구르네만츠는 숲속에서 신음하는 쿤드리를 일으켜 세운다. 그리고 둘의 대화 중 성창을 들고 늠름하게 변한 파르지팔이 등장한다. 파르지팔의 고난과 방랑의 이야기와 티투렐의 죽음, 왕의 병이 더 악화했다는 이야기를 서로 나눈 다음 구르네만츠가 파르지팔에게 세례를 주고 이어서 파르지팔은 쿤드리에게 세례를 베풀자 그녀는 마법의 저주에서 해방된다.

구르네만츠, 쿤드리와 함께 성안으로 들어간 파르지팔은 성배의 기사로 임명되고 이어 성전에서 성창을 들어 창끝으로 암포르타스의 상처에 대며 "당신을 상처 입힌 이 창만이 당신을 치료할 수 있다. 용서와 치유와 속죄를 받고 축복을 받아라. 이제부터 그대가 하던 일을 내가 하리라"하고 말한다.

이어 암포르타스의 상처는 금방 아물고 그의 얼굴빛이 환하게 빛난다. 모두를 감격해하며 기적에 놀란다. 파르지팔이 성배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자 높은 곳에서, "오! 경이로운 구원의 기적이여! 구세주께서 부활하셨도다!"라는 합창이 들려온다. 그리고 천장에서 흰 비둘기가 날아와서 파르지팔의 머리 위에 맴돌고 쿤드리는 파르지팔의 발아래 쓰러지며 숨을 거둔다. 파르지팔은 성배를 들어 기도하고 있는 암포르타스와 구르네만츠를 비롯한 모두에게 축복하며 대단원의 막이 내린다.
바그너의 오페라 '파르지팔' 공연 장면. 출처 뉴욕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바그너의 마지막 오페라 '파르지팔'은 그의 예술적 생애를 집대성한 작품이며 여러 철학적 사상이 융합되어 있다. 특히 철학가로 쇼펜하우어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이 작품을 통해 고찰해보면 세상은 맹목적인 '생의 의지'로 인해 고통받으며, 이를 벗어나는 길은 욕망을 끊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또한, 등장하는 파르지팔을 가리키는 '성스럽고 어리석은 자'는 주인공이 지식이 아닌 타인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연민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성욕으로 상징되는 쿤드리와 권력욕으로 상징되는 클링조어를 물리치며 구원에 이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기독교적 상징과 신비주의로 가득차 있으며, 이러한 관점에서 작품을 분석해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를 준다.

성배, 성창, 성금요일의 마법 등 기독교적 소재가 가득하지만, 교리 자체보다는 신비주의적 의례에 집중한다. 그리고 암포르타스의 상처를 인간의 죄와 고통으로 비유한다면 파르지팔의 순결한 희생적 행위로 치유되는 과정은 불교에서 일컫는 해탈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지그프리트를 초인에 비유하며 기존의 종교, 도덕적 관념의 변화를 열망해 오며 바그너의 작품을 숭배하다시피 한 니체는 그가 노년에 다시 기독교로 회귀했다고 비판하였다.

니체는 '파르지팔'을 보고 바그너가 '생의 찬미'를 버리고 기독교적인 금욕주의와 허무주의에 굴복했다고 보았으며 니체에게 성배 기사 파르지팔은 나약한 인간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바그너에게 파르지팔은 인류를 구원할 유일한 도덕적 대안이라 할 수 있다. '파르지팔'은 "지식에 의한 깨달음이 아니라, 연민을 통한 깨달음이 구원을 가져온다"라는 바그너의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바그너는 자신의 생애 마지막 작품인 '파르지팔' 안에 자신이 평생 이뤄낸 총체적 악극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작품이다. 그리고 그가 표방하고자 하는 인생의 마지막 깨달음을 담아 외치고 있다. 바그너의 영적인 메시지를 담은 '파르지팔'은 작품의 주인공 파르지팔이 처음에는 세상 물정 모르는 '순수하고 어리석은 자'였으나, 타인의 고통을 자신처럼 느끼는 '연민'을 통해 얻은 성숙과 고통에 대한 공감이 곧 구원이라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2막에서 파르지팔은 쿤드리의 치명적인 유혹에 직면하지만, 이를 물리치고 자신의 사명을 깨달음을 통해 '유혹과 시련은 자신을 찾는 과정'임을 말하고 있다. 바그너는 종교적 소재를 예술로 승화시켜 인류의 고난을 치유하고자 했으며, 쇼펜하우어의 철학적 허무를 '자비'와 '구원'으로 풀어내며 예술은 종교와 철학을 넘어선 치유의 힘이 있음을 강조하였다.

예술로 치유하는 행복한 중독에 빠진 세상! 오페라가 주는 감동의 세상이다.

광주시립오페라단 예술감독·문화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