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판 ‘그것이 알고 싶다’

조중연 2026. 4. 3.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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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연 장편소설 ‘남방여왕-괴물의 탄생’] ⑥제주도판 ‘그것이 알고 싶다’

<연재 순서>

1 프롤로그_이성로 변호사
2 어두움의 끝_유령
3 육짓것의 시간
4 '게메'란 말은….
5 심층취재부
6 제주도판 '그것이 알고 싶다'
7 제주도 3대 영구 미제 사건
8 관덕정 살인 사건
9 유력 용의자의 등장
10 새벽의 루트
11 두 개의 모순점
12 나보다 더 센 놈이 나타났다
13 신탁의 밤

신제주 '속에천불' 주점에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30분 뒤였다. 원래 이름은 '속에천불 제주막걸리집'인데, 청양고추를 잘게 썰어 넣은 부추전이 대표 메뉴였다. 이틀이 멀다고 다니던 단골집이었지만, 대리운전을 시작하면서 발길이 뜸해졌다. 다행히 구석 자리가 하나 비어 있었다. 

"어이, 김 작가." 

누군가 불러 뒤를 돌아보니 탐라작가협회 회원들이 앉아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찔끔 외면하는 후배 시인도 있었다. 전 회장 측근으로 분류되는 한 시인은 바로 로우킥 자세로 고쳐 앉았다. 회전축으로 쓸 왼발을 바닥에 힘주어 딛고, 오른 발꿈치를 까치발로 든 모양이 여차하면 출격하겠다는 의사로 보였다. 적대감이 죽창처럼 뾰족하게 느껴졌다. 

그 순간 석달 전 작가협회 동료들과 술 마시면서 성명서 운운했던 사실이 떠올랐다. 표정이나 자세로 보아 벌써 그 얘기가 자리를 휩쓸고 지나간 모양이었다. 비난의 타깃이었던 전 회장도 앉아 있었다. 김수남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잡았다. 다행히 로우킥 회전 반경과 거리가 먼 테이블이었다. 

"제주도 작가들이네요." 

막걸리가 나오자 강경식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협회에서 함께 활동하는 사람들이지." 

김수남이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별로 친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선배님 성격이 워낙 칼 같으셔서." 

"못된 성격 탓이지. 한때는 술도 자주 마셨는데, 요즘 하고 다니는 꼬락서니가 영 마음에 안 들어서 말이야." 

김수남이 담배를 피워 물었다. 최근 다시 피우기 시작한 담배였다. 

"어떤 면에서 그렇죠?" 

"뭐랄까, 본질과 동기의 문제가 아닐까 싶어. 질문을 바꿔서 하면 마음속에 무엇을 품고 있느냐, 무엇 때문에 하느냐, 무엇을 쳐다보고 있느냐의 문제라고 할까." 

"잘 이해하지 못하겠는데요." 

"최근 몇 년 동안 워낙 많은 변수들을 겪게 되니까 점점 자신이 없어져. 내가 과연 이렇게 살아도 될까,라는 자가당착에 빠졌다 할까. 좀전에 저 사람들 눈빛을 자네도 봤을 거야. 내가 도대체 뭘 했다고 눈빛으로 저렇게 나를 두드려 패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 문학 쪽으로 말해볼까? 나는 왜 소설을 쓰는지 말이야." 

강경식이 계속 말해보라는 듯이 막걸리 잔을 들었다. 마가린으로 얇게 부친 '속에천불' 표 부추전을 큼직하게 찢어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젊었을 땐 말이야, 소설 써서 돈도 벌고 차도 사고 결혼도 하는 게 꿈이었지. 하지만 그것은 대한민국 1%의 이야기야. 그렇다면 지금 입장은 어떨까. 난 말이지, 문학이란 게 좀 더 순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야." 

"어째 다른 문인들은 그렇지 않다는 뜻으로 들리는군요." 

이번에는 강경식이 맞장구를 쳐주었다. 

"모두가 그렇다고 한통속으로 몰아가기에는 어폐가 있지. 그렇지만 최근 들어서 나는 저들이 가슴 안에 뭘 품고 있는지, 무엇을 지향하는지를 보고 회의가 들었어. 너무 쉽게 본색을 드러냈다고 할까." 

"저기 저분, 작가협회 회장 맞죠? 낯이 익은 분인데." 

"현 회장은 아니고 전 회장이지. 지금 저 사람 말을 하고 있는 거야. 저 사람 요새 원세륜 옆에 붙어서 예술위원장인가 뭔가를 하고 있지." 

"원세륜 도정이 들어서면서 제주도 안의 사회단체들이 거의 그렇게 변했어요. 비단 작가협회 문제만은 아니에요. 이번 기회에 도정의 문화예술정책에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기대하는 사람도 적지 않더라고요." 

"글쎄, 나는 저자가 입에 달고 사는 '문학적'이란 표현이 두고두고 마음에 걸려. 10여년 동안 작가협회 통장을 관리하던 실무자가 있었거든. 공금 횡령 비슷한 비리를 저질렀지. 그래서 저자가 회장이 되었을 때, 문제를 제기했어. 그랬더니 하는 말이 나의 내부 고발이 문학적이지 않다는 거야. 그때 나는 오랜 세월 문학을 한 선배에 대한 예우로 가만히 듣고만 있었지.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고 또 해봐도 그 '문학적'이라는 말이 이해되지 않더군."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같은 말이죠." 

자기 뒷담화를 하는 걸 눈치챘는지 전 회장이 김수남 쪽을 바라보았다. 자리를 옮기고 싶은데 이쪽 분위기가 삼엄한지라 망설이는 모습이었다. 

"공금 횡령이란 세속의 단어가 고고한 문학판과 어울리지 않는단 말이겠지. 그런 자가 원세륜이 도지사 되니까 '아주 세속적으로' 도정에 합류했단 말이야. 요새는 뭐 손오공을 가르치는 삼장법사처럼 도지사 옆에서 목에 힘주고 찍은 사진도 보이더구만. 문학판이 정치판으로 변질되었어." 

"송재혁 편집국장 얘기 들었어요. 선배를 제주도로 스카우트한 사람이 편집국장이시라고. 지금 말씀하시는 걸 보니 선배는 제주도에서 살기 힘들 거 같아요. 한두 가지도 아니고 그렇게 사람들과 사사건건 부딪치고 있으니." 

"결론은 항상 내 성격이 나쁘다는 것으로 귀결되지. 쟤들은 나한테 '성격 나쁜 놈'이라는 프레임만 씌울 뿐 내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관심도 없어. 그저 불순분자의 불평불만이라 치부하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는 거지." 

강경식이 구제 불능이라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뭔가 되짚는 듯한 표정으로 김수남을 쳐다보았다. 이어 갈증을 느낀 듯 막걸리를 한 잔 들이붓더니 빠른 동작으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의 눈에 섬광이 서려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도 제주도판 '그것이 알고 싶다' 한 편 찍어보면 어떨까요? 아예 전혀 다른 분야로 방향타를 돌려보면……." 

"무슨 뜻이지?" 

"솔직히 세상에서 제일 재미나는 게 범죄 이야기잖아요. 피가 좀 튀어줘야 엔도르핀도 돌고 흥미진진해지죠. 제주도 안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을 다뤄보자. 그것도 미제 사건을 특집으로 잡아서. 서울 일간지들도 이런 거 연재 많이 했잖아요. 우리는 제주도 사건에 한정해서 상세히……." 

"2009년 제주 여교사 살인 사건 같은 거 말인가?" 

"그것도 포함되겠죠.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관덕정 살인 사건이 도민의 뇌리에 강렬하게 남아 있어요. IMF 시작점인 1997년에 일어난 데다가 약간 연쇄살인의 뉘앙스도 풍겼으니까." 

"연쇄살인사건?" 

"공교롭게도 1997년 8월 관덕정 살인 사건 발생 당일에, 서귀포 미소카페 여주인이 살해되는 사건까지 일어났어요. 어느 게 먼저인지는 모르겠는데 시체가 발견된 게 같은 날 새벽부터 아침까지로 몇 시간 차이가 안 나요. 경찰은 두 사건에 연관성이 없다고 결론 내렸지만." 

김수남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 의자를 바투 끌어당겨 앉았다. 군침이 싹 돌았다. 

"그렇다면 1997년 8월 어느 날 새벽쯤에 두 살인 사건이 동시에 발생했단 말인가?" 

"제주시 관덕정과 서귀포 시내 카페에서." 

"두 사건 모두 범인이 잡히지 않은 채 공소시효가 만료됐고?" 

"그 외에 1999년 제주 변호사 피살 사건도 있어요." 

"범인이 잡히지 않았다면 세 사건 모두 공소시효가 끝난 영구 미제 사건이네. 경찰은 수사 종결을 선언했겠고. 지금쯤 경찰서 캐비닛 속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을 테고……. 미제 사건이 된 나름의 이유가 있었겠지. 초동수사에 문제가 있었다든가 따위의. 헌데 나는 제주도 사람이 아니라 한계가 있을 것 같은데. 인터뷰나 잡다한 조사 같은 것에서 말이야." 

"취재는 제가 한다고 했잖아요. 선배는 분석하고 글을 쓰세요. 경찰서에 보관된 조서만 해도 라면 박스 몇 개 분량은 될 거예요. 또 TV에 출연하는 프로파일러 의견을 박스 기사로 첨부해도 좋고. 이런 기획이라면 대박이 날지도 몰라요. 제주도에서 최초로 시도하는 거니까. 너무 선정적으로 말고, 현장과 증거에 충실하게, 심리 묘사를 한다든가, 이런 식으로. 선배가 소설을 쓰니까 느낌 더 잘 아시잖아요." 

그 순간 김수남은 희열감이 단전으로부터 지펴 오르는 것을 느꼈다. 공기가 환기되면서 주변이 환해졌다. 오랫동안 쓰지 못했던 신박한 소설 거리를 찾은 느낌이었다. 

"그때 정말 대단했거든요. 여자들이 무서워서 외출을 삼갈 정도였으니까. 제주도에서 한날한시에 살해된 시체가 두 구나 발견되었으니 도민들이 받은 충격과 공포야말로 이루다 표현할 수 없었죠. 저도 그중 한 사람이었고." 

"너무 선정적인 기사가 되지 않을까. 피해자가 둘 다 여성인 점도 부담스럽고." 

"바로 그거예요. 이왕 할 거 제대로 멍석 깔고 제대로 해보자고요. 언제 선배가 다른 사람 눈치 보면서 할 말 못 한 적 있나요? 짤릴 때 짤리더라도 적극적으로 부딪쳐봅시다, 쫌!"
조중연.

조중연

2008년 계간『제주작가』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탐라의 사생활』,『사월꽃비』가 있다.

kalito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