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성지순례] 단정한 처마 아래 고인 고요의 시간, 아름드리 노거수 따라 걷는 마을 옛길


◇ 봄볕 깃든 통진향교, 군하리 옛길의 출발점
군하리 마을 동쪽 가장자리, 양지바른 경사에 차분하게 자리한 통진향교에도 봄볕이 깃들었다. 담장 주변으로 진달래와 매화가 폈고 말랑하게 녹은 땅 위로는 냉이와 지칭개, 뽀리뱅이가 올라왔다. 눈요깃거리가 많아서인지 봄날의 향교 마실이 퍽 즐겁다. 사실 향교는 행사와 제사가 있는 날을 제외하고는 적요한 공간이다. 그럼에도 통진향교를 찾은 이방인의 발걸음이 무겁지 않은 까닭은 폐쇄적이지 않고 너른 품을 내어주는 향교의 개방적인 인상 덕분일 것이다.

누각에서 바라보는 월곶면 군하리는 낮은 지붕들이 어깨를 맞댄 소박한 면 소재지의 모습이다. 여느 농촌의 모습과 다를 바 없지만, 문수산 품에 안긴 이 고즈넉한 교궁의 존재는 군하리의 뿌리를 더듬어 나가는 단서가 된다. 향교가 있는 지역은 과거 행정적, 문화적 중심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향교의 오랜 역사를 증명하듯 풍화루를 드리운 아름드리 느티나무의 나이는 400살이 넘었다. 그런데 향교는 이보다 더 오래전인 900년 전, 1127년(고려 인종 5년)에 세워졌다고 전해진다. 설립기록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군하리의 역사를 함축하고 있는 상징적인 공간이라 할만하다. 해서 김포시 월곶면 군하리 옛길을 걷는 여정은 통진향교에서 시작된다.
◇ 도내 최고(最古) 대성전 아래서 응시하는 고요한 풍경
풍화루를 지나 내삼문 앞으로 가면 400년 된 또 다른 느티나무 한 그루가 수문장처럼 서 있다. 좌측의 250년 된 느티나무까지 총 세 그루의 보호수가 향교를 수호하고 있는 셈인데 여름이면 잎이 무성해져서 명륜당 뒷마당은 숲에 들어온 듯 아늑한 그늘이 된다. 객이 쉬어가기 좋은 그 자리에 경기옛길 강화길의 스탬프박스가 놓여 있다.

통진향교의 건물 배치는 전형적인 전학후묘로 앞쪽에는 교육 공간인 명륜당이, 뒤쪽에는 제사 공간인 대성전이 있다. 계단을 올라 내삼문을 통과해 제향 공간으로 들어서면 공자를 비롯한 5성을 봉안한 대성전과 공문 10철, 송조 6현, 동방 18현의 위패를 모신 동무와 서무가 자리한다. 역시나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향교의 제향 공간이지만 대성전은 도내 향교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손꼽힌다. 맞배지붕의 골기와집으로 전면에는 장초석을 사용했고 지붕 처마를 받친 공포는 새부리 모양의 익공 양식이다. 전문가들은 건축 양식상 17세기 말에 지어진 것으로 본다. 다만 온전히 보전된 것은 아니다. 일제강점기 때 1군 1향교 정책에 따라 폐쇄됐던 향교는 광복 이후 기능을 되찾았지만 6·25전쟁 때 건물이 크게 파괴됐다. 이후 1965년 대성전이 중수됐고 1990년 이후 동재와 풍화루 등이 복원됐다.
대성전에서 내려다보는 향교의 전경과 군하리의 모습은 더없이 정갈하다. 대칭의 미학을 보여주는 동무와 서무, 정연하게 놓인 신도와 그 끝의 솟을삼문, 수묵화의 필치처럼 하늘로 뻗은 느티나무 가지와 그 너머 나지막한 남산의 부드러운 능선까지 어느 하나 넘침없이 조화롭다. 일상의 소란함이 닿지 않는 이곳에서 풍경이 내어주는 고요를 가만히 응시하다 보면 마음속 묵은 생각도 바람에 흩어지는 듯하다.
◇ 나루가 통하던 고을, 관청길로 이어지다

향교에서 이청으로 향하는 200m 남짓의 마을길은 밭두렁과 골목을 지나 예스러운 정취가 흠뻑 느껴진다. 그 짧은 길에도 통진이청 방향 팻말이 여러 개 세워졌고, 곳곳에 수선화, 팬지 등의 꽃을 가꾼 화단이 있다. 이 길은 통진향교와 통진이청을 거쳐 월곶생활문화센터, 김포국제조각공원까지 이어지는 '군하리 관청길'의 일부로 지난 2019년 김포시 마을안길 공모전에서 선정된 이후 꾸준하게 정비가 이뤄져 왔다. 통진향교를 출발해 약 2시간 동안 마을안길을 걷는 여정은 주민의 해설을 곁들인 상설 투어로도 운영되고 있다. 네이버에서 월곶쌀롱을 검색하면 온라인으로 예약이 가능하며 가격은 성인 5천 원이다. 월곶쌀롱은 월곶면 주민들의 생활협동조합이다.
◇ 남겨진 관아와 항일의 기억, 군하리의 또 다른 시간


월곶생활문화센터는 주민들의 배움터이자 사랑방인데 이곳 2층에는 통진도호부 전시관이 마련돼 있다. 통진의 연혁과 관련 유적, 자연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소개한 곳이다. 향교, 객사, 관아가 있는 옛 군하리 일대의 모습을 재현한 디오라마와 통진현이 기록된 고지도 등이 통진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숲속 미술관의 관람을 마쳤다면 마지막으로 들를만한 장소는 김포평화문화관이다. 김포국제조각공원에서 김포시청소년수련원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목에 자리한 컨테이너 건축물로 전시실, 도서관, 음악감상실 등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이다. 이곳의 주제 역시 분단과 평화다. 평화를 노래한 밥 딜런의 음악을 감상하고 이호철의 '판문점', 박완서의 '엄마의 말뚝'과 같은 분단 문학을 읽는 것으로 통진향교에서 출발한 '군하리 관청길'의 여정은 마무리된다.
유승혜 여행작가
Copyright © 저작권자 © 중부일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