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화 어때] 널 만나고 나서야 완성된 내 사랑의 퍼즐 , 영화 ‘위 리브 인 타임’
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신정선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197번째 레터는 8일 개봉하는 영화 ‘위 리브 인 타임’입니다. 요즘 한국영화에서 멸종위기종인 로맨스 영화에요. 플로렌스 퓨와 앤드류 가필드가 범상치 않은 계기로 사랑에 빠지는 커플로 나옵니다. 이 영화는 다른 로맨스 영화와 좀 달라요. 이야기 방식이 독특하거든요. 방식이 스포는 아니라서 먼저 알려드릴게요. 모르고 보시면 처음에 약간 어리둥절하실 수 있는데, 아시고 보시는 편이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훨씬 쉽게 이해하실 수 있기도 하고요. 아마 AI한테 각본 쓰라고 하면 이렇게 못 나올 걸요. AI는 확률적 평균을 그럴싸하게 내놓기만 하니까요. 그럼, AI는 짐작할 수 없는 인간의 복잡하고 알 수 없는 사랑의 세계로 들어가보시겠습니다.

영화 제목부터 짚고 갈까요. ‘위 리브 인 타임’, We live in time, 즉, 우리는 시간을 산다, 입니다. 제가 위에서 이야기 방식을 말씀드렸는데, 이 영화는 시간을 다른 영화와 다르게 보여줘요.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거야 흔하고, 아예 역순으로 보여준 ‘돌이킬 수 없는’ 같은 영화도 있지만, ‘위 리브 인 타임’은 영화 속 시간을 흩어놨습니다. 직소퍼즐 아시죠. 하나의 커다란 그림을 완성하려면 흩어져 있는 퍼즐 조각을 하나씩 하나씩 맞춰야하잖아요. 그것과 비슷합니다. 보는 관객은 영화를 시간 순서대로 경험하지만 보여주는 감독은 조각조각 흐트러뜨려서 보여줘요. 쉽게 말해 시간이 섞여있습니다. 아주 복잡한 정도는 아니고요.
영화가 시작하면 함께 행복하게 사는 알무트(플로렌스 퓨)와 토비아스(앤드류 가필드)를 만나시게 돼요. 여자가 침대에 누운 남자에게 음식 맛을 봐달라며 가져오는데, 다음 순간 어두컴컴한 방의 침대에 누워있던 남자가 벌떡 일어납니다. 욕실에 가니 만삭인 여자가 배를 어루만지면서 변기에 앉아있어요. 둘이 대화를 나누려는가 싶은데 장면이 전환돼 레스토랑에서 요리를 하던 여자가 갑작스럽게 통증을 느끼고 병원에 가게 되고 “암이 재발했으니 항암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을 듣습니다. 여기까지가 러닝타임 5분 정도만에 다 일어나요. 두 사람의 관계가 흘러오고 흘러가는 시간의 퍼즐이 하나씩 제시되는 거죠. 그러면 너무 헷갈리지 않겠느냐고 하실 수 있는데, 있어요. 저는 플로렌스 퓨의 머리 모양을 보고 알아챘거든요. 이마를 덮은 앞머리가 있을 때, 이마를 드러내고 뒤로 묶었을 때, 항암 치료 때문에 머리를 다 밀었을 때 등으로 구분하시면 쉬우실 거에요.

초반부에 바로 알려주는 것처럼, 알무트는 요리사고, 암이 재발해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종양이 너무 커서 당장은 수술도 불가능하다는 진단이 나왔어요. 알무트는 “6개월이라도 적극적으로 환상적인 삶을 사는게 1년간 엿같은 치료에 끌려다니는 것보다 낫다”며 “치료를 아예 안 받겠다는 게 아니라 옳은 선택을 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이런 그녀에게 요리경연대회(실제로도 유명한 요리대회인 보퀴즈 도르)에 나가자는 제안이 들어옵니다. 요리대회와 치료를 병행하기는 어려운 상황, 그녀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여기까지 들으시면, 그럼 병 때문에 위기를 겪는 남녀의 흔한 연애이야기인가 하실 수 있는데, 바로 이 부분을 새롭게 칠하는 게 이야기 방식입니다. 아이구, 어쩌면 좋아, 흑흑, 여러분도 슬프시죠, 이래도 안 울 거야, 이런 식으로 관객의 감정을 몰아가거나 강요하지 않습니다. 관객이 감정을 쌓아올리는 걸 고의로 방해해요. 감정이 이입되는 부분을 흩어놨으니까요. 이렇고 저래서 저렇고 이렇게 됐구나, 이해해 나가면서 두 사람의 삶을 커다란 그림으로 완성해 나가도록 끌어갑니다. 마침내 그림이 완성됐을 때 어떤 마음이 되는지는 여러분의 선택. 주인공이 죽음 앞에서 어떤 방식으로 살아갈지를 선택한 것처럼요.

흔히 사랑은 교통사고처럼 닥친다고도 하는데, 둘은 정말 교통사고로 만났습니다. 토비아스가 이혼을 앞두고 있었거든요. 호텔방에서 야밤에 이혼 서류에 사인하려고 하는데 볼펜이 안 나오는 거예요. 연필을 찾아서 잘됐다 했는데 그만 연필심이 부러져 버리고요. 짜증이 나버린 그는 호텔 가운을 입은 채 그 밤에 마트로 직행해 볼펜을 여러 자루 삽니다. 그러고 돌아오다가 무단횡단을 해서 차에 치이는데 그 차의 운전사가 알무트였습니다. 플로렌스 퓨와 앤드류 가필드가 자석 같은 끌림을 매우 잘 연기해요. 피할 수 없는 갈등, 헤쳐가야 하는 오해도 두 사람의 퍼즐을 단단하게 완성시킵니다.
영화가 시간을 흐트려서 보여주기 때문에 하나의 감정에 매몰되지 않는 인생의 진실에 더 다가갔지 않나 싶어요. 누구의 삶에든 슬픔과 기쁨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잖아요. 파편처럼 흩어진 기억의 조각이 합쳐져 하나의 인생으로 완성되듯, 두 연인의 시간을 조각조각 들여다보면서 어느 것이 슬픔의 조각이고, 어느 것은 행복의 조각이었는지를 비로소 알게 됩니다. 그때그때 충실했고, 그때그때 진심이었던 순간들, 그것들이 조각조각 모여 사랑의 역사를 이루었다고, ‘위 리브 인 타임’은 말합니다. 둘이 그래서 어떻게 됐는지는 직접 보시고 확인을. 후반부 아이스링크 장면에서 가슴 찡한 분들이 많지 않으실지. 훗날 돌아볼 때 그들의 삶에 가장 애틋한 조각으로 떠오르겠죠. 여러분의 삶에도 그런 순간이 있지 않으신가요. 어딘가에 조각조각 흩어져 있더라도. 그럼, 저는 다음 레터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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