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구역으론 만경대, 시민들 마음엔 백운대 [서울 최고봉은?]

신준범 2026. 4. 3.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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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지리정보원 발행 최신 2만5,000분의 1축척 지형도. 보라색 선이 서울과 고양을 가르는 경계다. 800.6m봉은 만경대이며, 만경대까지가 법적인 서울에 속한다.

서울 최고봉은 북한산 백운대가 아니다. 서울시청과 북한산국립공원 사무소에 서울 최고봉이 어디인지 물었다. 담당자들은 "모르겠다"며 "알아보고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관계자들도 이럴진대,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도 서울의 최고봉이 어디인지 모르거나, 잘못 알고 있다. 대한민국 측량·지도 제작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등잔불이 어두운 것이다.

북한산 정상인 백운대(836m)는 경기도 고양시에 속한다. 서울 강북구 우이동에서 백운대로 이어진 산길의 초입 고개인 하루재(490m)부터 서울 땅이니, 백운대와 인수봉은 완전히 고양시에 속한다. 정상 부근이 경계라면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백운대피소(구 백운산장), 인수암, 경찰산악구조대 건물이 모두 고양시에 속한다. 법적으로 백운대를 서울 최고봉으로 볼 만한 여지가 전혀 없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북한산 백운대를 서울 최고봉으로 알고 있다.

북한산국립공원이 발행한 등산지도. 만경대를 경계로 서울과 경기도가 나뉘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다.

국토지리정보원의 인터넷 지도인 국토정보맵은 정부의 공식 지도이다. 주기적으로 조사해 바뀐 길과 건축물, 새롭게 측량한 산의 높이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인터넷 지도에서는 세밀한 서울시 경계를 확인할 수 없었다. 백운대가 서울 밖이라는 것만 알 수 있고, 축척을 확대하자 시 경계 표시가 사라졌다.

현실적으로 확인 가능한 지도는 국토지리정보원 2만5,000분의 1 축척 지형도였다. 그런데 북한산 정상 부근에서 모호하게 시 경계선을 그어놓았다. 지도를 보면 시경계를 보라색으로 표시했는데 북한산성(주능선)을 따라 이어진 선이 해발 800.6m의 만경대에서 사라진다. 시경계는 봉우리를 지날 때 가독성을 위해 표시를 생략하기도 하는데, 마찬가지의 경우로 볼 수 있다.

북한산국립공원이 발행한 도봉산 등산지도. 자운봉이 도봉산 최고봉이지만 암벽등반으로만 오를 수 있다. 산행으로 오를 수 있는 서울 최고봉은 신선대다.

시경계의 흐름을 따라 유추하면 800.6m라 표시된 만경대 정상에서 지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법적으로 서울 최고봉은 만경대(800.6m)인 것이다. 북한산국립공원과 월간<山>에서 제작한 지도를 보면 시경계를 정확히 표시했는데 만경대 정상을 선이 지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다음으로 높은 서울의 산이 도봉산(740.2m), 관악산(632.2m) 순서임을 감안하면 만경대는 압도적인 서울 최고봉이다.

1만 가지 경치를 볼 수 있다는 만경대萬景臺는 워킹산행으로 오를 수 없는 바위봉우리다. 능선을 따라 암릉이 이어진 리지 코스의 정상이며, 꼭대기에는 정상 표지석이 없다. 그러면 산행의 서울 최고봉은 어디인가? 도봉산 최고봉은 자운봉(740.2m)이지만 암벽등반으로만 오를 수 있다. 걸어서 오를 수 있는 최고봉은 신선대(726m)이다. 국립공원에서는 신선대 정상 표지목에 높이 726m를 표시해 놓았다. 법적인 최고봉은 북한산 만경대, 워킹산행 최고봉은 도봉산 신선대인 것.

법적인 서울 최고봉인 만경대. 왼쪽 두 번째 봉우리가 만경대 리지의 최고봉이다.

아쉽게도 서울시와 국립공원은 최고봉에 관심이 없거나 무지했다. 문의한 지 2시간이 지난 뒤에 연락이 왔으나 북한산국립공원과 서울시청에서는 "북한산 백운대가 서울 최고봉"이라 답했다. 기자가 "백운대는 고양시에 속한다"고 하자, 서울시에서는 "국립공원 관할이라 잘 알지 못한다"고 했으며, 국립공원 관계자는 "그런 것까지는 알지 못한다"고 했다. 국토의 60% 이상이 산지인 나라에서 정부 관계자들이 관할 구역의 상징적인 최고봉을 2시간 검토한 후에도 모른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상식적으로는 서울의 최고봉을 북한산으로 인식하는 것이 맞다. 서울 대표 명산이고, 조선시대부터 수도 한양을 지키는 진산으로 인정받았다. 이런 인식이 지금껏 이어져 백운대가 서울 땅이라는 오해가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왜 백운대는 고양 땅이 된 걸까?

사람들 마음속에 서울 최고봉으로 자리 잡은 북한산 백운대.

혹자들은 1910년대 일제가 고의로 수도 한양을 격하하기 위해 백운대 행정구역을 경기도로 예속시켰다고 한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백운대를 서울로 편입해 지금이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도 서울(한성부)의 경계는 도성 밖 10리까지였다. 조선시대 지도와 문헌을 보면 백운대는 경기도 양주목(지금의 고양시와 양주시 일대)에 속했다.

일제가 20세기 초에 대대적인 행정구역 개편을 한 것은 사실이며, 이 과정에서 서울 외곽 지역이 경기도로 편입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서울의 기운을 꺾기 위해 일부러 백운대를 떼어낸 것은 아니며, 백운대는 그 이전부터 경기도 땅이었다. 일본은 예부터 풍수지리사상이 없어 우리 민족의 기운을 말살하기 위한 노력보다는, 정확한 측량과 효율적인 행정구역 개편과 운영에 초점을 두었다. 일제를 두둔하는 것이 아니라 백운대가 경기도에 속한 것이 민족 말살 정책의 결과물은 아니라는 것이다.

행정구역을 바꾸는 것도 쉽지 않다. 까다로운 법적 절차가 많고, 고양시에서 반대한다. 고양시는 2010년대부터 '북한산 제자리 찾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캠페인 슬로건이 "독도는 우리 땅, 북한산은 고양 땅"으로, 백운대의 행정 주소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산1-1번지'임을 알리는 홍보물을 배포했다. 백운대 고양 땅 알리기 등산대회를 여러 번 열었으며 SNS와 소식지 등을 통해 '백운대는 고양의 주산主山'임을 지속적으로 알리고 있다.

이에 반해 서울시는 백운대가 고양 땅이라는 것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백운대를 서울로 편입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사람들의 오해에는 이유가 있다. 예부터 북한산은 우리나라의 수도를 상징하는 큰 산이었다. 지금도 백운대를 오르는 등산객의 8할 이상은 우이동을 비롯한 서울 방면에서 온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도 서울 방문 시 필수 코스로 백운대 산행을 포함시킨 지 오래다. 서울과 백운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 행정구역은 경기도지만, 사람들 마음의 변치 않는 서울 최고봉은 북한산 백운대다.

월간산 4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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