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티]길거리에서 글로벌로…미샤의 'BB크림 신화'
해외 매출 비중 68%…크리에이터 마케팅 적중
글로벌 색조 브랜드와 경쟁…유럽·남미로 확장

K뷰티는 이제 단순한 유행을 넘어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차별화된 기술력, 감각적인 디자인, 그리고 브랜드 고유의 스토리텔링으로 무장한 K뷰티 브랜드들이 있다. 이에 K뷰티 흥행 주역들을 직접 만나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그들의 열정과 노력, 시장을 압도할 수 있는 비결을 생생히 들어본다. [편집자]
K뷰티 하면 보통 '스킨케어'를 떠올리기 쉽다. 실제로 해외 무대에서 주목받는 K뷰티 브랜드 대부분은 스킨케어를 주력으로 한다. 하지만 'BB크림'으로 글로벌 시장을 압도한 브랜드가 있다. 2000년 국내 최초의 로드숍으로 출발한 '미샤'다.
미샤는 한때 전국 주요 상권을 장악했던 로드숍의 대명사였다. 하지만 지금은 전체 매출의 3분의 2 이상을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글로벌 브랜드로 변신했다. 현재 미샤의 경쟁자는 K뷰티 브랜드가 아니라 '나스(NARS)', '타르트(Tarte)', '메이블린 뉴욕(Maybelline New York)'과 같은 글로벌 메이크업 브랜드다.
미샤는 스킨케어 기술을 담아낸 베이스 메이크업 제품을 앞세워 이들 브랜드와 경쟁하고 있다. 올해 브랜드 슬로건도 '스킨케어와 메이크업이 만나는 곳(where skincare meets makeup)'으로 재정립했다. 미샤를 운영하는 에이블씨앤씨의 김연선 상품개발팀장과 박현경 마케팅팀장을 만나 BB크림으로 해외 시장을 사로잡은 비결을 들어봤다.
유학 가서 성공한 그 친구
미샤는 2000년대 초·중반을 휩쓴 1세대 로드숍 브랜드였다. 3300원의 합리적인 가격, 꽃 모양 팩트와 같은 감성적인 패키지는 1020 여성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여기에 백화점 화장품 못지 않은 품질을 갖췄다는 입소문까지 타며 전국적인 인기를 끌었다. 김연선 팀장과 박현경 팀장 역시 미샤의 열렬한 팬이었다.
김 팀장은 "그때 미샤는 온라인에서 '이런 트렌드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바로바로 제품으로 만들어냈다"며 "10대 시절 내가 갖고 싶었던 화장품을 만들던 트렌디한 브랜드"라고 돌아봤다.
미샤의 인기는 국내에서만 그친 게 아니었다. 일본과 중국 시장에 진출하면서 2010년대 K뷰티 붐을 주도했다. 당시 K뷰티 브랜드 대부분이 아시아 시장에 머물렀던 것과 달리 유럽 시장까지 뛰어들었다. 미샤의 팬덤도 25년째 이어질 정도다.

박 팀장은 "최근 해외 크리에이터들을 대상으로 웨비나를 했는데 한 영국인 크리에이터가 '10년 동안 미샤 BB크림 제품을 쓰고 있는데 미샤가 영국에 론칭을 하게 돼 너무 반갑다'는 말을 했다"면서 "세계 곳곳에 미샤를 사랑해 주고 있는 분들이 있다는 걸 체감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화장품 시장의 트렌드와 유통 구조가 변하면서 미샤는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갔다. 해외에서도 중국 한한령과 코로나19 영향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미샤가 전략을 완전히 바꾸기 시작한 건 2021년이었다. 국내에서는 오프라인 로드숍 대신 온라인 중심 브랜드로 전환했고 해외에서는 중국이 아닌 미국 시장을 타깃으로 방향을 틀었다.
미샤의 이런 전략은 완전히 적중했다. 미국에서 미샤의 BB크림이 폭발적인 반응을 얻기 시작했다. 글로벌 셀럽과 크리에이터들이 온라인상에서 이 제품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하면서 세계적으로 입소문을 탔다. 이 제품은 현재 아마존 BB크림 카테고리에서 부동의 1위를 유지 중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과 유럽에서까지 미샤의 이름이 알려지면서 미샤는 완전히 글로벌 뷰티 브랜드로 탈바꿈하게 됐다. 지난해 미샤의 매출액 중 68%가 해외에서 나왔다. 박 팀장은 "최근 X(옛 트위터)에서 '추억의 브랜드'에 대한 밈이 돌았는데 미샤에 대해서는 '유학 간 친구'라고 하더라"며 "그 뒤에 '그런데 성공했더라'는 평가가 따라붙었다"고 웃었다.
20년 스테디셀러
미샤의 이런 글로벌 성공을 이끈 제품은 미샤의 대표 제품인 M 퍼펙트 커버 BB크림이다. 2007년 말 출시된 이 제품은 '빨간비비'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20년 가까이 사랑받고 있는 스테디셀러다. 심지어 짝퉁 제품이 시장에 나돌 정도로 인기가 높다.
빨간비비의 가장 큰 특징은 스킨케어와 메이크업 기능을 하나로 합친 제품이라는 점이다. 히알루론산, 세라마이드 등 스킨케어 성분을 넣어 피부 부담을 줄이면서도 자연스럽게 피부를 표현하도록 만든 것이 주효했다. 김 팀장은 "BB크림은 자외선 차단, 피부 톤 보정, 커버, 보습 등 여러 기능을 하나로 담아낸 제품"이라면서 "출시 당시만 해도 이러한 개념 자체가 매우 혁신적이었다"고 설명했다.
빨간비비는 과거 '섞발템(섞어서 바르는 제품)'으로도 유명했다. 김 팀장은 "빨간비비는 유분과 보습 성분을 많이 품고 있기 때문에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다른 제품과 섞어서 사용할 정도였다"며 "일반 소비자들도 커버력은 좋지만 보습력이 부족한 백화점 화장품과 섞어쓰며 인기가 높았다"고 밝혔다.

이 빨간비비가 미국 시장 내 메이크업 트렌드가 변화하면서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박 팀장은 "최근 미국에서는 '글로우 스킨', '글래스 스킨'처럼 과한 커버력 없이 가볍고 자연스러운 피부 표현을 선호하고 있다"면서 "미샤의 빨간비비는 원래 이런 콘셉트의 제품이었는데 최근 트렌드에 맞아 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각광을 받게 됐다"고 분석했다.
미샤는 이 제품을 한 단계 더 진화시켰다. 지난해 선보인 'M 퍼펙트 커버 세럼 BB크림(보라비비)'이다. 보라비비는 빨간비비에 미샤의 또 다른 베스트셀러인 '타임 레볼루션 나이트리페어 앰플5X', 일명 '보랏빛앰플'의 성분을 담은 제품이다. 보랏빛앰플은 미샤가 20여 년간 연구해 온 발효 기술을 담은 스킨케어 제품이다. 김 팀장은 "베이스 메이크업에서도 스킨케어 효과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도록 설계한 제품"이라고 소개했다.
김 팀장이 이 제품을 개발하는 데 들인 시간은 1년이다. 가장 큰 어려움은 스킨케어처럼 부드러운 베이스 메이크업 텍스처를 만드는 일이었다. 김 팀장은 "BB크림이나 파운데이션은 보통 파우더가 들어가 뻑뻑한 느낌이 있는데 이 제품은 크림 같은 제형으로 만들고 싶었다"면서 "그렇다고 앰플을 넣으면 안정도가 깨져서 물이 되는 일이 반복돼 제품을 개발하는 일이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더 진화한 동생
이렇게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보라비비의 제품력에 대해 자연스럽게 입소문이 퍼지면서 폭발적인 반응이 일기 시작했다. 특히 세계적인 아티스트 '카디비(Cardi B)'가 보라비비를 자신의 SNS에 직접 소개하며 화제가 됐다. 이를 본 다른 크리에이터들도 자발적으로 보라비비에 대한 리뷰 영상과 메이크업 영상을 올리면서 인지도가 나날이 높아졌다.
보라비비가 처음부터 해외 시장을 겨냥해 색상을 10가지로 확장한 것도 인기 요인 중 하나다. 박 팀장은 "미국은 인종이 워낙 다양하다 보니 BB크림을 다양한 컬러 스펙트럼으로 확장했다"며 "미샤 BB크림이 원래 섞발템으로 유명한 것처럼 10가지 컬러를 한두 개만 사서 섞어 쓰면 자기 피부에 맞는 컬러를 만들어 쓰는 소비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보라비비는 원래 미국 시장을 타깃으로 출시됐지만 워낙 인기가 높다보니 국내로 '역수입' 되기도 했다. 김 팀장은 "이 제품은 아마존에서 먼저 인기가 높아진 제품"이라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을 받자 국내 유통업체들에서도 입점 제안이 들어와 국내의 다양한 유통 플랫폼에서 선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미샤 BB크림의 성공을 이끈 건 마케팅의 역할도 컸다. 미샤가 특히 집중한 것은 '소규모 크리에이터 전략'이었다. 미샤는 소수의 대형 인플루언서에 투자를 집중하는 대신 중소형 크리에이터들이 자발적으로 제품을 소개해 더 많은 입소문이 이뤄지도록 하고 있다.
박 팀장은 "대형 인플루언서 한 명보다는 소규모, 중간 규모 크리에이터들이 제품력을 증명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며 "온라인 상에서 다양한 사용 경험이 공유되면서 소비자 신뢰를 높이는 효과를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미샤의 콘텐츠들은 광고비를 사용하지 않고도 조회수 1000만 회를 넘기는 등 자연스럽게 화제가 되고 있다. 글로벌 크리에이터 마케팅 분석 기업 트래커(Traackr)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샤는 지난해 미국 내 크리에이터 마케팅 성과 성장률 기준 메이크업 카테고리 1위를 기록했다.
그는 "틱톡과 유튜브에서는 제품 기능을 설명하는 콘텐츠보다 실제 사용 경험을 보여주는 콘텐츠가 훨씬 높은 반응을 얻는다"면서 "한 번의 사용으로 피부 톤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여주는 사용 전후 영상이나 일상 메이크업 과정을 담은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베이스 명가로
미샤는 북미 시장에서 검증된 성장 모델을 바탕으로 올해 유럽, 남미로 해외 사업을 더 확장할 계획이다. 유럽에서는 영국을 거점으로 서유럽 공략을 본격화 한다. 박 팀장은 "영국은 글로벌 뷰티 트렌드와 소비자 반응 측면에서 미국 시장과 유사한 특성을 보인다"며 "이미 검증된 미국 마케팅 전략과 콘텐츠를 비교적 효율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시장"이라고 설명했다.
남미 시장에서는 브라질을 중심으로 사업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최근 미샤가 브라질의 대표 축제인 '살바도르 카니발' 공식 스폰서로 참여한 것도 이를 위해서다.
이와 함께 미샤는 올해 브랜드 슬로건도 '스킨케어와 메이크업이 만나는 곳(where skincare meets makeup)'으로 변경했다. 스킨케어 기술력과 메이크업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뷰티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슬로건이다. 박 팀장은 "BB크림은 메이크업 제품이지만 스킨케어 효능을 결합한 대표적인 제품"이라면서 "이게 미샤의 핵심 정체성인 만큼 '베이스 메이크업 명가'로 계속 성장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샤는 베이스 메이크업 제품 라인도 계속 확장하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 BB크림과 함께 자연스럽게 인기를 끌고 있는 프렙(Prep) 라인이 대표적이다. '비비부머'와 '스킨밤'처럼 BB크림 전에 사용하는 이 프렙 제품들도 인기를 끌고 있다.
그렇다면 5년 후 30주년을 맞은 미샤의 모습은 어떨까. 박 팀장은 "5년이 지나면 미샤라는 브랜드가 글로벌 시장에서 제대로 자리매김하고 있을 것"이라며 "베이스 라인과 프렙 라인, 스킨케어 라인을 계속 확장해 나가면서 '스킨케어와 메이크업이 만나는 곳'이라는 슬로건에 맞게 스킨케어도 잘하고 베이스 메이크업도 잘하는 브랜드로 각인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팀장은 "미샤의 BB크림이 스킨케어와 메이크업의 경계를 허물며 새로운 베이스 카테고리를 만들었던 것처럼 미샤도 화장품 시장에 새로운 카테고리와 기준을 제시하는 브랜드로 계속 성장해 나갈 것"이라면서 "지난 25년 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소비자들이 '다음에는 어떤 제품이 나올까'를 기대하게 만드는 브랜드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혜인 (hij@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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