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밭춘추] 이미 충분한 조금

2026. 4. 3.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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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늘 우리에게 많은 것을 요구한다.

엘리사벳 노엘의 시〈조금〉은 작은 것들이 품은 위엄을 노래한다.

작은 것들의 힘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시인이 노래한 조금의 가치를 따라가다 보면, 내 안의 남루함 역시 겸손한 풍요라는 다른 이름을 가졌음을 발견한다.

설탕 조금과 비누 한 조각, 그리고 몽당연필 한 자루 같은 것들이 모여 일상은 더욱 부드럽고 향기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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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혜 시인

세상은 늘 우리에게 많은 것을 요구한다. 더 높은 성취와 더 넓은 집, 더 많은 '좋아요'가 생(生)의 전부인 양 우리를 몰아세운다. 그러나 숨이 찰 때 문득 발밑을 내려다보면, 정작 나를 버티게 하는 것은 대개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임을 깨닫는다. 엘리사벳 노엘의 시〈조금〉은 작은 것들이 품은 위엄을 노래한다. 결핍마저 달콤하게 바꾸는 시인의 시선이 닿는 곳은, 한 숟갈의 설탕이 밋밋한 음식에 생기를 불어넣고 비누 한 조각이 하루의 피로를 씻어내며 한 줌의 볕이 새싹을 틔우는 일상의 기적들이다.

작은 것들의 힘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시인이 노래한 조금의 가치를 따라가다 보면, 내 안의 남루함 역시 겸손한 풍요라는 다른 이름을 가졌음을 발견한다. 장엄한 깨달음이나 선언적인 선행이 아니더라도 괜찮다. 절망에 빠진 누군가에게 건네는 따뜻한 눈빛 한 자락, 나 자신을 향한 조금의 너그러움이 메마른 일상을 적신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양을 채우는 것을 넘어, 존재의 맛을 바꾸는 질적인 전환이다. 체온처럼 낮고 은근한 다정함이 삶 깊숙이 스며들어 전체의 온도를 바꾼다.

특히 시의 중반부에서 만나는 몽당연필의 이미지는 오래도록 마음을 붙잡는다. 손가락 사이에 간신히 쥘 만큼 짧아진 연필로 책 한 권을 다 쓴다는 대목은, 마치 한계를 끌어안고 사는 인생을 비추는 듯하다. 때로는 자신의 재능이나 남은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인다. 하지만 본질은 연필의 길이에 있지 않다. 연필이 어떤 마음을 기록했는가가 삶의 진짜 두께를 결정한다. 짧아진 연필은 소모의 흔적이 아니라, 그만큼 세상을 향해 뜨겁게 써 내려간 헌신의 자국이다.

조금이면 충분하다. 한 줌의 햇볕으로 새싹이 자라듯, 삶을 키우는 것은 눈부신 기적이 아니라 오늘 하루의 소박한 은총이다. 설탕 조금과 비누 한 조각, 그리고 몽당연필 한 자루 같은 것들이 모여 일상은 더욱 부드럽고 향기로워진다. 큰 것을 좇느라 지친 이들에게 이 시는 다정하게 말을 건넨다. 지금 손안에 있는 조금이 이미 충분하다고. 작은 것들은 언젠가 찾아올 무언가가 아니라, 처음부터 곁에 있었던 것들이다. 하인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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