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는 형이 치운다…한화솔루션 유증에 담긴 김동관의 ‘결자해지’
[비즈니스 포커스]

지난 3월 26일 오후 장이 열린 채 공시가 떴다. 한화솔루션 주가는 즉각 18% 빠졌다. 2조4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이 가운데 60%에 해당하는 약 1조5000억원은 회사채 상환 등 재무구조 개선에, 나머지 약 9000억원은 신기술 개발 등 미래 투자에 투입할 계획이라고 했다. 상장사 단일 유상증자로는 지난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이어 역대 두 번째다.
규모보다 타이밍이 거슬렸다. 발표 이틀 전인 3월 24일 정기주총 때 회사는 침묵했다. 소집공고에 유증 관련 내용은 한 줄도 없었다. ‘발행예정주식총수 3억→5억 주 변경’만 의안으로 올렸다.
주관사단(KB·NH투자·한국투자·대신증권)의 실사가 끝난 날은 3월 16일 주총 8일 전이었다. 주총 전 시나리오는 이미 짜여 있었고 주주들에게 정보를 흘리지 않은 채 공시를 던졌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12.6조 순차입금, 30배 넘어선 레버리지의 경고
한화솔루션의 재무 상태는 이미 경고음을 울리고 있었다. 2025년 말 연결 기준 순차입금은 12조6000억원. 2023년 7조4735억원에서 2년 만에 70% 가까이 불었다. 같은 기간 순차입금/EBITDA(이자와 감가상각 전 이익으로 빚을 갚는 데 걸리는 기간) 지표는 5.9배에서 30.1배까지 치솟으며 재무 부담이 급격히 확대됐다.
한국기업평가 기준 신용등급 하향 트리거인 3.5배를 이미 훌쩍 넘어선 수치다. 부채비율은 196%, 유동비율은 99.2%로 유동자산이 유동부채를 겨우 따라가는 수준이다. 1년 내 갚아야 할 부채만 12조1000억원에 달한다. 전체 부채의 57.5% 비중이다.

한화솔루션은 콘퍼런스콜에서 “차환 부담 확대 및 조달금리 상승에 따른 기업가치 훼손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 신용등급 개선이 필요하다”며 “중장기 대응 방안 가운데 유상증자가 가장 최적이라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신용등급 전망은 현재 AA- ‘부정적’. 등급이 A+로 한 단계 내려가면 조달금리가 폭증하고 기존 차환 조건도 달라진다. 채권단이 움직이기 전 자본 확보가 시급했다는 게 자산운용사들의 분석이다. 2024년과 2025년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한 점도 뼈아프다.
여수산단 유휴부지, 관계사 지분 매각 등으로 1조6000억원을 현금화하고 영구채로 7000억원을 끌어왔음에도 부채비율은 사실상 위험 구간에 다다랐다. 올해 추가적인 자구안 여력이 3000억원 수준으로 제한적이라는 점도 이번 유증의 도화선이 됐다.
한화에너지 3.5조 이익잉여금, 김동관에 500억 배당
그룹 상단에서는 다른 흐름이 포착된다. (주)한화의 최대주주인 한화에너지의 최근 사업보고서상 미처분이익잉여금은 약 3조5000억원이다. 전기 대비 7000억원 이상 급증한 수치다.
한화에너지는 같은 기간 약 1000억원의 현금배당을 집행했다. 이 법인 지분 50%를 보유한 김동관 부회장의 수령액은 약 500억원으로 추산된다. 한화솔루션의 유동성이 빠듯한 시점과 대비되는 흐름이다.
업계 관계자는 “그룹 내 자금이 필요한 계열사로 이동하기보다 지배구조 상단으로 쌓이는 구조”라고 말했다. 물론 각 법인은 독립된 법인격이며 배당은 적법한 절차에 따른 결의다. 소액주주 입장에서는 증자 부담과 총수 일가 현금 확보가 동시에 발생하는 셈이다.

현금은 위로, 부채는 잔류…7월 분할의 퍼즐
한화솔루션의 최대주주인 (주)한화(36.3%)에서는 올해 지배구조 이벤트도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 (주)한화의 인적 분할은 오는 7월 1일이다. 분할 계획서에 따르면 부채의 대부분은 존속법인에 남는다. 비중은 99.7% 수준이다.
반면 신설법인 ‘한화머시너리앤서비스홀딩스’(가칭)에 이전되는 부채는 249억원, 전체의 0.3%에 그친다. 자산은 분할되지만 부채는 사실상 한쪽에 집중되는 설계다. 신설법인에는 시큐리티·반도체장비·유통 등이 배정된다.
이 법인 이사로 이름을 올린 김승연 회장의 삼남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부사장의 영역은 사실상 부채 없는 ‘클린 컴퍼니’로 출발한다. 전략 부문 대표를 맡은 김동관 부회장이 지휘하는 한화솔루션이 12조원대 유동부채 리스크를 유증으로 방어하며 자본 확충을 마쳐야 분할이 완성되는 시나리오다.
재계 관계자는 “형이 부채를 치워줘야 동생의 새 출발이 가능한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번 유상증자는 단순한 자금조달을 넘어 그룹 승계 구도를 공고히 하기 위한 재무적 강수라는 평가가 많다.
한화솔루션은 지난 3년간 태양광 사업에 4조원 이상을 쏟아부었으나 판가 하락이 발목을 잡았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첨단제조세액공제(AMPC) 보조금 유입보다 이자 비용 지출이 더 빠른 상황에서 이번 유증은 등급 강등을 막기 위한 선제 조치인 셈이다.
분할 신설법인의 자본 구조가 이미 확정된 상태에서 모법인의 재무가 흔들릴 경우 분할 비율 재산정 논란으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8700억 청약 압박…고려아연 지분 매각설
(주)한화의 가용 현금은 별도 재무제표상 1303억원이다. 한화솔루션 유상증자 배정 물량을 전량 소화하려면 약 8700억원의 실탄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된다. 7400억원의 자본 공백이 발생한다. AA- 등급 회사채 금리가 연 4.1%대를 상회하는 상황에서 전액 차입 시 매년 300억원 이상의 이자 비용이 쌓인다.
시장에서는 고려아연 지분 활용 가능성에 시선이 쏠린다. 현재 (주)한화가 보유한 지분은 1.28% 수준이다. 4월 1일 종가 기준 약 4000억원 규모다. 2022년 취득 단가 대비 3배 이상의 차익실현이 가능하다.
업계에선 전량 매각이 아니라 일부 유동화만으로도 증자 부담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화그룹 합산 지분은 7.75%다. 한화 측은 공식적으로 매각을 부인하며 ‘전략적 동맹’을 강조하고 있으나 시장에선 (주)한화 보유분(1.28%)만 처분하는 ‘부분 매각’이 유력한 대안으로 거론된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의 경영권 방어력을 유지하면서도 유증 대금의 절반가량을 이자 없이 확보하는 실리적 선택지라는 분석이다.
보유 중인 고려아연 지분처럼 즉각 현금화가 가능한 자산 유동화 카드를 우선 검토하지 않은 채 주가 희석이 불가피한 증자를 강행한 것은 대주주 지배력 유지를 위해 주주 권익을 뒷전으로 밀어냈다는 비판이 나오는 지점이다.
명확한 자산 유동화 대안을 외면하고 소액주주 희생을 강요했다는 점에서 이사회의 주주 충실의무 위반 논란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신용등급 사수” 한화솔루션의 속사정
물론 유상증자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문제는 한국 자본시장에서 유증 발표가 거의 항상 주가 급락으로 이어지는 패턴이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한화솔루션 장부를 보면 3년간 매해 3조원 안팎의 순차입금이 쌓였다. 빚을 못 줄이면서 실적 없는 사업에 투자를 계속하니 재무구조가 꼬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회사의 논리도 산업적으로는 일리가 있다. 미국 내 수직계열화 생산체계가 올해 완성되면 IRA AMPC가 본격 유입된다. 2026년 예상 수령액만 약 9500억원이다.
신용등급이 추락해 고금리 이자 폭탄을 맞느니 주주들로부터 자본을 채워 부채비율을 낮추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값싼’ 조달이라는 계산이다. 한국기업평가와 NICE신용평가 등은 유증 발표 후 “재무 부담 완화 효과가 기대된다”는 리포트를 내놓으며 차입 부담 완화에 주목했다.

금감원 심사와 엇갈린 증권가…결국 실적이 답
금융감독원은 이번 유증을 중점 심사 대상으로 선정했다. 1조원 초과 규모와 발표 당일 주가 폭락이 근거다.
소액주주 플랫폼 ‘액트’에 결집한 1800여 명은 발행가액 산정 적절성 검토 요구 탄원서를 금감원에 제출했다. 정정 요구가 이어지면 7월 1일 분할 기일과 일정이 충돌할 리스크가 상존한다.
증권가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DS투자증권 안주원 애널리스트는 “기대효과 없는 유상증자”라며 투자의견을 ‘매도’로 하향했다. 1조5000억원 상환으로는 13조원의 차입금을 의미 있게 축소할 수 없다는 진단이다.
미래에셋증권 이진호 애널리스트도 지분가치 희석 효과와 신규 투자의 불확실성을 들어 보수적 접근을 권고했다.
유상증자는 이미 실행 단계에 들어갔다. 핵심 변수는 실적이다. 미국 공장 가동과 IRA 효과가 실제 이익으로 연결되는지가 관건이다. 메리츠증권 노우호 애널리스트는 “미국 카터스빌 공장 가동과 탈중국 태양광 기업 프리미엄에 부합하는 압도적 영업실적 창출 능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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