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의 감각으로, 만물의 호소를 듣다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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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함께 살게 된 뒤로 깨달은 것 가운데 하나는 종(種)이 다르고 언어가 달라도 충분히 소통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사물과 인간의 수평적 관계를 탐구하는 '신유물론'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건 물질이 가진 고유의 에너지에 어린이가 성인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목소리가 없다고 생각했던 만물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는 일, 다시 말해 어린이의 감각을 되찾는 일이야말로 이 지구에서 우리가 오래도록 공존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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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함께 살게 된 뒤로 깨달은 것 가운데 하나는 종(種)이 다르고 언어가 달라도 충분히 소통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배고플 때, 심심할 때, 집사가 잠을 안 자고 일할 때… 고양이는 그때마다 다른 소리로 말을 걸어서, 이제는 자동으로 뜻이 번역되어 들린다. 그전까지 동물과 같이 살아본 적이 없던 나는 어린이책에서 동물들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단순히 의인화나 판타지라고 생각했는데, 상대방을 존중하고 대화 상대로 받아들인다면 정말로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는 걸 실감하고 있다.
어린이책에서 비인간 존재들은 늘 인간에게 말을 걸어 온다. 동물이 길을 안내하고 바람이 경고를 보내고 나무가 지혜를 전한다. 우리는 이를 어린이 고유의 상상력이나 때 묻지 않은 동심이라고 여기곤 했다. 하지만 사물과 인간의 수평적 관계를 탐구하는 ‘신유물론’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건 물질이 가진 고유의 에너지에 어린이가 성인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식물-동물-인간이라는 피라미드식 위계를 받아들이기 전의 어린이는 자연과 문화(사물)를 엄격히 분리하지 않으며, 서로가 수평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어린이는 지구라는 거대한 물질적 그물망 속에서 모든 생명체가 하나로 얽혀 있음을 증명하는 순수한 기록자다.
어른이 되고 나면 이러한 감각을 영영 잃고 마는 걸까? 최근 내가 번역한 그림책 ‘나는 커다란 나무였으나’(지노 스워더 지음, 씨드북)에는 아이디어가 고갈되어 괴로워하는 작가에게 누군가 말을 거는데, 놀랍게도 그건 작가의 연필이었다. 연필은 자신이 한때 거대한 숲의 일부였던 기억을 들려주기 시작한다.
작가는 처음엔 놀라서 의자에서 굴러떨어질 뻔하지만, 이내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작업으로 이어 나간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건 작가가 이미 연필을 자신의 도구이자 동료로서 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업실 벽에는 피에로 델 폴라이우올로의 ‘아폴로와 다프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시기하는 키르케’, 보티첼리의 ‘프리마베라’(봄), 반고흐의 ‘사이프러스’ 같은 작품들 일부가 슬쩍 보이는데, 이 그림들은 작가가 자연의 생동감과 회복력을 그려내고자 했던 인물임을 암시한다.
숲속 나무는 ‘목재’로 벌목되어 의자, 성냥, 시계, 그리고 연필이 되어 인간의 일상 곳곳에 스며들었다. 연필은 이를 파괴의 역사로만 말하지 않고, 자연이 모습을 바꿔 인간의 동반자로 살고 있다는 순환으로 이야기한다.
‘나는 커다란 나무였으나’는 이제 자연을 다른 시선으로 볼 것을 요청한다. 우리 곁을 지키는 물건들이 자연의 일부로서 저마다의 생명력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사물과의 관계는 ‘이용’이나 ‘소유’에서 ‘공존’으로 변할 수 있다. 이 책이 새로운 감각을 일깨워준 느낌이 들었다면, 그동안 자연을 자원이나 풍경으로 여기면서 잊어버렸던 연결감을 되찾을 수 있다는 신호일 것이다. 목소리가 없다고 생각했던 만물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는 일, 다시 말해 어린이의 감각을 되찾는 일이야말로 이 지구에서 우리가 오래도록 공존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어린이책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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