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광장의 기록’…이건 책이 아니다, 주춧돌이다 [.txt]

이유진 기자 2026. 4. 3.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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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 선포부터 윤석열 파면까지
시민행동과 대응과정 담은 공식백서
내란 극복 시민활약 기록한 ‘대서사’
‘빛의 광장의 기록’을 만든 김주호 참여연대 민생경제팀장(왼쪽부터), 박한희 한국성소수자인권단체연합 무지개행동 공동대표, 주제준 한국진보연대 정책위원장이 3월31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들이 들고 있는 그림들은 기록에 참여한 시민들이 선물로 받은 배지의 모양이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윤석열을 대통령직에서 파면한 지 꼭 1년이 되는 날, 4월4일에 맞춰 책 한권이 나온다. 2024년 12월3일 비상계엄 선포부터 2025년 4월4일 파면까지 마음을 졸이던 123일간의 기록을 담은 책이다. ‘빛의 광장의 기록’(이하 백서)은 시민사회 연대체인 ‘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 기록기념위원회’(공동대표 김민문정, 박석운, 양경수, 이용길, 진영종)가 만든 공식 백서다.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이 백서 제작을 주도한 김주호 참여연대 민생경제팀장, 박한희 한국성소수자인권단체연합 무지개행동 공동대표, 주제준 한국진보연대 정책위원장을 만났다. 세 사람은 123일 동안 거리에서 동고동락했으며 백서 위원회에 소속돼 집필도 했다. 450쪽짜리 만만치 않은 분량의 책은 초판만 1만2000부 인쇄됐다. 오는 4일 서울 종로 안국역 6번 출구에서 열리는 ‘4·4 내란청산 사회대개혁 주권자 승리의 날 시민행동’에서 시민들에게 선착순으로 무료 배포되고, 일부는 책방에 깔린다. 벌써 외국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보인다. 이번 백서의 영문판은 제작이 되는 대로 미국과 유럽 대학의 한국학 연구소와 공공도서관 등으로 발송할 예정이다.

백서 ‘빛의 광장의 기록’ 제작을 주도한 주제준 한국진보연대 정책위원장(왼쪽부터), 박한희 한국성소수자인권단체연합 무지개행동 공동대표, 김주호 참여연대 민생경제팀장이 3월31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기 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다행인지 불행인지 대한민국 국민이 주권자로서 대통령을 탄핵한 사례는 처음이 아니었고, 이번 백서 작업도 두번째여서 그나마 수월한 점이 있었다. 주제준 위원장은 “박근혜 퇴진 때 만든 백서의 경험이 이번에도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주 위원장은 책의 1부 ‘빛의 혁명 서사’를 맡았다. 123일 동안 진행한 회의 자료, 논평만 해도 400쪽이 넘었다. 윤석열 정부의 등장부터 반민주 행보의 과정, 내란 시작과 탄핵소추, 시민의 반격, 구속취소, 파면 등으로 이어진 긴박했던 한달을 써 내려갔다. “백서를 집필하면서 추웠지만 추운 줄도 몰랐던 그날들이 떠올랐다”고 했다. 특히 트랙터 시위를 할 때 농민들은 연행되고 긴 싸움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했는데, 남태령에서 새벽 첫 차가 다닐 때부터 멀리서 많은 사람들이 밀려 들어와 농민들을 보호하는 장면을 잊을 수 없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2025년 3월22일 서울 종로구 동십자각 앞에서 열린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16차 범시민대행진에서 다양한 깃발들이 입장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삭발, 단식, 밤샘을 하면서 엄청나게 고통스러웠던 순간마다 시민들이 나타난 거죠. 대서사시의 서사예요. 백서를 보시면 ‘내가 그때 그 역할을 했구나’라고 맞춰보실 수 있을 겁니다.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박근혜 퇴진) 촛불 시위 땐 6개월간 연인원 1700만명이 참여했죠. 윤석열 파면을 위해 함께한 전국 시민사회단체 수는 1739개, 거리와 광장에서 함께한 연인원은 1000만명이었습니다. 박근혜 퇴진 집회 때보다는 인원도 적고, 조마조마한 순간도 많았잖아요. 그때마다 위기를 돌파한 게 시민들이었습니다.” (주제준)

김주호 팀장은 현장에서 집회 기획을 했고,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시민 반응을 보거나 구호를 점검하면서 두루두루 집회의 다양한 모습을 살폈다. 백서위원회에서도 팀장을 맡아 밤을 새우며 3차례나 교정지를 검토했고 펑크 난 원고를 메꾸는 등 궂은일을 도맡았다. 역사학과 출신의 그는 “백서 또한 역사적 기록을 남기는 일이기에 어깨가 무겁고, 무서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만드는 게 집회 현장에서 일하는 것보다 더 힘들다고 느낄 정도였다”고 말했다.

“집회 때도 그랬지만 백서에도 시민 발언을 많이 담으려고 했습니다. 특히 백서에는 1000개가 넘는 시민 발언을 분석했습니다. 저희도 녹취를 풀었지만 (집회 현장 발언) 유튜브를 보고 녹취를 풀어놓은 분이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어요. 백서 제작 역시 시민들의 도움이 컸죠.” (김주호)

박한희 대표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으로 광장에서 노란 조끼를 입고 ‘집회시위인권침해감시변호단’ 활동을 했으며 이번 백서에서도 ‘깃발들’과 시민자원봉사단(자봉단) 인터뷰를 진행했다. 시민들은 변화하고 진화했다. 백서 인터뷰에 참여한 ‘시민자봉단’은 지난해 4월4일 이후 자신의 일상이 변했다고 털어놓았다. 인터뷰이들은 “내란 청산이 지지부진”하고 “차별금지법도 제정해야” 하지만 개인은 고립에서 벗어나 일상에서 “연대하러 다니고”, 특히 “남태령 이후에는 쌀 뒤에, 상품 뒤에 사람이 보이기 시작한다”고 얘기했다.

빛의 광장의 기록 l 비상행동 기록기념위원회 백서위원회 지음, 위즈덤하우스, 2만원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집회 현장이나, 기후정의행진, 3·8 여성대회 때도 깃발들, 말벌 동지들을 다시 만났습니다. 이란 침략전쟁을 규탄하는 집회나 이번 4월4일 시민행동에도 다시 나오시겠죠. 성평등, 민주주의 실현의 길이 끝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백서가 단순히 과거의 기록에 그치지 않고 다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사회대개혁,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주춧돌로 쓰였으면 좋겠습니다.” (박한희)

이번 광장은 평등 교육의 장이기도 했다. 2016~2017년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 당시 “암탉” “강남 아줌마” 같은 여성과 소수자 혐오 발언과 문구 등에 관한 논란이 있었지만, 이번 탄핵 광장에는 ‘평등 집회를 위한 약속문’을 만들고 낭독하면서 서로 지키려 노력했다. ‘조끼’를 입은 ‘노조원’이나 ‘깃발’, ‘운동권’에 대한 낙인도 점차 사라졌다. 박근혜 탄핵 광장에서는 조끼를 입은 사람이나 깃발에 대한 비난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조끼를 입고 현장을 누비던 사람들에게 먹을 것과 응원이 쏟아졌다. 인권침해감시단이 ‘노란 조끼’를 입고 식사를 하고 있으면 모르는 시민이 수고한다고 인사를 건네며 계산을 해주고 가곤 했다. ‘비상행동’의 노력이 있었지만, 경찰이 허락하지 않은 길까지 열어젖힌 사람들은 다름 아닌 시민들이었다. 김주호 팀장은 “반드시 다음주에는 파면이 될 거라고 했는데 예측이 빗나가는 등 희망고문을 하고, 양치기 소년이 되어 죄송했지만 틀린 예측을 해도 시민들이 기꺼이 따라주고 참여해 주셔서 송구한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사회대개혁의 길이 멀긴 하지만 이 한권의 백서가 시민 연대의 도구가 될 것 같아요. 우린 서로 연결돼 있고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하나의 깃발, 응원봉 같은 것이랄까요. 또 4월4일 온라인 기념관을 오픈하게 돼요. 백서에 미처 다 담지 못한 부분들은 온라인에서 보완해 나갈 것입니다. 앞으로도 진화하는 백서를 기대해주세요.” (김주호)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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