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에 이식된 ‘검은 다리’…법 뒤에 숨은 인종과 권력 [.txt]
신체를 둘러싼 권리와 소유를 규정하는 법
인종·젠더·계급에 따라 달라지는 양면성

2004년 미국 시민 존 우드는 경비행기 추락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었다. 뒷날 온전한 몸으로 묻히고 싶었던 그는 잘린 다리를 방부 처리해 창고에 보관했다. 3년 뒤, 우드의 임대료가 밀린 탓에 창고 안 물건들이 경매에 넘어갔다. 새 소유주가 된 섀넌 위스넌트는 바비큐 훈연기 안에 조심스레 싸인 다리를 발견했다.
그런데 잘린 다리의 소유권을 두고 분쟁이 벌어졌다. 우드는 잘린 다리가 본래 자신의 일부였기에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위스넌트는 자신이 합법적 입찰로 물건 일체를 구매한 ‘선의취득자’라고 주장했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가 핼러윈을 앞두고 창고를 ‘공포의 집’으로 꾸미고 다리를 전시해 관람료를 받고 싶어 했다. 영리한 장사꾼답게 자신을 ‘풋맨(The Foot Man)’이라고 홍보하기도 했다. 재산권과 인격권이 충돌한 이 분쟁은 전직 판사가 진행(1999~2023)한 법정 리얼리티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중재로 해결됐다. 우드는 위스넌트에게 5000달러를 주고 다리를 돌려받았다. 이 사건은 뒷날 ‘파인더스 키퍼스(Finders Keepers, 2015)’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우드의 잃어버린 다리’라는 기이하고 웃픈 상징물은 법적으로나 철학적으로 많은 질문을 던진다. 내 몸에서 분리된 신체는 여전히 ‘나’의 일부인가, ‘사물’인가? 버려진 신체 부위는 계약상 ‘양도 가능’한 것인가, 헌법적 가치에 따라 ‘양도 불가능’한 영역에 속하는가? 신체의 일부 또는 전체, 나아가 인간이 상업적으로 거래될 수 있는가? 인간에게 ‘상실’과 ‘회복’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인간의 존엄성과는 어떤 관계인가?

위 사례는 백인 남성 간의 분쟁이었지만, 인종·성별·출생지 등 사회적 배경과 정체성이 다른 사람들 사이라면 권리 충돌의 문제는 훨씬 더 복잡해진다. 동일한 법 규범이 적용되더라도, 노골적이든 암묵적이든 편견과 차별이 작동하고, 사건의 사회·경제적 맥락은 생략되거나 왜곡되기 십상이다.
미국 법학자이자 문화비평가 퍼트리샤 윌리엄스(75)의 ‘검은 다리의 기적’(The Miracle of the Black Leg, 2024)은 인종화된 신체를 둘러싼 여러 사건과 지은이 자신의 경험을 통해 권리와 정의가 어떻게 권력 속에서 구성되는지를 보여준다. 법철학 이론과 자전적 글쓰기가 혼합된 형식으로, 법을 둘러싼 감각과 경험을 재구성한 비평적 에세이에 가깝다. ‘인종, 인체, 그리고 법 정신에 관한 노트’라는 부제가 달렸다.
책의 제목 ‘검은 다리의 기적’은 3세기 로마 제국에서 활동한 의사 형제이자 기독교 순교 성인 코스마스와 다미안의 의술을 묘사한 그림에서 가져왔다. 한쪽 다리가 잘린 백인 교구지기에게 갓 사망한 흑인의 다리를 이식해 살렸다는 전설로, 서양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에 여러 화가의 종교 도상으로 그려졌다. 이 이야기가 유럽 전역에 퍼진 계기는 13세기 이탈리아의 대주교가 성인들의 생애와 기적을 다소 과장해 편찬한 ‘황금 전설’이라는 책을 쓰면서다. 중세에는 신의 자비로 칭송받던 이 장면은 현대 법철학의 눈으로 보면 타인의 신체를 권력의 논리로 치환하는 ‘약탈적 이식'에 다름 아니다.
지은이는 미국 법학계의 한 흐름인 비판법학의 토대 위에서 ‘비판적 인종 이론’을 정립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그 자신이 흑인 여성으로, 컬럼비아대 로스쿨 명예교수이자 노스이스턴대 법학 및 인문학 석좌교수다.
비판법학은 법이 순전히 논리와 원칙으로 작동하는 중립적 규범이 아니라 종종 지배적 집단의 이해를 반영하는 정치·경제적 권력관계의 산물이라고 본다. 그러나 법은 사회적 소수자를 보호하는 강력한 수단이기도 하므로, 법을 계급·인종·성별에 따른 위계적 사회 구조를 해체하는 도구로 활용하는 것에 관심이 크다.

비판적 인종 이론은 ‘인종’이 생물학적 근거가 없으며 유색인종의 차별과 착취를 정당화하려 창안된 개념이라고 비판한다. 인종주의도 개인의 편견이 아니라 사회적 구성물이라는 것이다. 비판적 인종 이론은 1960년대 미국에서 절정이었던 흑인 민권 운동의 성과가 1970~80년대 들어 힘을 잃고 혈통과 피부색에 따른 불평등이 다시 노골화한 데 대한 인권 법학자들의 대응으로 나왔다. 미국 보수주의 집단은 비판법학과 비판적 인종이론을 몹시 경계하고 혐오한다.
지은이가 예시한 여러 사건과 판례들은 신체, 나아가 신체의 주인인 인격체가 사회적 지위에 따라 법 앞에서 얼마나 불평등한지, 법이 그 불평등을 어떻게 정당화하는지를 생생히 보여준다.
1856년 켄터키주의 흑인 노예 마거릿 가너는 자신을 강간한 소유주에게서 탈출해 노예제가 금지된 오하이오주로 도망쳤다. 현상금 사냥꾼들이 닥치자 그는 자녀들이 노예로 살지 않도록 죽이려 했다. 그런데 가너를 돕는 노예제 폐지론자들은 외려 그가 살인죄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힘썼다. 그가 ‘상품’이 아니라 ‘인간’으로 인정받는 방편이었다. 얄궂게도, 그래야 자유인의 지위를 요구하고 노예제의 잔혹성을 주장해 감형을 기대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법원은 그를 노예주의 적법한 동산(재산)으로 판결했고, 도망노예법에 따라 ‘밀수품’으로 주인에게 송환됐다.
신체와 인격을 상품화하고 그것을 법이 뒷받침하는 구조는 오늘날도 다르지 않다. 미국에선 신분 상승을 열망하는 젊은 여성들 사이에 신종 육체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명문대 여학생들의 ‘아이비리그’ 난자를 ‘기증'받는 건데, 한번 채취할 때마다 5만달러 이상을 ‘보상'한다. 현행법상 장기 매매는 불법이지만 기증과 보상은 허용된다. 이와 별개로, 나이 많고 부유한 남성과 젊은 여성 ‘슈가 베이비’를 ‘상호이익이 되는 관계’로 짝지어주는 메이팅 업체도 버젓이 영업한다.
반면 유색인종,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단순 육체노동자들의 몸값과 인격은 사회적 위계의 맨 아래에 있다. 지은이는 ‘필수 노동자’와 ‘필수 노동’의 차이에서 노동과 인간의 소외를 읽어낸다. 국방·의료·보건·치안·교통·소방 등 국가 인프라의 핵심 부문 종사자들은 ‘필수 노동자’이자 소명에 헌신하는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반면, 농장·식품·재봉·청소 등 일상에서 필수적인데도 희생의 이미지가 선명하지 않고 잡역으로 여겨지는 주변부에서는 ‘필수 노동’만 남고 그 노동을 담당하는 ‘사람(노동자)’은 지워진다.

법이 신체에 대한 규율 권력으로 작동하는 가장 민감하고 논쟁적인 이슈 중 하나가 인공 임신중지의 ‘허용’ 여부다. 그런데 텍사스주의 낙태금지법은 민간인에게 법 집행을 위임하고 있다. 임신중지를 돕거나 방조한 사람에 대해 누구든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고 최소 1만달러의 보상금을 지급한다. 미셸 푸코가 간파한 근대 국가의 ‘생명 권력’이 금전을 매개로 민간에게 외주를 주는 단계까지 나간 단적인 사례다.
지은이는 “우리는 스스로를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가진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젠더·인종·계급이 충돌할 때 계약이 만들어내는 소외와 (평등권·자유권·행복추구권 등을 규정한) 헌법 사이에서 긴장이 드러난다”고 짚었다. 흑인처럼 온전한 권리를 가져보지 못한 이들에게는 권리가 ‘사물’의 지위에서 ‘인간’의 지위로 옮겨가는 승차권이 되며, 법은 그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호하고 확장하는 무기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옮긴이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검은 다리’들로 눈길을 돌린다. 배달하다 교통사고로 다쳐도 “다친 데 없으세요?”가 아니라 “배달 가능하신가요?”라는 질문을 받는 플랫폼 노동자, 단순한 이동 자체가 권리가 아니라 투쟁인 장애인, 여성이라는 이유로 서류 전형에서 탈락한 구직자, 불법체류 단속을 피하다 추락해 숨진 이주노동자…. 미국의 노학자가 쓴 ‘검은 다리의 기적’은 “한국 사회도 폭주하는 트럼프의 미국과 다를 바 없이 경제 성장과 소비자 편의라는 기적을 위해 검은 다리를 끊임없이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옮긴이의 말) 되돌아보게 한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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