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글쓰기’ 믿지 않는 아동 성폭력 피해자 작가의 글쓰기 [.txt]
유년 시작된 근친성폭력과 트라우마로 얼룩진 삶
집요한 고찰로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기”

7살께부터 14살이 될 때까지 계부로부터 성적 학대를 당한 여성의 회고록이라고 신간 ‘슬픈 호랑이’와 저자를 소개해 본다. 얼마나 조악한 요약인가마는, 그 거친 입구를 우회하여 책에 진입하긴 어렵다. 작중 자신에게 투사하고자 인용했던 한 미국 소설가의 문장대로다. “강간 때문에 벌어진 것이다. 내가 강간을 당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가해자를 주어에서 지우고 대신 부당한 외력을 실체화해 보려는 서술로서, 글쓰기의 시작점을 명확히 표명한다. ‘이후 삶’의 심연으로 그나마 안내하는 이정표인 셈이다.
다만 거기 서기까지 작가가 제 이야기를 삼킨 세월은 길다. 20대 들어 어머니와 남자 친구에게 고백했고, 마흔여섯 되어 책으로 펴냈다. 그가 작가 데뷔한 뒤로도 16년 만의 일이다.
근친성폭력 피해자가 서사의 당사자가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프랑스 유명 작가 크리스틴 앙고(67)를 통해 그 지난함을 알 만하다. 2021년 프랑스 메디치상 수상 소설 ‘동방 여행’에서 앙고는 자신에게 근친상간에 관해 써보라고 권한 이가 가해자인 아버지였다고 밝힌다. 이 삽화에 기대 ‘슬픈 호랑이’의 작가는 말한다. “나를 고통스러운 일화들 쪽으로 다시 데려가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과거에 겪은 일을 재현”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들이지만 “그것 역시 가해자가 도모한 일이라는 점 때문이다. 가해자는 그 일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가해자가 이야기의 기획자가 되는 현실처럼, 진실 자체만큼이나 중요한 맥락들이 적지 않다. 가령 “독자가 (…) 강간범이 성기를 나의 어느 부위에 넣었는지 알아낸 다음, 이런 기이한 확인 말고는 아무것도 얻어 내지 못한 채로 책을 덮어 버”린다면? 이보다 더 복잡하게 얽힌 ‘피해 서사’의 맥락과 관점, 딜레마, 오해 따위에 관한 집요한 고찰과 더 다층적이면서도 적나라한 심사로 ‘슬픈 호랑이’는 여느 피해 당사자의 ‘자기 서사’와 차별화한다.

딸에게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야”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아” “그래서 너를 벌하기 위해” 하는 행위라 으르고 배심원에겐 “행위” 자체보다 “깊이를 이해하기 쉽지 않”은 자신의 내면을 참작해 달라던 “포식자”, 스무살 대학생 딸에게 사건을 처음 듣고도 1년을 더 ‘그’와 산 어머니(당시 40대 초반), 진실이 드러났음에도 피해자를 배척한 마을 사람들, 공개 재판 뒤 수감된 그에게 팬레터를 보내고 면회 간 여성들, “100건의 강간 사건 중에서 단 한건이 판결을 받는” 프랑스 사회, 무엇보다 12~13살에 이르러 “삽입” 행위까지 당하기 전 강간임을 확신하지 못했다던 자신, 이후 30년 “강간을 당하고 나면, 숨 쉬는 능력부터 (…) 스스로 그냥 존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느끼는 능력”까지 왜곡되고 오랫동안 피팅룸 거울 앞 제 몸을 볼 때마다 울었다는 자신까지 숨김없이 드러내는 저자의 이름은 작가이자 번역가로 활동하는 네주 시노다.
1977년 프랑스 남동부 출생의 시노는 2007년 단편 소설집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해 2023년 ‘슬픈 호랑이’를 펴냈다. 그해 “문학계를 뒤흔든” 이름이 되었다. 페미나상과 고등학생 선정 공쿠르상을 받았다. 오래전 이미 뉴스 메이커이긴 했다. 태어난 지 닷새째였다. 보헤미안 삶을 좇던 부모가 알프스 고산 지대 오두막에 살며 의료 도움 없이 얻은 딸. ‘눈’(雪)을 뜻하는 이름의 네주 이전, 이 산골 마을을 찾은 새 생명은 1930년이 마지막이었다고 지역 신문은 길게 소개했다. 부부의 연은 그만큼 길지 못해 이혼한 28살 엄마는 카리스마 넘치는 24살 남자를 만난다. 네주가 6살 되던 1983년이었고, 남자는 머지않아 네주의 사방에서 “조물주 같은 존재, 실물보다 더 큰 존재”로 군림한다.
책은 시간이나 기승전결 등 계통을 거스른 채, 열쇳말과 단상 내지 삶의 국면을 조각조각 혼재시켜 전개한다. 문학 박사이기도 한 시노는 ‘롤리타’를 위시로 한 여러 문학 텍스트를 인용, 비평해 가며 강간의 본질, 자신과 가해자, 시대 사회의 내외면을 횡단한다. 급기야 고문, 전쟁, 학살에 강간이 견줘지며 “생각할 수 없는 일을 생각하고, 들려줄 수 없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인간의 경계를 마주하는 것이 왜 필요한지 생각”하게 한다. 절대악의 존재와 살아남은 자의 정체를 궁구하는 여정이랄까.
여기엔 낙관이 없다. 저자는 ‘치료적 글쓰기’라는 시각조차 불신한다. “설령 그런 글쓰기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이 책을 통해 내가 치유된다고 생각하면 혐오감이 밀려온다.” “문학은 나를 구원해 주지 않았다.”
쓰길 주저했던 이 책이 그럼에도 쓰여, ‘무엇을 쓰는가’로부터 ‘왜 쓰는가’ ‘어떻게 쓰는가’로까지 사력을 다해 나아가는 덴 이유가 있다. 가해자들의 가공할 회복 탄력성 때문일까? 혐의를 부분 인정해 9년형을 선고받고 5년 만에 모범수로 출소한 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스무살 연하 여성과 결혼하여 아이를 또 넷 둔 시노의 계부와 같이? “복수”에 관한 사유 또한 멈추지 않던 시노는 그러나 그를 제 서사에 서도록 하지 않는다. 중심엔 대신 자신의 딸아이가 있다.
“왜 엄마의 엄마한테 말하지 않았어?” “그 사람이 엄마를 죽일까 봐 두려웠어?” “엄마 학교 선생님한테 말할 수는 없었어?” “엄마 울었어?” “왜 우는지 누가 물어보지 않았어? 왜 거짓말을 한 거야?”…. ‘피해 서사’에 관한 어쩌면 가장 어려운 질문과 맥락을 궁리하는 일, 그리고 답하는 일.
“그런데 무엇이 달라졌기에 내가 생각을 바꾸어 이 글을 쓰고 있을까? 아마도 내가 어떤 경계를 넘어 다른 편으로 건너왔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에 나는 연약한 소녀였지만, 이제는 그런 소녀가 아니다. 이제는 내가 보호를 맡을 차례다.”
말미는 하여 피맺힌 한편의 정언명령 같다.
“우리는 그 세계가 언제나 저기, 길모퉁이에 있음을 알면서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그 세계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모여 있는 세계다. 내가 생각하기에 피해자든 가해자든 모두가 거의 같은 어둠이다. 그 세계에서 우리는 악을 무시할 수 없다. 악은 여기저기 도처에 있다. 악은 모든 것의 색깔과 맛을 달라지게 만든다. 악을 무시하거나 잊는 것은 선택지가 아니다. (…) 하지만 그 세계에 들어가지 않고 가장자리에 버티며 살 수는 있다. 그 세계의 문턱에 머무는 법을 배우라. 그렇게 도전하라. 우리 운명들의 줄 위로 곡예사들처럼 걸어라. 비틀거릴 수는 있지만, 다시 한번 말하거니와, 떨어지지 말라, 떨어지지 말라. 떨어지지 말라.”
이 책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하나지만 출구는 많다. 특히 비관주의자에게 그렇다. 우선 시노의 세계에서 어떤 아이도 “딴 곳에 혼자 있지 않을 것이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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