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침스틸러] “지글지글~ 고향의 맛에 홀리다”
갑작스레 조선시대로 떨어진 셰프
국가 명운걸린 명나라와 요리 경합
압력솥 얻으려 괴짜 제작자 찾아가
그리운 맛 ‘파전’ 대접해 설득 성공
조선쪽파·부산포 해물 듬뿍 넣어
동래시장 할머니들 좌판에서 유행
두툼·촉촉한 식감…전통식 그대로
느끼함 잡는 초장 찍어 먹으면 별미

“한평생 고향의 맛이 참으로 그리웠소.”
어린 시절의 추억과, 가족과 함께한 시간이 켜켜이 쌓인 고향은 ‘꿈엔들 잊힐 리 없는’ 그리움의 대상이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일지라도 ‘맛’은 기억과 감정을 소환하곤 한다.
드라마 ‘폭군의 셰프’(2025년, 장태유 감독)의 주인공인 요리사 연지영(임윤아 분)은 프랑스 최고 요리대회에서 우승하며 승승장구하던 중 갑작스럽게 조선시대로 떨어진다. 이내 미식가 폭군 ‘연희군’ 이헌(이채민 분)의 눈에 띄어 명나라와 국가의 명운을 건 요리 경합에 나간다.
무승부였던 1·2차 경합에 이어 3차 경합의 주제는 ‘탕과 삼’. 지영은 오골계 삼계탕으로 승부를 걸지만 이를 완성하려면 조선에 없는 현대 문물, 압력솥이 필요하다. 이헌·호위무사와 함께 괴짜 기술자 장춘생(고창석 분)을 찾아가 제작을 부탁한다. 그러나 춘생은 조상이 윗사람에게 이용만 당한 채 버려졌다며 왕실 사람들을 단호히 돌려보낸다. 집 앞에서 기다리면서 어떻게 마음을 돌릴 수 있을지 고민하던 찰나 지영은 춘생의 고향이 부산포라는 점에 착안해 ‘동래파전’을 만든다.
“동래파전은 반죽을 진득한 농도로 맞추는 게 ‘포인트’예요. 쪽파를 일렬로 줄 세워 바짝 익히는 게 먼저입니다.”
지글지글 익어가는 소리와 고소하고 짭짤한 향이 금세 바람을 타고 집안까지 흘러간다. 결국 춘생은 홀린 듯 문밖을 나온다. 파전을 앞에 두고 호위무사들은 “노릇노릇한 파전 좀 보이소, 빛깔 죽인다”며 감탄을 쏟아내지만 춘생은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그러자 이헌이 뜨거운 김을 호호 불어가며 보란 듯이 맛있게 먹고 막걸리까지 곁들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춘생은 “얄밉게도 먹는다”며 결국 손으로 파전을 집어든다. 한입 베어무는 순간 눈이 커지고 입이 벌어진다.
“내 어릴 적 잔칫집에서 먹던 그 맛 그대로요.”
지영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설득한다. 춘생의 조상 ‘장영실’이 이용만 당한 채 버려진 것이 아니라 춘생이 옛맛을 기억하는 것처럼 먼 훗날 사람들도 ‘장영실’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좋아하는 일을 이어가며 이번 경합에 힘을 보태준다면 그 결과가 백성에게 기쁨으로 돌아갈 것이라며 도움을 청한다.
결국 “다시는 맛보지 못할 줄 알았던 음식을 먹게 해줘서 고맙다”며 마음을 연 춘생은 압력솥 제작에 나선다. 경합 당일, 이 비장의 무기 덕분에 지영은 결국 승리한다.

그리웠던 유년 시절 속 고향을 눈앞에 둔 것만 같은 그 맛. 어떤 맛이길래 부산 사람들의 추억으로 남았을까. 그래서 ‘백년가게’로 이름을 올린 부산 동래구 복천동 ‘동래할매파전’으로 향했다.
옛 동래도호부의 진산(마을을 지키는 산)인 금정산 일대에는 예부터 파밭이 넓게 펼쳐졌다고 한다. 짧지만 단단하고 향이 짙은 ‘조선 쪽파’와 부산포 앞바다에서 잡은 해물을 썰어넣고 전을 부쳤던 것이 ‘동래파전’의 유래다. 조선시대에는 양반이 즐기던 음식으로 동래부사가 임금에게 올렸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1930년대 들어 동래시장 좌판에서 할머니들이 파전을 부쳐 팔며 널리 퍼졌고 시간이 지나 이제는 ‘동래할매파전’ 한곳만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어머니와 할머니가 해오던 일을 이어가면서 ‘오늘 하루 욕만 먹지 말자’고 다짐하고 시작했죠.”
며느리에서 며느리로 4대째 가게를 물려받은 사장 김정희씨(63)는 가업만 아니라 이곳을 찾는 손님의 추억을 유산으로 여기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그러다 어린 시절 부모 손을 잡고 온 이들이 세월이 흘러 “어머니 마지막 상을 치르고 여기 와서 먹고 간다”는 말을 건넨 이도 있었고, 머리를 다친 뒤 외출을 꺼렸지만 “파전 먹으러 가자”는 한마디에 밖을 나선 손님도 있었다며 가슴 찡했던 순간을 전했다.

동래파전은 바삭하기보다 두툼하고 촉촉한 식감을 지닌다. 김씨는 “호불호가 갈리는 것도 알고 요즘은 더 바삭하게 만드는 게 유행이지만 아홉집이 바삭함을 앞세운다면 한곳쯤은 전통을 지켜도 되지 않겠느냐”며 “옛말에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모서리에 앉지 말라’고 했듯 사각 팬이 더 편한 방식임에도 둥근 팬을 고집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그는 한결같은 방식으로 무쇠 번철에 유채 기름을 두르고 쪽파를 가지런히 깐다. 그 위에 싱싱한 대합과 새우·조갯살을 올리고 다시 쪽파를 덮은 뒤 찹쌀가루·고춧가루·간장·다시마육수를 섞어 만든 맛국물을 붓는다. 전을 모았다 펼치기를 반복하며 익힌다. 마지막으로 달걀물을 입히고 냄비 뚜껑을 덮어 찜을 찌듯 뜸을 들이면 화룡점정.

갓 나온 따끈한 동래파전을 젓가락으로 찢어 길게 뻗은 쪽파와 해산물을 함께 집어 먹어본다. 입안 가득 달큼한 파와 해산물의 깊은맛이 어우러진다. 폭신하고 촉촉한 결이 살아 있어 부드럽게 혀를 감싼다.
동래파전의 또 하나 특징은 간장이 아닌 초장에 찍어 먹는 것. 새콤한 맛이 기름진 풍미를 깔끔하게 잡아준다. 파전이 곁들임이 아닌 한끼를 채우는 음식으로 기억되길 바란다는 김씨의 말처럼 전 한장을 비우고 나니 몸도 마음도 든든하게 채워지는 듯하다.
그리움에 밀려 지난날이 떠오른다면 고향의 맛에 흠뻑 빠져봐도 좋겠다. 시간 여행을 하는 동안 예기치 못한 위로를 받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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