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BOARD] 가는 길도 여행이다, 크루즈로 가는 오사카

김태현 기자 2026. 4. 3. 0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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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는 목적지에 데려다주지만, 크루즈는 가는 시간까지 여행으로 만든다. 잠드는 사이 배는 달렸고, 눈을 떴을 때 창밖엔 이미 오사카가 가까워져 있었다. 바다 위에서 오사카로 향하는 방법, 팬스타 미라클 크루즈에 올랐다.

[우먼센스] 비행기 없이도 오사카에 갈 수 있다. 부산항에서 출발해 현해탄을 건너는 크루즈 여행을 직접 다녀왔다. 잠드는 사이 배는 조용히 달렸고, 눈을 떴을 때 창밖엔 이미 일본 내해가 펼쳐져 있었다.

사진제공=팬스타엔터테인먼트

공항 없이 시작하는 여행

해외여행을 준비할 때마다 반복되는 절차가 있다. 인천공항까지 이동하고, 수하물을 저울에 올리며 혹시 초과될까 조마조마하고, 액체류를 소분해 지퍼백에 담고 나서야 비로소 여행이 시작된다는 안도감이 찾아온다. 그 모든 과정을 생략할 수 있다면 어떨까.

팬스타 미라클 크루즈가 출항하는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은 부산역과 무빙워크로 연결돼 있다. KTX를 타고 부산역에 내리면 안내 표시를 따라 곧장 터미널로 이동할 수 있다. 비행기와 달리 액체류 반입 제한이 없어 방에서 마실 음료나 술을 가방에 넣어도 된다. 짐 무게 걱정도, 긴 대기 줄도 없는 수속 과정은 탑승 게이트로 향하는 발걸음부터 공항과는 확연히 다른 가벼움을 안겨준다.

봄의 초입, 목요일 오후 팬스타 미라클호에 올랐다. 22,000t급 선체는 선착장에서 마주하는 순간부터 압도적이다. 2025년 새롭게 취항한 이 크루즈는 국내 기술로 건조된 럭셔리 크루즈페리로, 102개 객실이 탑승객을 기다리고 있다. 탑승과 동시에 승무원이 건네는 웰컴 드링크를 손에 쥐고 나면, 몸이 먼저 여행 모드로 전환된다.

 팬스타 미라클 크루즈, 객실로 들어온 바다

이번 여정에서 선택한 객실은 발코니 객실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깔끔하게 정돈된 침대와 함께 개인 발코니가 눈에 들어온다. 공간은 컴팩트하지만 효율적으로 설계되어 도심의 비즈니스 호텔을 연상케 한다. 발코니가 핵심인데, 의자 두 개가 놓인 발코니에 앉으면 바다가 그대로 눈앞에 펼쳐진다. 출항 직후부터 파도가 치는 모습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발코니 객실의 결정적 매력이다.

사진제공=팬스타엔터테인먼트

밤에 객실로 돌아와 발코니 문을 열어두면 파도 소리가 방 안을 채운다. 어떤 수면 유도 앱도 흉내 내기 어려운 소리다. 아침에 눈을 떠 커튼을 젖히면 창밖에 바다가 있다. 일상의 창문에서 보이는 골목이나 빌딩 대신, 수평선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만으로 하루의 시작이 달라진다.

객실 욕실은 호텔 스탠다드 룸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수준으로, 기본 어메니티가 충실하게 갖춰져 있다. 슬리퍼와 가운도 제공되어 선내를 오가는 동안 편안함을 유지할 수 있다.

배 위의 하루, 생각보다 훨씬 알차다

크루즈를 단순한 이동 수단으로 여긴다면 절반도 즐기지 못하는 셈이다. 이 배는 호캉스와 이동을 동시에 해결하는 공간에 가깝다. 층마다 여행자를 붙잡아두는 콘텐츠들이 기다리고 있다.

사진제공=팬스타엔터테인먼트

선내에서 가장 먼저 찾아야 할 곳을 한 군데만 꼽으라면, 주저 없이 사우나다. 욕탕에 몸을 담그고 고개를 들면 창밖으로 바다가 펼쳐진다. 시선이 닿는 끝까지 수평선이 이어지는 그 풍경 앞에서, 피로가 물에 녹듯 빠져나간다. 몸이 노곤해지면서도 눈은 하염없이 바다를 향한다. 건식 사우나까지 갖춰져 있어 충분히 땀을 뺀 뒤 탕에 들어가는 코스가 가능하다. 각 객실의 욕실도 잘 갖춰져 있지만, 바다를 바라보며 욕탕에 몸을 담그는 경험은 선내 사우나에서만 가능하다. 단, 운영 시간을 미리 확인해야 한다. 하선 당일에는 조식 식사 전에만 운영하므로, 이른 아침 서둘러 찾지 않으면 기회를 놓친다.

7층 선수에 자리한 VIP 라운지는 전망이 가장 좋은 공간이다. 세련된 인테리어에 넓은 창이 열려 있어 고급 바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드는데, 정작 음료 가격은 예상을 훨씬 밑돈다. 조니워커 블랙라벨 한 잔이 5,000원, 재패니즈 위스키 야마자키도 육지 어지간한 바의 절반 수준이다. 합리적인 가격의 위스키를 손에 들고 바다를 바라보는 이 공간은, 쾌적한 와이파이 환경까지 갖추고 있어 여행 중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직장인에게는 선내 최고의 아지트가 되어준다.

VIP라운지. 사진제공=팬스타엔터테인먼트

저녁 식사가 마무리되고, 메인홀의 조명이 바뀐다. 악기 연주와 함께 시작된 라이브 무대는 예상을 훌쩍 넘는 퀄리티로 탑승객들의 눈길을 붙잡았다. 승무원들이 직접 무대에 올라 호흡을 맞추고, 싸이의 모창과 댄스를 완벽하게 소화한 가수가 등장하자 객석에서 탄성이 터졌다. 또 다른 날에는 맘마미아 뮤지컬 넘버가 라이브로 펼쳐졌고, 박수가 절로 나왔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흥이 가라앉기까지는 한참이 걸렸다.

공연 외에도 선내 곳곳에서 랜덤 이벤트가 열린다. 기자가 탑승한 날에는 면세점에서 판매하는 위스키를 경매하는 이벤트가 진행됐다. 정가 20만원짜리 위스키가 10만원에 낙찰되는 장면에서 탑승객들 사이에 웃음이 터졌다. 방 번호를 랜덤으로 추첨해 경품을 증정하는 이벤트도 있었다. 소소한 선물이지만 내 번호가 불릴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분위기를 들뜨게 만든다.

선내 면세점은 무인 편의점 형태로 24시간 운영된다. 주류와 과자, 생활용품을 자정이 지나도 자유롭게 구매할 수 있다. 갑자기 술 한잔 당기는 밤에도, 아침 일찍 간식이 필요할 때도 언제든 들를 수 있는 곳이다. 주류는 특히 가격 경쟁력이 높아, 귀국할 때 쇼핑 목록에 올려두는 탑승객이 많다.

석식, 조식, 그리고 메인 디쉬

식사 시간은 하루의 하이라이트다. 뷔페 테이블에는 한식·일식·중식이 고루 펼쳐지는데, 선상 식사에 대한 선입견을 지우기에 충분한 구성이었다. 삼겹살에 무생채, 깻잎, 쌈장까지 갖춰진 한식 코너를 비롯해 각종 고기류와 튀김류까지, 결혼식 뷔페와 비교해도 크게 떨어지지 않는 수준이었다.

사진제공=팬스타엔터테인먼트

VIP 등급 탑승객은 뷔페에 더해 메인 디쉬를 별도로 선택할 수 있다. 전복구이, 갈비찜, 삼계탕 등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구성 중 하나를 고를 수 있고 와인도 한 잔 곁들여진다. 뷔페만으로도 이미 배가 찰 만큼 잘 차려진 탓에, 메인 디쉬는 보너스에 가까운 혜택이었다. 오션뷰 창가 자리가 배정된다는 것도 VIP 등급의 소소하지만 확실한 특전이다. 검푸른 바다를 곁에 두고 식사하는 시간은, 어떤 창가 레스토랑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조식은 빵부터 계란 요리, 과일과 디저트까지 아침을 든든하게 채워준다. 오사카가 가까워질수록 식사 속도가 느려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아직 배 위에 좀 더 머물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기 때문이다.

가는 길도 콘텐츠다

항로 자체가 볼거리다. 팬스타 미라클호는 한국-일본 노선 가운데 유일하게 세토내해를 통과하는 크루즈다. 부산을 출발한 배는 대마도 해상을 지나 관문대교 아래를 통과하고, 세토내해로 진입한다.

사진제공=팬스타엔터테인먼트

세토내해는 혼슈, 시코쿠, 규슈 세 섬에 둘러싸인 일본 최대의 내해로, 동서로 450km에 걸쳐 펼쳐진다. 700개가 넘는 섬이 점점이 박혀 있어 일본 정부가 국립공원으로 지정한 천혜의 뱃길이다. 역사적으로도 이 항로는 각별하다. 조선시대 일본에 파견됐던 조선통신사 역시 부산에서 배를 띄워 세토내해를 거쳐 오사카까지 이동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수백 년 전 외교 사절단이 지나던 바다 위를 지금 내가 지나고 있다는 사실이, 항해에 뜻밖의 무게를 더한다.

세토내해를 가로지르는 길목마다 장대한 교량들이 기다린다. 세토대교는 혼슈와 시코쿠를 처음으로 육로로 연결한 다리로, 1988년 완공 당시 일본 토목 기술의 집약체로 불렸다. 그 뒤를 잇는 아카시 해협대교는 완공 당시 세계 최장 현수교 기록을 세운 교량이다. 전장 3,911m, 주탑 높이 298m로 도쿄타워에 버금가는 규모다. 밤이면 케이블에 빼곡히 설치된 조명이 진주빛으로 물들어 '펄 브리지'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육지에서 차를 타고 건너는 다리와, 바다 위에서 올려다보는 다리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해면에서 수백 미터 높이로 솟아오른 주탑을 배 위에서 올려다보는 그 순간, 탑승객들은 약속이나 한 듯 갑판으로 쏟아져 나온다.

사진제공=팬스타엔터테인먼트

비행기 창가에서 손바닥만 한 창문으로 구름을 내려다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개방감이다. 어떤 관광지 사진집에도 실리지 않는 앵글이 여기 있다.

오사카는 가깝다 - 다양한 여행자들이 모이는 곳

탑승객 구성도 흥미로웠다. 어린 자녀를 데리고 온 가족, 부모님을 모시고 효도 관광에 나선 중년 자녀들, 환갑 기념 여행을 즐기는 노부부. 연령대도, 여행 목적도 다양하다. 눈에 띄는 그룹 탑승객도 있었다. 오토바이를 직접 배에 싣고 탑승한 라이더들이었다. 일본에서 열리는 F1 그랑프리를 현장에서 보러 간다는 그들의 이야기는, 크루즈가 얼마나 다양한 여행 방식을 품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저마다의 이유와 설렘을 싣고, 배는 오사카로 향한다.

사진제공=팬스타엔터테인먼트

봄볕이 내려앉은 오전, 오사카항에 입항했다. 간사이 국제공항과 달리 오사카항은 시내와 지근거리에 있다. 전용 셔틀버스를 타고 코스모스퀘어역에 닿으면 지하철로 도심까지 30분이면 충분하다. 하선 후 별다른 지체가 없다면 오전 9시 반이면 도톤보리에 도착할 수 있다.

팬스타 미라클 크루즈는 편도 단위로 예약이 가능하기 때문에, 오사카에서 머물고 싶은 만큼 묵다가 원하는 날의 귀국편을 타면 된다. 이번 여정에서는 오사카에서 3박 4일을 보낸 뒤 돌아오는 배편을 따로 예매했다. 반대로 당일치기도 충분히 가능하다. 오전 9시에 하선해 시내로 나갔다가 오후 5시 출항 전에 항구로 돌아오면 된다. 도톤보리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오사카성을 둘러본 뒤 쇼핑 한 바퀴 돌고 나서도 출항 시간에 맞게 복귀할 수 있다.

사진제공=팬스타엔터테인먼트

돌아오는 배 안에서도 여행은 계속됐다. 선내에서 사우나를 즐기고 저녁을 먹고, 공연을 관람하다 잠들면 이튿날 아침 부산항이다. 여행의 마무리까지 콘텐츠로 채워진 귀국길이다.

공항의 번잡함이 피곤한 사람, 아이나 부모님과 함께 여유로운 일정을 원하는 사람, 그리고 '오사카 여행'이라는 목적지보다 '여행하는 시간' 자체를 즐기고 싶은 사람. 팬스타 미라클 크루즈는 그 모든 바람에 답하는 여정이다. 

비행기의 속도를 포기하는 대신, 바다 위에서 보내는 하루를 얻는다. 그 교환이 아깝지 않다는 걸, 발코니에서 파도 소리를 들으며 잠든 그 밤이 증명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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