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샷 성지·유명 맛집? 북촌에 사람들 몰리는 진짜 이유 [맛과 멋]
편집자주
내일은 오늘보다 맛있는 인생, 멋있는 삶이 되길 바랍니다. 라이프스타일 담당 기자가 한 달에 한 번, 요즘의 맛과 멋을 찾아 전합니다.

흐드러진 벚꽃이 봄의 절정을 알리는 4월. 고층 빌딩이 즐비한 서울 도심에서 고즈넉한 경관을 찾는 발걸음이 향하는 곳, 바로 경복궁과 창덕궁을 양옆에 끼고 북악산을 병풍 삼은 북촌이다. 한복을 차려입고 궁궐 담벼락을 배경으로 '인생샷'을 찍는 외국인 관광객의 모습은 더 이상 낯설지 않고, 유명 식당 입구엔 여지없이 긴 대기 줄이 늘어서 있다.
이렇게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 속 계동길 일대를 서너 시간 동안 거니는 이가 있으니, 깊은풍경건축사사무소의 천경환 소장이다. "북촌에 한옥 사무실을 차리게 되면서 문득 이곳은 왜 좀처럼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지 궁금해졌어요." 2022년 6월부터 '건축 도슨트'로 활동하며 북촌의 숨은 매력을 알리고 있는 그와 코스 일부를 동행하며 도시 답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①경복궁 건춘문

천 소장이 진행하는 건축 여행은 경복궁 건춘문에서 시작된다. 이곳을 집합 장소로 고른 이유에 대해 "행정상 편의로 경계가 지어지는 다른 지역과 달리, 북촌은 궁궐과 산이라는 물리적 요소로 구분되는 장소라는 점을 직관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궁궐과 북악산이 지닌 불변의 이미지가 북촌 특유의 정취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고 설명한다.
조선의 법궁으로서 오랜 기간 한반도의 중심 역할을 해온 경복궁은 오늘날도 북촌 일대 도시 설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천 소장은 "건물이 경복궁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 경복궁을 향해 어떤 태도와 표정을 취할 것인가는 디자인의 큰 흐름을 결정하는 중요한 주제이자 자연스럽게 건축가의 건축 철학과 작업 태도를 드러낼 귀한 기회"라고 언급했다.
②금호미술관·갤러리현대

건축물 간 관계에 대한 물음은 자연스레 경복궁 건너편, 북촌 주요 랜드마크인 금호미술관과 갤러리현대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어깨를 맞대고 서 있는 두 건물은 각각 1996년, 1995년 지금의 모습을 갖췄는데 생김새가 극단적으로 대조된다. 금호미술관은 화강석을 이용해 점잖은 얼굴을 하고 있는 반면, 갤러리현대는 가벼운 알루미늄 패널 가벽에 창 구멍을 뚫어 경쾌한 이미지를 연출했다.
언뜻 부조화스럽다 여길 수도 있지만, 천 소장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경복궁을 존중하고 있음을 읽어낼 수 있다"고 짚었다. 금호미술관의 화강석은 경복궁 돌담의 사괴석과 비슷한 느낌. 마냥 자유분방해 보이는 갤러리현대 가벽의 정사각형 구멍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존 건물에 제각각으로 난 창문을 단정하게 가리는 역할을 한다. 은빛 패널 자체도 차분한 인상을 풍긴다.
더 재미있는 점은 갤러리현대가 1990년대 건물을 리모델링하며 패널을 건물 앞면에만 세웠다는 사실이다. 측면에서 보면 건물 구성이 그대로 보인다. 천 소장은 "건물이 어떤 변화를 거쳐 현재 모습을 띠게 됐는지 서사를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것도 디자인 의도 중 하나"라면서 "재료의 선택과 사용 방식에 시대적 배경이 녹아들어 있다"고 설명했다.
③국립현대미술관

과거의 흔적을 현재의 감각과 융화하려는 시도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도 확인된다. 중앙 입구로 쓰이는 붉은 벽돌 건물이 대표적인데, 1933년 일본군 수도육군병원으로 지어져 2008년까지 국군기무사령부 청사로 쓰였다. 리모델링 과정에서 덧대어져 있던 하얀 회벽을 깔끔하게 제거하지 않음으로써 외형 복원을 넘어 건물의 사연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효과를 줬다.
중앙에 조성된 네모반듯한 마당은 경복궁이나 창덕궁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북촌과 잘 어울린다. 천 소장은 "열린 관람 공간으로도, 행사장으로도, 사람들이 쉬는 공간으로도 기능한다는 점에서 '살아 숨 쉬는 마당'이라고 할 수 있다"며 유사한 사례로 국립중앙박물관을 꼽았다. 큰 건물일수록 공간에 여유가 있어야 제대로 기능할 수 있다는 것.

입구 반대편 종친부 건물은 국립현대미술관과 주택가를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는 교집합 역할을 한다. 미술관이 언덕에 자리하고 있어 어느 방면에서 봐도 주변 환경과 위화감 없이 부드럽게 이어진다는 점 또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미덕이다. 천 소장은 "진입로가 인위적으로 단절되지 않아 인근 직장인이나 주민들 일상에 스며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④홍현 북촌마을안내소
크게 네 건물로 이뤄진 홍현 북촌마을안내소는 시기에 따른 벽돌의 다양한 쓰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예전 경기고 부속건물을 활용한 서울교육박물관은 지금의 벽돌 마감 건물에선 볼 수 없는 복잡한 패턴을 확인할 수 있다. 벽 모서리나 창대석에 특이한 모양의 맞춤형 벽돌을 사용했고, 줄눈도 하나하나 볼록하게 만들어 전체적으로 정교하고 세밀한 느낌을 더했다.
반면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전시실은 훨씬 패턴이 단순하고 줄눈도 투박하다. 철근콘크리트로 구조체를 만들고 벽돌은 그 위에 덧붙였기 때문이다. 공중화장실 벽돌도 치장용인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간격을 두고 쌓아 올리는 '영롱 쌓기' 기법 등으로 미적인 효과를 냈다. 서로 다른 모습으로 옹기종기 지어진 건물들 덕에 조금은 허전했던 언덕이 활기를 찾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기무사와 경기고 건물 사례처럼 근현대 건축 유산을 재활용하는 일의 가치는 무엇일까. 옛 모습 그대로 문화재로 관리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한 보존법 아닐까. 천 소장은 "어떤 선택이 더 좋고 낫다고 할 수는 없다"면서도 "건물은 사용될 때 생명력을 부여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자체를 박제해서 타임캡슐처럼 남겨두는 것은 아쉬운 측면이 있다"고 답했다.
⑤계동길

계동길은 지난해 말까지 천 소장의 출퇴근길이었다. 사무실 이전을 준비하고 있는 요즘은 예전처럼 자주 걸을 일이 없지만, 여전히 그가 북촌에서 가장 애정하는 공간 중 하나이다. 천 소장은 "계동길은 계곡을 따라 만들어져 계획도시처럼 완벽하게 직선으로 뻗은 길이 아니고 갈수록 오르막이 심해지기도 한다"면서 "기승전결로 이어지는 서사가 느껴진다"고 했다.
단층의 도시형 한옥과 3, 4층짜리 건물이 섞여 있는 지금의 풍경은 1990년대 후반 조성된 것이다. 한옥마을 경관 규제가 풀린 틈을 타 급격한 개발이 이뤄지자, 반대급부로 발동한 공적 위기의식이 고밀도 개발에 제동을 건 것. 현재는 동네 주민을 위한 가게와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가게가 묘한 균형을 이루면서 거리에 생동감을 불어넣고 있다.
물론 인근 삼청동과 가회동에서 일찍이 진행된 상업화 바람에서 계동길도 자유로울 수는 없다. 천 소장은 개인이 하던 수제맥주집 자리에 프랜차이즈 음식점이 들어선 것을 사례로 들었다. 그는 "작은 공방의 기능을 겸하며 마을과 다층적인 관계를 맺고 있던 가게들이 사라지고 공산품을 판매하는 대형 스토어가 점점 많아지는 경향은 매우 아쉽다"며 고개를 저었다.

천 소장은 그간 탐방객들과 나눠온 이야기를 더 널리 알리고자 지난달 '북촌 건축 기행'(디자인하우스 발행)을 냈다. 도시 답사의 특별한 방법을 내처 물었다. "건축물은 주변과 맥락을 유심히 관찰하는 것으로도 건축가의 의도와 디자인의 주제 등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어요. 오직 현장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것들을 살펴보시되, 무엇이 정답일지 신경 쓰지 마시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세요."
최다원 기자 da1@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미국 석유 사라"는 트럼프, 현실은?… 美가 한국서 항공유 사 간다-국제ㅣ한국일보
- "노는 노인들은 아침에 지하철 자제" 李 주문에 노인들 뿔났다..."우리도 출근한다"-사회ㅣ한국일
- "평생 먹을 필요 없었네"…심근경색 환자 솔깃할 '이 약'의 반전-라이프ㅣ한국일보
- 미국이 또 달에 사람 보낸 이유... '달 남극'에 中보다 먼저 깃발 꽂아라-국제ㅣ한국일보
- 이재명 질책받은 석유공사 본부장 사임... '대왕고래' 총책임자는 감사 중이라 남아-경제ㅣ한국
- "소문 맞았다"... 허경환, "재산 80억 이상" 솔직 고백-문화ㅣ한국일보
- “내가 죽을까 아버지 총살당해... 78년 만에 진짜 아방 딸 되니 기쁩니다” [제주 4·3 78주기]-사
- '아들 논란' 조갑경, '라디오스타' 출연 역풍… 싸늘한 시청자 반응-문화ㅣ한국일보
- '문경새재 케이블카' 공사 중지에도 가수 불러 주민설명회, 왜?-지역ㅣ한국일보
- 강남 4층 건물, 외국인 상대 성매매 업소였다…20년간 업종 바꿔가며 운영-사회ㅣ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