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을 석기시대로” 또 뒤집은 트럼프
전날 종전 기대 키우다 오히려 확전 발언… 세계경제 또 혼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각) 대(對)이란 전쟁과 관련 “핵심 전략 목표 달성에 가까워졌다”고 하면서도 “향후 2~3주 이란을 극도로 강하게 타격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 2월 28일 이란 전쟁 시작 이후 트럼프가 생방송 대국민 연설을 한 것은 개전 33일 차를 맞은 이날이 처음이다. 트럼프가 전날 “우린 (이란에서) 아주 곧 떠나게 될 것”이라고 했기 때문에 이날 트럼프가 ‘깜짝 종전 선언’을 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왔지만, 트럼프는 명확한 출구 전략 구상이나 새로운 내용 없이 기존 언론 인터뷰와 소셜미디어에서 주장한 내용을 되풀이했다. 기름값 상승 등으로 미국 내 여론이 악화하자 지지층을 달래기 위한 연설이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트럼프는 이날 오후 9시부터 백악관에서 약 18분간 진행된 연설을 통해 이란 전쟁의 성과와 미군의 위대함, 전쟁을 개시한 자신의 결정 등에 대한 자화자찬을 이어갔다. 트럼프는 “미국의 모든 군사적 목표를 곧 달성할 궤도에 올라 있다”며 “오늘 밤 이란의 해군은 사라졌고 공군은 폐허가 되었으며 지도부 대다수는 이제 사망했다. 이란의 미사일과 드론 발사 능력이 극적으로 축소됐다”고 했다. 트럼프는 또 “B-2 폭격기들이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해 이란의 핵 시설들을 완전히 파괴했다”며 “핵 먼지 근처에 다가가는 데만 수개월이 걸릴 정도로 강하게 타격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핵심 전략 목표가 거의 달성됐다고 하면서도 종전과 관련한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앞으로 2∼3주에 걸쳐 이란에 극도로 강력한 타격을 가할 것”이라며 “그들을 원래 있어야 할 석기 시대(stone age)로 되돌려 놓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기간 동안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란의 발전 시설 하나하나를 매우 강력하게 타격할 것”이라며 아직 공격하지 않은 원유 시설에 대한 공습 가능성도 열어뒀다.

트럼프는 글로벌 경제에 충격을 주고 있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 문제에 대해서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석유를 공급받는 세계 국가들이 그 통로를 스스로 관리해야 한다”며 “이란 작전에 관여하기를 거부한 (동맹) 국가들에 제안한다. 미국산 석유를 사고, 뒤늦게라도 용기를 내어 해협으로 가서 직접 (석유를) 차지하고 스스로를 위해 보호하라”고 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미국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합의 없어도 떠나” 다음날 “합의 안하면 맹폭”… 오락가락 트럼프
전날 백악관은 트럼프가 시청 황금 시간대(미 동부 오후 9시)에 처음으로 이란 전쟁 대국민 연설을 한다고 예고하며 종전 선언 기대를 높였다. 하지만 연설 대부분은 트럼프가 최근 취재진과 나눈 질의응답이나 트루스소셜에 올린 내용과 대동소이해, “마치 트루스소셜 게시물을 그대로 읽어 내려가는 듯했다”(CNN)는 비판이 나왔다. 쟁점인 지상군 투입 여부나 종전 시점 등 새로운 내용은 없었고, 오히려 오락가락하는 트럼프 발언의 불확실성만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트럼프는 하루 전인 지난달 31일 취재진과 만나 “우리는 이란에서 곧 떠날 것”이라며 군사 작전 종료 시점으로 2~3주의 구체적 시한을 제시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등 민감한 사안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트럼프가 ‘셀프 종전’ 선언만 하고 사실상 철수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하지만 이날 트럼프는 “향후 2~3주 극도로 강력한 타격을 가할 것”이라며 오히려 확전에 방점을 찍으면서 국제 유가가 다시 급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외교적 접근과 군사 공격의 구분도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31일 트럼프는 “이란은 나보다 협상을 더 원하고 있다”면서도 “합의가 있든 없든 우리는 떠날 것이고, (합의 여부는) 지금은 상관없는 문제”라고 했었다. 합의 여부와 종전을 별개로 보는 듯했지만 트럼프는 다시 이날 “합의가 없다면 우리는 이란의 모든 발전소를 매우 강하게 동시 타격할 것”이라며 종전을 위한 협상을 요구했다. 개전 초기 트럼프는 “이란과의 협상은 이란이 무조건 항복하는 것 외엔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했었다.
핵심 쟁점인 호르무즈 해협 통제 문제에 대해서도 트럼프는 1일 트루스소셜에 “이란 새 정권의 대통령이 미국에 휴전을 요청했지만, 호르무즈 해협이 완전히 개방된 뒤에야 이를 고려할 것”이라고 했다. 해협 문제를 협상 조건으로 직접 제시한 것이다. 하지만 대국민 연설에서 트럼프는 “호르무즈 해협에서 석유를 공급받는 나라들이 그 통로를 스스로 관리하라”며 해협 문제를 동맹국들이 해결해야 할 사안으로 규정했다. 앞서 트럼프는 지난달 23일에는 “나와 이란 최고지도자가 함께 공동으로 호르무즈 해협을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었다. 호르무즈 해협 문제에 대해 트럼프가 뚜렷한 해법이 없다는 점을 방증하는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이란 핵시설에 대해서도 말이 계속 바뀌고 있다. 작년 6월 이란 지하 핵 시설을 폭격한 ‘한밤의 망치’ 작전 이후 트럼프는 “이란 핵 시설은 완전히 파괴됐다”고 강조했지만, 이날 연설에서는 “이란은 전례 없는 핵폭탄, 핵무기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고 했다. 지하 핵 시설의 고농축 우라늄에 대해서도 트럼프는 지난달 23일 “이란과 합의가 타결되면 우리가 직접 가서 가져올 것”이라고 했지만, 이날은 “지하 깊숙이 묻혀 있어서 신경 쓰지 않는다”며 “위성을 통해 항상 지켜볼 것”이라고 했다.
2월 28일 이란에 대한 첫 공습 직후 공개한 사전 녹화 연설에서 트럼프는 이란 국민을 향해 “당신들의 정부를 장악하라”고 봉기를 촉구하며 사실상 정권 교체를 전쟁 목표로 제시했다. 하지만 이날은 “정권 교체는 애초 우리의 목표가 아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이란의 수뇌부가 대부분 사망하면서 이란에서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다”고 했다.
미 언론들은 전쟁 장기화로 인한 물가 상승 등에 불만이 커지는 유권자들을 달래기 위해 트럼프가 기존 주장을 되풀이하며 직접 호소에 나선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실제 이란 전쟁 이후 미국 휘발유 값은 갤런당 4달러가 넘어 2022년 이후 최고치에 도달했고, 트럼프 지지율은 35% 안팎으로 집권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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