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인 유통, 방해세력 제거… ‘마두로의 그녀’, 13년 독재 설계자였다

지난 1월 니콜라스 마두로(64)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함께 미군에 체포돼 뉴욕으로 이송된 아내 실리아 플로레스(70)가 베네수엘라 좌파 정권의 핵심이자 남편의 13년 독재를 가능케 한 설계자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한 미 검찰의 공소장에 따르면, 플로레스는 베네수엘라 유력 인사들과 공모해 수백 톤의 코카인을 미국으로 밀반입하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마약 조직의 뒤를 봐주는 대가로 뇌물을 받고, 방해 세력을 제거하라고 지시한 혐의도 받는다. 플로레스는 ‘왕관 뒤의 실권자’ ‘마두로의 두뇌’ 같은 별명으로 불렸다.
니카라과·페루·아르헨티나 등에서도 국가 지도자의 배우자가 초법적 권력을 휘두른 사례가 있다. 가족관계와 개인의 카리스마를 중시하는 남미 정치 문화에서 지도자와 가장 가까운 인물인 배우자에게 권력이 집중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마두로 정권의 설계자 플로레스
플로레스는 1992년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이 쿠데타에 실패해 수도 카라카스 외곽에 수감됐을 때 처음 마두로와 만났다. 당시 플로레스는 차베스의 변호인이었고, 버스 운전사 출신인 마두로는 지지자로서 아무 직함 없이 차베스를 돕고 있었다고 한다. 차베스를 면회하러 온 플로레스에게 마두로가 먼저 윙크로 호감을 표하면서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됐다. 이미 결혼해 자녀가 셋 있었던 플로레스는 이후 마두로와 연인이 됐다.

1998년 차베스가 집권하자 플로레스는 국회의원으로 선출돼 개헌을 주도하며 의회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플로레스는 정치 신인이었던 연인 마두로를 차베스의 측근 그룹에 진입시키는 역할도 했다. 플로레스는 2006년부터 국회의장과 검찰총장을 지내며 사법·행정 라인을 거쳤고, 마두로는 정치·외교 분야에서 성장했다. 둘의 관계는 연인이자 정치 파트너로 발전했다.
플로레스는 고위직을 거치는 과정에서 가족과 친인척을 동원해 마약 유통에 손을 댔다. 미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검찰총장 출신인 그는 가족들과 관련 조직원이 마약을 유통하다 적발돼도 처벌받지 않도록 영향력을 행사하고 뇌물을 받았다. WSJ는 “플로레스의 친척들이 카라카스 국제공항의 대통령 전용 격납고를 활용해 마약을 운반했다”고 했다. 그렇게 벌어들인 자금은 마두로가 권력을 잡는 과정에서 정치자금으로 쓰인 것으로 알려졌다. 플로레스는 ‘마두로 정권의 설계자’로 불렸고, 미국 마약단속국(DEA)의 수년에 걸친 추적 끝에 지난 1월 마두로와 함께 체포됐다.
◇배우자는 지도자의 ‘권력 파트너’
남미 좌파 정권에서 비슷한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과 대통령의 부인 로사리오 무리요는 오르테가가 재집권한 2007년 이후 정치 전면에 등장했다. 2016년 남편이 네 번째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을 때 러닝메이트로 함께 출마해 당선됐다. 2018년 대규모 반정부 시위 과정에서 300명 이상이 숨진 사태의 책임자로 지목됐지만 2021년 남편과 함께 재선에 성공했다. 현재 부통령이자 정부의 실권자로서 반정부 인사와 언론 탄압, 정치범 구금, 표현의 자유 제한 등을 주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페루의 나딘 헤리디아는 남편 오얀타 우말라 전 대통령이 집권한 2011~2016년 ‘진짜 대통령’으로 불렸다. 공식 직함 없이도 남편이 창립한 집권 여당 페루 국민당의 후보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정부 고위직 인사를 좌지우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르헨티나의 크리스티나 키르치네르 역시 남편인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 집권기에 상원 의원을 지내며 정치 경력을 쌓았다. 2007년 남편에 이어 출마한 대선에서 당선되면서 부부가 연달아 대통령이 되는 기록을 남겼고, 2011년 재선에 성공했다. 퇴임 이후 2019년엔 부통령에 당선됐다. 지금도 아르헨티나에는 키르치네르 부부를 따르는 지지자가 많아 ‘킹메이커’로 불린다고 한다.
대통령 배우자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배경에는 남미 특유의 ‘족벌 정치’ 문화가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제도적 정당성보다 혈연을 강조하는 분위기 속에서 대통령 배우자가 사실상 ‘권력 파트너’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베네수엘라의 석유처럼 핵심 자원을 국유화해 정치·경제적 권력이 대통령에게 집중되는 구조에서 이런 경향이 심해진다는 분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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