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요즘 학생부장’이 사는 법
올해 건물을 통째로 새로 지어서 이사 온 학교 바닥은 참 깨끗하다. 1층에서 3층까지 관통하는 나무 계단도 있다. 아이들이 거기 누워 수업 듣느라 지친 체력도 회복하고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기도 한다. 그런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실내화를 꼭 신고 다니라고 이야기한다.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로 돌아가던 길, 복도에서 남학생 몇몇이 시끄럽게 떠들고 있다. 하나같이 실내화를 신지 않았다. 그중 반장인 친구에게 “실내화 신어야지?” 가볍게 한마디 하면서 지나가려던 찰나, 듣고 싶지 않지만 기어코 들리고야 마는 두 음절의 욕설에 발걸음이 멈춘다. 옆에 있던 그의 친구 녀석들이 날더러 들으라는 듯 “친구야 뭐라고? 선생님 계신데 뭐라고?”하며 조롱하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학생부장이다. 예전엔 학생주임이라고 불렸던 그 사람 맞다. 모름지기 그런 학생부장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욕을 뱉은 저 녀석을 불러다가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을 내줘야 제격이다. 하지만 그것은 옛날 이야기. 선생님이 화를 내면 그저 한 수 접어주던 그런 시절이 아니다. 너 방금 뭐라고 했냐고 물으면 대개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하거나 조금 더 양심적인 아이라면 “쌤한테 한 거 아닌데요”라고 하기 십상이다. 주변에 철없는 구경꾼이 우르르 있다면 욕을 했냐 안 했냐를 가리는 싸움은 나의 ‘필패’다.
이럴 때 쓰는 무기는 따로 있다. 우선, 나의 분노를 차분히 잠재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매달렸을 때조차도 자신을 욕하는 이들을 보며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고 있습니다”라고 외쳤다. 저 녀석은 지금 망가질 그와 나와의 관계, 수치스러움과 자괴감에 물들 내 마음까지 다 알고서 욕설을 내뱉은 게 아니다. 모르는 자와 싸워 봤자 답답한 건 나다. 그에게 다가가 어깨를 걸며 한마디 던진다. “설마 쌤한테 욕을 했겠어? 실내화 안 신은 거 깜빡했다! 하고 감탄사를 내뱉은 거지. 그치?”
내 물음에 섣불리 뭐라고 대답하지 못하고 당황해서 우물쭈물하는 그 친구의 등을 툭툭 두드려주고 가던 길을 간다. 갈등과 절망이 난무하는 교육 현장을 되살리는 길은 작은 기다림과 여유, 그리고 속아줌으로써 자라나는 감사와 성숙에도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원재 안흥고 교사·‘정선 가득한 아침’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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