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지대 놓인 강원 고립·은둔청년] 6. 집에 맡겨진 고립·은둔

오세현 2026. 4. 3.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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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 청년 사회·경제적 비용
연간 5조3000억원 규모 추산
고립 장기화·반복, 부담은 가족 몫
해법 없이 이어지는 ‘ 버티는 시간’
인식 차이 속 갈등 심화하기도
가족들, 치료·회복공간 부재 지적
“ 개인 문제 아닌 공동체적 과제
사각지대 없는 연결 인프라 절실”
▲ 고립·은둔 자녀를 둔 A(왼쪽)씨와 B씨가 지난달 강원권역 고립·은둔 청년지원센터에서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오세현 기자

‘연 5조원’ 침묵만큼 깊은 틈… 사회적 공백 메우는 가족들

고립·은둔 청년 문제는 이미 개인의 영역을 넘어섰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지난 2월 김성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과 공동 연구를 수행한 ‘청년 은둔화의 결정요인 및 사회경제적 비용 추정’ 보고서를 통해 만 19~32세 은둔 청년의 사회·경제적 비용이 연간 5조3000억원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고립과 은둔의 시간을 버티는 주체는 오롯이 가족이다. 가족만이 보호자이자 상담자이며 때로는 유일한 사회다. 가족과의 관계마저 무너진 이들의 회복은 더욱 더딜 수밖에 없다. 고립·은둔 청년들이 사각지대에 머무는 사이, 가족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버티고 있다.

■가족의 고립

6년째 고립·은둔을 택한 아들을 둔 A(65)씨의 일상은 불안의 연속이다. 학교 다닐 때는 학생회 활동을 할 정도로 활발했던 아들은 대학 졸업 절차를 제대로 이수하지 못하자 그때부터 방 안에서 나오지를 않았다. 아들의 상황을 알게 된 게 불과 1년 전이다. 진작에 알았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A씨는 지금도 그 궁금증을 품고 산다.

고립을 선택한 건 아들 한 명 이었지만 그 여파는 가족 전체로 번졌다. 친척들에게도, 주변 이웃들에게도 ‘졸업을 못했다’거나 ‘방 안에만 있는다’는 얘기를 할 수 없었다. 그의 아내가 받는 스트레스는 누구보다도 컸다.

아들의 할아버지, A씨의 부친이 작고한 이후로는 상황이 더 악화됐다. 아들만 혼자 두고 외출하는 게 점점 신경이 쓰였다. 혼자 있는 아들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인 일자리 사업에서 탈락했다’는 아내의 말이 오히려 반가울 정도가 됐다. A씨는 “서른이 넘은 아들을 어린 애처럼 대할 수도 없고 친척들에게도 얘기를 꺼낼 수도 없으니 마음만 졸이고 있다”며 “점점 집을 비우기가 겁이 났다”고 했다.

두 차례 고립된 적이 있는 딸을 둔 B(63)씨 역시 5년여 간의 시간이 흐르면서 가족 내부의 균열이 깊어졌다. 딸을 사이에 둔 부부 간의 인식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다. 방 안에 틀어박힌 딸을 남편은 이해하지 못했다. “아이를 환자로 봐 달라”고 했지만 가부장적인 남편의 사고를 뛰어넘을 수는 없었다. B씨는 “어려운 일이 생기면 아이 중심으로 가족들이 융합해야 하는데 쉽지가 않았다”며 “남편은 아버지의 권위가 무너졌다고 생각했고 나는 또 나대로 아이를 생각해야 했으니 부부 간의 갈등만 생겼다. 좋아질 수가 없었다”고 했다.

■정답이 없는 시간

여느 고립·은둔 청년을 둔 부모들처럼, A씨와 B씨 역시 자녀를 다시 세상과 연결하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다만 그 과정은 일정한 해법이 있는 대응이 아니라 매일 다른 선택을 반복하는 ‘버텨내는 시간’에 가깝다.

A씨는 아들을 설득하기보다 ‘관계를 끊지 않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밥을 먹으러 나가자고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고, 결혼식이나 가족 모임이 있을 때마다 동행을 권한다. 최근에는 심리상담을 권해 한 차례 외부 기관을 찾게 했지만, 이후로는 일정이 이어지지 않고 있다.

A씨는 “우리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아이들의 피난처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며 “가족마저 없는 아이들은 더 힘들겠지만, 우리는 가족이니까 우리가 다 감당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B씨는 보다 일상적인 방식으로 접점을 만들어가고 있다. 딸을 집 밖으로 데리고 나가기 위해 일부러 “운전이 무서워 혼자 못 간다”며 동행을 부탁하거나, 사무실 일을 나눠 맡기는 식이다. 그는 “무슨 일이든 역할을 주면 조금은 움직인다”며 “작은 계기를 계속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딸이 두 차례 방 안에 고립됐던 B씨는 이런 소소한 일들이 더욱 소중하다. 딸이 처음 방으로 들어가 1년 반을 나오지 않았다. 문 앞에서 울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무당까지 찾아갔다. “죽지는 않는다”는 무당의 말이 그렇게 고마웠다.

딸은 가족에게만 곁을 주지 않았을 뿐, 친구들에게는 다정했다. 딸의 친구를 통해서 본 딸의 문자에는 ‘내가 조금 더 잘 되기 위해서 숨 고르기를 하고 있는거야’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그 문자를 본 뒤에야 딸을 기다릴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두 번째는 상황이 달랐다. 어느 날 갑자기 딸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 전에는 문을 잠그지는 않았는데 이번에는 ‘딸칵’ 하는 문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B씨는 그날을 회상하면서 “육십 평생 그 날처럼 많이 운 날은 없었다”고 했다.

딸이 입을 열지 않으니 엄마는 탐정이 돼야 했다. 딸이 조금 일상을 되찾을 때 쯤 넌지시 “엄마가 오늘 은둔 교육을 받고 왔는데 학교 다닐 때 따돌림 같은 걸 당하면 마음 속에 응어리가 져서 그럴 수 있다는 데 우리 딸도 그랬나”고 물었다. “내가 그런 걸 당할 애는 아니지”라는 말에 학창시절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이 됐다. B씨는 그렇게 하나 씩 딸의 삶의 퍼즐을 맞춰갔다.

■보이지 않았던 이웃들

고립·은둔 자녀의 부모로 살아보니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들과 비슷한 상황에 처한 가정이 너무도 많았다. 그들 역시 나름의 방법으로 고군분투중이었다.

취직 첫 날 화장실 청소를 하라는 지시를 받고 주저하자 잘린 뒤 방에 들어갔다는 초등학교 동창 딸부터 중학교 때부터 나오지 않았다는 선배네 아들, A씨 아들과 똑같은 사례였던 대학 동기 친구까지. 그의 주변에도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너무도 많았다.

그는 “갈수록 주위에 그런 사람들만 보인다”며 “도저히 개인적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고 손을 쓸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문제는 이들이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부모들은 대부분 상황을 외부에 알리지 않는다. ‘아이를 잘못 키운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기 때문이다. A씨는 “아들의 상황을 알고 ‘내가 너무 자유롭게 해줬나, 방치를 했나’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고 털어놨다.

A씨는 “고립·은둔은 다음 세대의 중요한 문제인데도 치료나 회복을 시도할 공간이 부족하다. 모든 걸 가정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며 “결국 청년들이 방치된 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B씨는 청년들이 외부와 연결될 수 있는 환경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청년들이 선택을 하든 하지 않든, 이런 프로그램과 시설이 있다는 정보는 전달돼야 한다”며 “세상이 닫혀 있지 않다는 걸 느낄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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