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란의 무게여 안녕] 날아보자 훨훨, 1년에 딱 열흘뿐이니까

장미란 용인대 교수·역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2026. 4. 2.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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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걱정이 많은 내가 친절해지는 계절
마음이 무거울 땐 자연에서 위로를 받고
꽃비에 감성 터져 즉흥적으로 詩 지었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고
누군가에게 흘려보내는 것 또한 큰 기쁨
매일 다짐한다, 더 친절하고 다정해져야지
그래픽=이철원

와— 짧은 탄성이 저절로 나오는 아침이다. 어제 내린 비 덕분에 출근길이 유난히 맑다. 파란 하늘은 더 쾌청하다. 콧노래가 저절로 나온다. 오늘따라 선명하게 들리는 새들의 오케스트라. 곧 있을 공연을 위해 팀을 꾸려 리허설을 하는 듯, 각각의 소리와 자연이 조화를 이뤄 나에게 선물을 준다. 덕분에 행복한 아침이다.

하지만 늘 이런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지는 못한다. 마음먹은 대로 안 될 때가 더 많다. 현실은 날씨처럼 변덕스럽고, 내 마음도 출렁인다. 감정이 편치 않을 땐 똑같은 말도 툭툭 내뱉곤 한다. 이럴 때 나는 경직된 몸과 마음을 빨리 녹이고 싶어 갖가지 노력을 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운동을 하고 사우나에 가거나 꽃집에 들른다. 그럼 기분이 전환되고 긴장이 풀린다. 같은 말도 더 부드럽게 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봄은 내가 가장 친절해지는 계절이다. 우리 학교 꽃나무들도 마침내 화사한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낮에는 햇빛에 찬란하고 밤에는 달빛에 황홀하다. 개나리와 진달래가 방긋 웃어주고 벚꽃은 신나게 춤추며 목련은 조용한 품격을 뽐낸다.

마음이 무거울 때마다 산책을 하고, 자연에서 위로를 받는다. 몇 해 전 4월, 힘겹던 어느 날이었다. 오르막길을 오르는데 새로운 수업을 맡은 무게까지 더해져 발이 쉽게 떨어지질 않았다. 그 순간 내리는 꽃비를 맞으며 나는 멈춰 서서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이렇게 아름다워도 되는 것이니? 이렇게 아낌없이 내어주어도 되는 것이니?’ 심지어 그 마음을 남기고 싶어 시를 썼다. 그 시를 실을까 말까 망설이다 담당 기자에게 물었다. “벚꽃은 1년에 겨우 열흘인데요. 감성 좀 터져도 되지 않을까요?” 그 말에 큰 용기를 얻어 그날의 마음을 적는다<<b>삽화 참조>.

누가 뭐라 생각할까 하는 걱정은 아름다움으로 덮어 두었다. 이 시를 보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 괴로웠던 내 마음을 아름다운 꽃잎들이 품어준 것 같아서, 나를 꼭 안아준 것 같아서. 나는 늘 한숨만 내쉬며 부정적인 말을 내뱉었는데 자연은 좋은 것으로만 나를 채워주었다. 큰 위로를 얻은 나는 수업도 가뿐하게 해냈다. 그 뒤로 생각했다. 자연이 준 위로를 사람들과 나누자고.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내 말투와 태도에 담아 흘려 보내주자고. 누군가의 하루가 덜 무거워지면 좋겠다고.

2024년 6월 올림픽공원에서 만난 장미란 문체부 차관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그런 위로를 나눈 곳은 어느 날 목욕탕이었다. 입욕을 즐기고 있는데 한 여성이 두리번거리며 들어왔다. 딱 보아하니 준비 없이 온 듯한 그녀. 시간이 꽤 늦어 용품을 구매하지 못하고 빌릴 만한 사람을 찾고 있는 눈치였다. 주변을 살피던 그녀는 포기한 듯 샤워기로 향했다. 그때부터 내 마음엔 갈등이 시작됐다. ‘내가 먼저 가서 빌려드릴까? 그러다 알아보면 어쩌지?’ 나는 살며시 그녀 곁에 다가가 “갑자기 오셨나 봐요, 이거 같이 쓰세요”라고 용기 내어 말을 걸었다. 그녀는 감격한 얼굴로 연신 고맙다며 용품을 아주 조금씩만 썼다. 내 마음이 괜히 찝찝해 아버지가 하시던 말씀을 빌렸다. “어차피 조금 쓰나 많이 쓰나, 빌려 쓰는 건 똑같아요. 많이 쓰세요.” 밝게 웃는 그녀의 얼굴을 보니 내 기분이 더 좋았다.

나가려는데 그녀가 “저기요” 하고 나를 불렀다. 순간 ‘아, 역시 과했구나. 알아보신 걸까?’ 긴장한 순간, 뜻밖의 말이 이어졌다. “아이들 가르치는 선생님이시죠?” 어떻게 알았냐고 묻자 말투가 그랬다고 한다. 나는 괜히 찔려 “제가 너무 간섭했나요?” 물었고,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제가 필요한 걸 먼저 말해 주셔서 고마웠어요. 오늘 힘든 일이 있어서 갑자기 왔는데, 선생님 덕분에 기분이 좋아졌어요. 정말 감사해요.”

그때 얼마나 뿌듯하던지. 힘들다는 그녀가 안쓰러우면서도 기분이 나아졌단 말에 내 마음은 하늘을 훨훨 날고 있었다. 요즘은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고 싶어도 걱정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용기를 낸 것도 망설임을 이긴 작은 선택이었다. 그 선택이 따스한 바람이 되어 내게 더 크게 불어왔다.

살면서 마주하는 고통과 괴로움이 나를 무겁고 딱딱하게 만들 때가 있다. 그것들을 풀어 주지 않으면 부러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생각에 생각을 더하면 마음도 불안해진다. 생각하고 싶지 않아도 고약한 마음은 나를 쉽게 놔주지 않는다. 그렇게 슬픔과 어려움을 견디고 두려운 걸음을 한 발짝 떼려면 좋은 기운을 받아야 한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며 아름다운 말을 할 수 있는 것, 내가 느낀 아름다움을 누군가에게 흘려보내는 것 또한 큰 기쁨이다.

매일 다짐한다. 만나는 이들에게 더 친절하고 다정하게 말하자고. 그러려면 내 마음이 꽃밭이어야 하는데 황량한 광야일 때가 많다. 따뜻한 바람이 불어야 하는데 찬바람일 때가 많다. 그래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고 새싹들과 꽃봉오리들을 유심히 본다. 운동장에서 피크닉을 즐기는 학생들에 모습에 동참하며 웃는다. 그렇게 웃을 수 있음에 감사한다. 덕분에 마음이 가벼워진다. 체중도 어제보다 덜 나가는 것 같다. 경쾌하게 아침 인사를 한다. “좋은 아침이에요~ 봤어요? 꽃이 피기 시작했어요, 진짜 봄이 왔어요!”

찬바람이 물러가고 있다. 그 뒤로 따스한 바람이 봄기운을 가득 안고 온다. 떠나가는 찬바람에 무거운 마음을 날려 보내자. 산뜻한 봄바람에 몸과 마음을 맡기고, 잠깐이라도 훨훨 날아보자. 1년에 딱 열흘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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