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30] 수련회 가던 날 ‘10만원의 추억’

초등학생 시절 수련회 가기 전날이면 아버지는 10만원을 내 가방 깊숙이 넣으며 말하셨다. “집에 오고 싶을 땐 언제든 택시 타고 와라.” 집에서 멀리 갈수록 금액은 커졌다. 물론 한 번도 그 돈을 써본 적은 없다. 언제나 돈의 존재는 기억도 못할 정도로, 노느라 정신없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처음으로 1박 2일 수련회를 떠나는 초등학교 3학년 아이 짐을 싸다, 까맣게 잊고 있던 그 10만원이 떠올랐다. 집 울타리 밖으로 아이 혼자 보내는 부모 심정을 30년 만에 깨친 것이다. 아버지처럼 돈을 넣진 않았지만, “새벽 1시든, 2시든 데리러 갈 테니 오고 싶으면 전화하라”고 여러 번 일렀다.
수련회 날 밤, 저녁 내내 붙들고 있던 전화기가 자정 무렵 울렸다. 담임 선생님의 메시지였다. 사진 여러 장과 함께 아이들은 잘 지내고 있으며, 선생님은 문 앞에서 불침번을 서고 계시다는 내용. 아, 지난날 나는 수련회장에서 주무시지도 않고 복도를 돌아다니던 주임 선생님을 얼마나 미워했던가. 30년 만에 새삼 스승의 노고에 감사하면서, 직업인으로서 선생님의 고충을 어렴풋이 헤아려보는 밤을 보냈다.
다음 날 아이는 차마 눈 뜨고는 못 볼 몰골이면서도, 개선장군처럼 당당한 태도를 탑재하고 나타났다. 삐져나온 윗도리에, 제대로 못 감아 떡진 머리, 밤새 잠 못 자고 비빈 눈은 벌겋게 충혈돼 퉁퉁 부어 있었다. 그럼에도 아이는 처음으로 남과 함께 지새운 밤을 신이 나서 무용담처럼 늘어놓았다. “엄마, 바닥에 이~만한 두께 이불(아마도 ‘요’를 말하는 듯)을 깔고 잤어. 다섯 명이서 한 방에 그걸 다 펴니까 방이 꽉 찼어!” 그렇게 귀하게 키우지는 않았는데도, 생각해보니 형제도 없는 아이가 침대 아닌 맨바닥에서 타인과 함께 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집집마다 당연하게 겪던 이 수련회 풍경이 지난해 서울 지역 10가구 중 9가구에겐 낯선 일이 됐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2025년 서울 지역 초등학교 605곳 중 수련 활동을 실시한 학교는 37곳(6.1%)에 불과했다. 수학여행을 실시한 학교는 41곳(6.8%)에 그쳤다. 몇 해 전 강원도 속초에서 현장 체험 학습 중 초등학생이 사망한 일에 대해 담임 교사가 유죄 판결(금고 6개월 선고유예)을 받으면서 교사들의 심리적 부담감이 커진 데다, 안전사고에 대한 학부모들의 우려도 늘어났기 때문이다.
얼마 전 4학년이 된 아이는 다시 수련회 실시 찬반 여부를 묻는 투표 용지를 들고 왔다. 부모 입장에선 보내지 않을 이유가 여전히 넘쳐난다. 다치진 않을까, 아프진 않을까, 위험하진 않을까…. 보내지 않는다면 적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때때로 너무 강력한 표백제는 필요한 색까지 지워버리고 만다. 반대에 동그라미를 쳤다가, 지웠다. 살면서 아이가 겪을 수많은 일마다 부모가 찬반을 투표해 피하게 할 순 없을 것이다.
수련회에서 아이가 자신만의 ‘10만원의 추억’을 만들고 오길 바란다. 설사 30년 뒤에야 그 시간을 애태우며 기다리던 부모의 사랑과 스승의 노고를 깨닫게 된다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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