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야제 수놓은 응원봉, 오늘날 민주주의 만든 제주4.3

이승만의 불법 계엄과 윤석열의 12.3 불법 계엄. 78년 전 제주의 봄을 짓눌렀던 차가운 계엄령이 오늘날 또다시 재현될 뻔했을 때 이를 지켜낸 것은 제주4.3이었다.
박제된 과거가 아닌, 오늘의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뿌리이자 내일로 이어지는 우리의 오늘을 예술의 언어로 표현한 '제78주년 4.3전야제'가 2일 오후 제주문예회관에서 열렸다.
이번 행사는 '제주4.3은 오늘의 평화를 만드는 기억입니다'를 주제로 광장에서 진행됐다.
과거 비극에 머무는 것이 아닌 오늘 민주주의와 평화를 만들어온 살아있는 역사로 조명했다. 죽은 자의 목소리와 살아남은 자의 염원이 오늘 역사를 만들어왔다는 점에 주목한 것.
그래서 전야제는 '76년 만의 해후'로 시작됐다. 대형 스크린에 4.3희생자의 유해가 송환되는 영상이 흘러나오고 김소여, 고용준 배우가 각각 희생자의 환생으로 무대에 올랐다.


배우들의 연기는 4.3희생자의 사연을 바탕으로 했다. 이유도 모른 채 끌려가 정뜨르 비행장에서 희생된 청년, 동광리 굴속에서 숨어 살며 물 한 모금도 제대로 못 마신 여인이다.
그리고 이들 앞에는 부모보다 더 긴 세월을 살아낸 유족들이 있었다. 4.3 당시 부모보다 늙어버린 자식을 찾는 극연출은 4.3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기억임을 드러낸다.
이어 배우들이 들어간 뒤 대형 스크린에는 이승만과 윤석열이 자행한 불법 계엄이 영상으로 연출됐다. 그리고는 지난해 4월 4일,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라는 선고 영상이 등장했다.
4.3전야제는 이 순간을 '과거가 현재를 구하다'라고 표현했다. 오늘의 평화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되짚는 순간이다. 이날 전야제에는 자리마다 4.3과 동백 이미지가 새겨진 응원봉이 있었다. K-민주주의의 상징이 된 응원봉은 공연의 중요할 때마다 켜졌다.


시낭송은 뮤지컬 '동백꽃 피는날', '이어싸 삼도바당' 등에 출연한 강지훈이 맡았고 추념 공연으로는 가수 안예은과 기타리스트 박석준, 밴드 갤럭시 익스프레스가 무대에 올랐다. 안예은은 '잠들지 않는 남도'를 열창하며 서사를 더했다.
이어 오영훈 제주도지사, 김광수 제주도교육감, 임문철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 김창범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 송맹석 제주민예총 이사장은 '추모메시지'를 낭독했다.
오 지사는 "비극의 역사를 평화의 오늘로 바꿔낸 빛의 혁명은 제주4.3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한강의 소설처럼 우리는 과거의 비극과 작별하지 않았다. 제주4.3은 이제 어둠의 기억을 넘어 평화와 인권의 이름으로 다시 쓰이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육감은 "우리의 뿌리는 눈물이었지만, 그 열매는 평화와 화해로 맺어지고 있다"며 "아픔의 역사였던 4.3은 이제 인권과 평화, 민주주의의 가치를 일깨우는 살아있는 배움이 되고 있다. 아이들 마음속 움튼 배움의 씨앗이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힘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김 유족회장은 "말하지 못한 그 시간 너무나 길었지만, 우리는 끝내 포기하지 않았다. 어둡고 긴 고통의 터널을 함께 지나며 켜준 불빛은 우리가 다시 살아갈 힘이 됐다"며 "유족들도 슬픔을 넘어 평화의 길로 나아가며 아픔이 반복되지 않는 세상을 물려주겠다"고 다짐했다.
송 이사장은 "침묵을 강요당한 시대 예술은 가장 먼저 목소리를 냈고, 침묵 속 묻혀 있던 이야기를 불러냈다. 지워지려 했던 이름과 상처를 예술의 목소리로 기억해 왔다"며 "예술은 오늘의 시선으로 4.3을 다시 마주하며 의미를 이어가는 또 하나의 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4.3전야제는 세대와 세대를 잇는 화음으로 서로의 삶을 위로하고 지역사회에 따뜻한 연결과 깊은 감동을 전하는 '온세대 도민합창단'의 공연으로 마무리됐다. '거위의 꿈'을 시작으로 어린이합창단의 '천개의 바람', 모두의 '상록수' 합창이 이뤄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