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의얇은소설] 그 돌 아래 무엇이 있는지

2026. 4. 2.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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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입원하며 떠오른 소설
돌 아래 짓눌린 상처·고뇌 연상
죽음 공포 딛고 병원 나오는 날
‘연옥이지만 삶은 축복’ 실감해

줌파 라히리 ‘단테 알리기에리’(‘로마 이야기’에 수록, 이승수 옮김, 마음산책)

이 단편을 읽고 나면 한 여자아이가 혼자 집 뒤편 숲에서 무거운 돌들을 뒤집어 그 밑에서, 이제 햇살 아래 드러난 채 꿈틀거리는 벌레와 곤충들을 매혹된 눈으로 바라보는 이미지가 오래 남는다. 여자아이는 “어두운 갑옷을 입은 살아 있는 생물”을 관찰하다 다시 돌을 덮개처럼 덮어둔다. 자신 역시 그 생물 중 하나라는 느낌, 자기 삶도 작지만 살아 있기에 격정적으로 버둥거리는 곤충들과 같다고 알아차리면서. 그래서일까, 살아가는 동안 무언가나 누군가가 자신을 덮고 있는 무거운 돌을 들어 올려주길 바라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혹은 상처나 고뇌를 덮어줄 덮개를 기다리는 것인지도.
조경란 소설가
‘신곡’을 쓴 작가의 이름이 제목인 이 단편을 소개하기가 그동안 몹시 어렵게 느껴졌다. 생각날 때마다 펼쳐볼 정도로 좋아하는 단편임에도 그랬던 이유는 제목처럼 내용이 쉽지 않아서일지 모르겠다. 최근에 이 소설을 떠올린 곳은 어머니가 입원해 있는 병실이었다. 매 순간이 연옥처럼 느껴지고 죽음과 장례와 ‘어머니’에 관해서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나날들. 단편의 배경인 도시 로마를 화자가 “부서지고, 잘못되고, 상처받고, 버려지고, 죽은 것들로 가득 차” 있다고 표현했는데 나에게는 그곳이 병원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병원을 오가며 내가 떠올린 건 연옥이 아니었고, 그러므로 이 단편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단테 알리기에리’의 줄거리는 무척이나 간단하다. 오십 대이며 직업 때문에 일 년의 절반은 로마에서 지내는 한 여성이 시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하러 고향의 도시로 돌아오는 오늘 하루의 이야기. 간략한 줄거리 밑에는 겹겹의 이야기들이 꿈틀거리며 숨어 있다. 호기심 많은 독자가 돌을 들어올려야 볼 수 있는 듯. 화자인 나는 청소년 시절에 친구의 남자친구로부터 봉투에 ‘단테 알리기에리’라고 서명한 연애편지를 받은 적이 있었다.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 이 일이, 화자가 대학에 간 후 예언으로 가득한 진짜 ‘단테’의 시를 읽어보고 싶어지게 하고 단테의 풍경을 보기 위해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나게 하는 필연적 인과를 만든다. 그곳에서 남편을 만나 단테를 공부하겠다는 마음을 접고 ‘외국인 주부’가 되었다.

시간이 지나 ‘신곡’에 나오듯 화자의 삶은 “황량한 해안”에 이르렀고 마흔이 되었을 때 다시 단테 생각을 하게 됐다. 그가 ‘연옥편’에서 바위 밑을 들여다봐야 했다는 것도. “그 돌 아래 무엇이 있는지 들여다보고 알아내라.” 화자는 단테의 언어와 문화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대학에서 강의도 하게 됐다. 마치 “죽은 시인 단테가 나의 길을 만들어주고 나를 앞으로” 이끌어주는 듯. 제목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진 듯 보인다. 실제 ‘신곡’을 쓴 단테 그리고 화자의 삶을 바꾸고 영향을 끼친 가장 큰 힘의 단테.

다정했고 요리를 가르쳐 주었으며 단테의 시를 암송하길 좋아했던 시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화자는 친구들, 아직 남편으로 남아 있는 사람과 그의 여자친구를 본다. 그리고 대성당 안으로 들어오는 오후의 햇살과 천장의 성상과 자신의 ‘숨겨진 기억’과 ‘깊은 기억’들도. 관이 운구되고 성당을 떠나면서 나는 시어머니와는 달랐던, 자신을 너무나 몰랐던 어머니를 비로소 애도한다. 남편이 그녀에게 우리는 ‘어머니’가 그리울 거라고 말한다. 화자가 광장 위로 펼쳐진 맑은 하늘을 보고 있자 누군가 침묵을 깨고 말한다. “참 엿같은 도시야.” 그리고 이어지는 대사 한마디가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다. 이 단편을 삶에 대한 찬양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는. 그러자 이 찬양이 하나가 아니라 두 개라고 알게 된다. 연옥이지만 그럼에도 살아가고 싶은 삶 그리고 단테의 문학에 대한 찬양.

이 주 후 나는 어머니를 부축하고 병원을 나왔다. 투병의 날들이 시작될 터였다. “하지만 너무나 아름다워.” 벚꽃과 맑게 갠 봄 하늘 밑, 세상의 생명체들에게 흩뿌려진 아름다움에 나는 이렇게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외우고 있던 이 단편의 마지막 문장을. 연옥이지만 삶은, 살아 있음은 크디큰 축복이라는 걸 자주 잊어온 사람처럼.

조경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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