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수진의시네마포커스] 과거가 불러내는 기시감

2026. 4. 2.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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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에트 혁명의 아버지 레닌은 자신의 후계자를 지명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코르녜프의 믿음처럼 이곳의 부패와 폭력, 일상화된 고문은 혁명적 시스템의 외부에서 발생한 은밀한 일탈이자 얼룩일까? 아니면 사악한 시스템 자체일까? 진실의 목소리가 수용소 담장을 넘어설 수 있다면 그것은 정의의 이름으로 교정될 수 있을까? 아니면 그는 이미 벗어날 수 없는 미로에 발을 들여놓은 것일까? 영화의 시작부에 자신의 발로 이곳에 들어온 코르녜프는 엔딩부에서 다시 한번 이 미로의 공간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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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에트 혁명의 아버지 레닌은 자신의 후계자를 지명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지적이고 투철한 사상가였지만 주변의 시기와 경계를 받았던 트로츠키와, 대중적이지만 신뢰하기 힘들었던 스탈린 사이에서 그는 끝내 입을 열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레닌 사후 공산당의 실핏줄까지 장악한 스탈린은 트로츠키를 비롯한 자신의 정적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하며 철권통치, 공포정치의 막을 연다.
우크라이나 출신 세르히 로즈니차 감독의 ‘두 검사’는 1937∼1938년에 걸쳐 진행된 스탈린 대숙청의 시기를 다룬다. 반혁명 분자의 처벌이라는 명분 하에 실제로는 자신의 정적들을 제거하는 데 혈안이었던 이 시기의 참상에 대해서는 구속자 150여만명, 총살자 숫자 최소 70만에 이른다는 수치가 보여준다.
부패하고 무능한 차르 체제를 전복하고 소비에트를 수립한 초기 러시아 혁명가들의 가슴에는 방법의 정당성과 무관하게 적어도 혁명을 향한 순수한 의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혁명의 순수성은 빛바래고 남은 것은 탐욕스러운 권력욕, 정치적 반대자들에 대한 탄압과 고문, 서슬 퍼런 독재의 폭력뿐이었다.

영화는 정치범들이 교도소 앞마당으로 나오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살아서 이곳을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아는 듯한 수감자들은 지치고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다. 이곳에 갓 임명된 검사 코르녜프가 들어온다. 수감된 정치범들이 외부를 향해 쓴 수많은 탄원서가 모두 불태워졌지만 혈서로 쓴 하나의 편지가 기적적으로 이 젊은 검사에게 전달된 것이다.

소비에트의 법치주의는 위대한 볼셰비키 진리의 일부라 믿는 코르녜프는 고발자를 만나기 위해 겹겹이 세워진 육중한 철문을 경계로 외부와 단절된 폐소공포증적 공간을 통과한다. 무표정하고 집단화된 감옥 관료들의 표정에서 자신이 위험한 상황에 놓였다는 것을 직감한 그는 견고하게 형성된 지방 검찰청의 감시 카르텔을 피해 어렵게 중앙검찰청장 면회에 성공한다. 사법 권력의 최정점인 검찰총장과 신참내기 검사. 마침내 두 검사가 대면한다.

코르녜프의 믿음처럼 이곳의 부패와 폭력, 일상화된 고문은 혁명적 시스템의 외부에서 발생한 은밀한 일탈이자 얼룩일까? 아니면 사악한 시스템 자체일까? 진실의 목소리가 수용소 담장을 넘어설 수 있다면 그것은 정의의 이름으로 교정될 수 있을까? 아니면 그는 이미 벗어날 수 없는 미로에 발을 들여놓은 것일까? 영화의 시작부에 자신의 발로 이곳에 들어온 코르녜프는 엔딩부에서 다시 한번 이 미로의 공간으로 들어간다. 아니 끌려간다. 여기에 좌표는 없다. 그것은 미로이고 무덤이다.

로즈니차는 자신의 영화에는 희망이 없다고 누누이 말한다. 동시에 희망은 영화 안이 아니라 밖에 있다고 말한다. 영화를 본 관객과 세계의 반응. 거기에서 감독은 희망을 찾는다. 그는 섣부르게 감정을 고양하고 몰입시키는 상투적인 방법을 쓰지 않는다. 차갑고 지적인 관찰자로서 어두운 역사와 억눌린 기억을 관객 앞에 가져다 놓으며 과거와 현재의 대화를 유도한다. 과거를 말하는 그의 영화에는 언제나 현재를 연상시키는 기시감이 있다. 그리고 끝내 전율하게 한다.

맹수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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